가끔은 이렇게 헛짚고 꽈당 넘어지기도 하며 사는 게 조금 더 사람답게 사
멈춘 시계에 낚이다.
잠시 졸았다 싶었는데 시계는 자정을 넘어 1시 5분 전을 가리키고 있다.
오늘 오후에 친구와 당구를 치다가 승부처에서 ‘공이 맞았느니, 안 맞았느니’ 티격태격하다가 당구 게임이 끝났다. 다툴 일도 아닌데 얼굴을 붉히고 우기다가 당구장을 나온 일이 서로 미안해서 저녁 겸 소주를 마시고 9시 30분쯤에 돌아와 TV를 보다가 사르르 졸았다고 생각했는데 깨어 벽시계를 보니 어느 결에 자정을 넘긴 시간이다.
이번 가을엔 책 세 권을 편집해야 하는데, 원고가 나온 한 권만 반쯤 작업이 됐을 뿐이고 나머지는 아직도 원고가 다 들어오지 않았다. 원고가 들어오지 않았다는 핑계로 틈을 만들어 친구와 당구장엘 갔다. 요즘 방송에 자주 나오는 ‘3쿠션’ 게임을 하는데, 둘이 호적수여서 게임을 할라치면 금세 분위기가 살벌(?)하게 변한다.
곰처럼 큰 덩치에 달마 그림처럼 부리부리한 눈매로 입을 앙다물고 공을 노려보는 친구의 모습을 보는 게 재미있다. 가끔 어려운 배치의 공으로 득점해서 그의 속을 긁는 재미는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즐거움이다. 나는 게임을 하면 상대방을 건드려서 약을 올리는 얄미운 스타일이고 그는 그런 내게 걸려들지 않으려고 거의 말을 섞지 않고 입을 앙다물고 공만 친다.
우리 둘이 게임을 하는 걸 비유하자면 곰과 여우가 당구를 친다고 보면 적당하다. 그는 득점 확률이 낮다고 생각되면 우직한 힘으로 강하게 쳐서 돌아가다 맞거나 ‘키스’가 나서 맞는 행운을 노리기도 한다. 마치 곰이 강에서 연어 떼가 돌아오면 앞발로 내리쳐서 잡거나 튀어 오르는 연어를 입으로 물어서 잡는 모습 같다. 또 벌집을 만나면 벌에 쏘이면서도 벌집을 부수어 기어이 꿀을 먹는 집요한 모습도 있다.
반면 나는 힘을 많이 들이지 않고 ‘걸어 치기’나 ‘빈 쿠션’을 이용하는 방법으로 득점하면서 그의 비위를 거스르는 말이나 몸짓으로 자극한다. 설렁설렁하다가도 한번 기회를 잡으면 여러 점을 얻어 그를 자극하는 재미는 가히 ‘오르가슴’에 비할 만하다. 게임이 풀리지 않으면 온갖 말과 행동으로 그를 도발하여 심기를 흩트린다. 그리고 득점보다는 방어에 치중하여 공의 배치를 어렵게 만들어 내게 찬스가 오도록 유도한다.
오늘 둘이서 당구를 치다가 사달이 난 경위는 이렇다. 내가 횡단 샷을 친 공이 약간의 차이로 비켜 왔다 갔다 하다가 가볍게 맞았는데 그 친구는 맞지 않았다고 우기기 시작했다. 코앞에서 공을 친 내가 잘 보았을 터인데도 그는 아니라고 우기다가 큐를 놓고 그만 치자고 손을 털어버린다. 축구 경기에 나오는 비디오 판독이라도 있다면 좋을 터이지만 중대에는 녹화시설이 없으니 확인 불가다. 그러니 서로 우기다가 말 수밖에. 가끔 게임이 불리하게 진행되면 슬그머니 이런 구실로 게임을 중단하는 게 그의 노련한 솜씨다. 속을 부글거리다가 손을 씻고 당구장을 나서는데 그가 엘리베이터를 열어놓고 날 기다리며 씨익 웃는다. 곰에게 여우가 당한 셈이다. 그리고 그 곰 같은 술꾼과 함께 소주 몇 잔을 마신 것이 멈춘 시계에 낚이는 빌미가 될 줄이야.
그렇게 우리는 당구장에서는 서로 못 잡아먹어서 안달이지만, 당구장을 나오면 절친이다. 둘 다 아픈 치레하지 않고 건강하다. 그 친구는 등산 마니아이고 난 자전거 타기를 즐긴다. 가끔은 4~5시간 이상 당구를 치기도 한다. 그러면서 서로 오래 살아야 한다고 격려하고 건강을 걱정하기도 한다. 건강한 몸으로 오래도록 티격태격하며 지내기를 서로 원한다. 아직은 둘 다 감기에 걸리는 일이 없을 만큼 노인답지 않게 팔팔하다.
나는 아직도 글을 쓰고 남의 글을 교열하는 일과 편집이나 사진, 동영상을 만드는 취미를 이용하여 용돈을 벌고 작은 지방신문사에서 글을 쓰고 편집을 검토해주는 아르바이트를 하는 처지여서 늘 시간에 민감하다. 아니, 시간에 쫓기는 생활을 한다고 해야 옳겠다. 늘 시간에 쫓기며 살기에 시간에 민감하여 시계를 보지 않아도 몇 시쯤인지 거의 정확하게 안다. 그런데도 오늘은 ‘고장 난 벽시계’에 속아 10시도 안 된 시간에 시계가 가리키는 1시 5분 전이라 생각하고 억지로 잠자리에 들었다.
술 이래야 주졸酒卒 급에도 들지 못하는 실력이라, 소주 석 잔밖에 마시지 않았다. 잠시 졸았는데 자정 넘어까지 졸았다는 생각으로 일을 미루고 잠을 청했다. 쉽게 잠이 들지 않아서 엎치락뒤치락하다가 가까스로 잠들었다. 얼마 후에 깨어 화장실에 갔다 와서 시계를 보니 1시 5분 전이다. ‘어라?’ 비로소 이상한 생각이 들어 스마트 폰을 들여다보니 11시 30분이다. 벽시계는 배터리가 소모되어 멈추어 있었다. 그런 줄 모르고 아까운 시간을 억지 잠을 청하느라 낭비하고 하려던 일도 내일로 미루었으니 제대로 ‘고장 난 벽시계’에 낚인 셈이다.
누군가 수단을 부린 게 아니라 나 혼자 배터리 없는 시계를 보고 잘 못 판단한 것이니 스스로 낚여 손해를 본 셈이다. ‘약은 고양이가 밤눈을 못 본다’는 속담이 있다. 별 볼 일 없는 솜씨로 컴퓨터 작업을 하고 사진을 주무르면서 세상일에 밝은 듯 까불어도 배터리 없어서 멈춘 시계조차 짐작하지 못하는 주제인 것을 깨닫는다. 산다는 일, 나이 들어 뭔가 남겨보겠다고 안간힘을 다하지만, 과연 내가 남긴 것이 세상에 한 푼어치라도 보탬이 되는 일이 될 것인지는 모른다. 그저 뭔가 해서 남겨야 한다는 생각을 살아가는 명분으로 삼는 수밖에….
산다는 일은 항상 오늘처럼 저 혼자 속아가며 때로는 알고도 모른 척하는 재미가 뒤따라야 한다. 요리조리 따지며 분별하는 척하기보다 가끔은 이렇게 헛짚고 꽈당 넘어지기도 하며 사는 게 조금 더 사람답게 사는 재미 아니겠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