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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푸르고운 Sep 08. 2022

흩날리는 꽃잎에서 이별을 보다.

봄은 간다는 인사도 없이 떠나고 없다.

     

  봄은 어김없이 찾아와 잠든 꽃눈을 깨워 꽃을 피워낸다. 죽은 듯 움츠렸던 가지마다 눈이 트고 얼어 흐르지 못하던 물이 다시 졸졸거리는 봄이다. 산수유, 목련이 시나브로 지기 시작했고, 매화가 피는가 했더니 성급한 벚나무도 덩달아 꽃을 활짝 열었다. 전주의 봄은 전주천변 벚꽃들이 피면서 시작된다. 피었다 싶으면 이미 지는 꽃잎이 아스팔트 위를 하얗게 덮을 때면 봄은 흔적으로만 남는다. 

  가는 봄을 아파하던 옛 시인 두보杜甫는 ‘일편화비감각춘 一片花飛減却春 / 풍표만점정수인 風飄萬點正愁人’- “한 조각 지는 꽃잎에도 봄빛은 사위는데, 휘도는 바람에 우수수 꽃잎이 날리니 정녕 시름이 깊어지네.”라고 안타까워했다. 추운 겨울을 견디며 꽃피는 봄을 기다렸는데, 오는가 하면 가버리는 짧은 봄을 아쉬워했던 마음은 오늘의 나와 다르지 않구나 싶다. 


  벚꽃이 만발한 효자동 삼천 천변길을 자전거를 끌며 걸었다. 어둡고 앙상한 나무들로 쓸쓸하던 길이 화사한 꽃길로 변했다. 멋진 봄을 맞이하는 휴일의 오후 천변에는 넉넉함이 묻어났다. 팔짱을 끼고도 모자라 조금이라도 더 밀착해보려 손바닥을 맞대어 잡아 체온을 나누며 새봄의 열정과 환희를 교감하는 젊은 연인들, 유모차에 앉아 처음 만나는 꽃과 엄마의 미소를 번갈아 보며 ‘까르르’ 웃음을 날리는 아기, 벚꽃을 배경으로 친구들과 셀피 만들기에 바쁜 학생들까지 천변의 봄엔 사랑이 파문처럼 번져간다. 

  오후 출근길인 것도 잊은 채 자전거를 멈추고 그들의 사랑과 평화를 보는 내 마음도 덩달아 말끔하게 걸러지는 듯했다. 그때 살랑거리는 바람결에 꽃잎 한 장이 내 얼굴을 스쳐 떨어졌다. 시선을 돌려 주변을 살폈다. 피면서 이미 지기 시작하는 벚꽃 잎이 부는 바람에 한들거리며 떨어지는가 하면, 맴돌고 휘돌아 아스팔트 위를 구른다. 제법 하얘진 도로 위에 자동차가 지나가면 꽃잎들은 바람에 휩쓸려 이리 구르고 저리 굴러 모이고 흩어지기를 거듭한다. 어떤 잎은 차바퀴에 깔리면서 형체도 없이 사라지기도 한다. 여기저기서 자꾸만 떨어져 날리는 꽃잎을 따라 내 마음에 한 줄기 슬픔과 아픔이 자릿하게 스쳐 갔다.  

  벚꽃은 세상에 나와 짧은 동안 꽃이 되어 있다가, 하나의 꽃잎으로 분해되어 떨어지면 차디찬 도로에 눕고 구르다가 자동차 바람에 쓸려가고 타이어에 짓이겨 스러진다. 꽃눈으로 긴 겨울을 지내는 동안 장래에 꽃잎이 될지 씨방이 될지 궁리할 틈도 없이 서로 몸을 비비고 부둥켜안으며 추위를 버텨내는 데 힘을 다했을 것이다. 이윽고 봄이 와서 꽃눈이 벙글고 피어나면 겨우내 겉을 감쌌던 부분은 꽃받침으로, 그 안에 있던 것은 꽃잎과 꽃술과 씨방이 만들어져 잠시 꽃으로 산다.

  긴 겨울 추위를 견디며 기다렸지만, 막상 봄이 와 화사한 꽃으로 피는 시기는 잠깐이다. 벌들이 찾아오고, 아기가 천진한 미소로 신기해 바라보고, 소녀들이 흐드러지게 핀 꽃을 배경으로 셀카를 찍으며 아름다움을 칭송하는 것도 순간이다. 그 짧은 행복을 느낄 사이도 없이 꽃잎은 허망한 이별을 시작한다. 벌이 꽃가루를 옮겨 수분이 되면, 꽃은 의미를 상실한다. 열매를 키우기 위해 다른 부분은 즉시 떨어져 나간다. 이별할 틈조차 없이 차디찬 바닥에 뒹구는 꽃잎의 한살이는 너무 짧고 가엾다. 


  옛 시인 두보가 떨어지는 꽃잎 한 장에 봄이 사위는 걸 아파하던 마음에는 지는 꽃잎에서 찰나에 불과한 인생의 허무를 보았기 때문일 것이다. 휘도는 바람에 우수수 떨어지는 꽃잎에서 하찮은 이유로 세상에서 스러져간 숱한 생명의 아픔이 다가왔기에 진실로 슬픈 마음을 느꼈으리라. 지는 꽃잎에서 더욱 슬픔을 느끼는 건, 한 송이 꽃으로 한꺼번에 피었던 꽃잎들이 하나, 둘 따로따로 떨어져 내려야 하는 아픔이다. 혼자 와서 홀로 가야 하는 길, 떠나는 인사조차 할 틈이 없이 손을 놓아야 하는 그 이별이 하얗게 쏟아져 내릴 때 봄은 간다는 인사도 없이 떠나고 없다.

  떨어지는 꽃잎 한 장이나, 꽃에 날아든 벌 한 마리, 대단한 문명이라도 이룬 것처럼 거들먹거리며 자연을 마음대로 부수고 고치면서 그 위에 군림하려는 인간이나, 한살이 생명으로 세상에 나온 건 같지 않은가? 사람이 죽어서 한 줌 흙으로 돌아가는 일이나, 바람에 날려 떨어지는 꽃잎 한 장이 스러지는 가치는 별반 다르지 않을 듯하다. 


  나 또한 저 꽃잎들처럼 오래지 않아 떨어져 구르다가 스러질 것을 안다. 내가 가고 자식들이 세상에 남아 있어도 그건 내가 아니듯이, 내년에 다시 그 가지에 꽃이 핀다 해도 그 꽃은 올해의 꽃이 아니다. 나도 떨어져 날리는 꽃잎 마냥 아무런 원망도 미련도 남기지 않고 팔랑거리며 두려워하지 않는 떳떳함으로 떠날 수 있을까? 


  그렇게 한 장 꽃잎처럼 팔랑거리며 떨어질 때, 누군가 두보杜甫의 마음처럼 아파하는 이가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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