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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푸르고운 Mar 27. 2023

찰나를 살며 영원을 꿈꾸는 봄

그 봄이 영원토록 찾아올 것이라고 믿는다. 





봄 변덕이 우리네 인간을 닮아간다. 자연이 인간의 마음을 닮을 수는 없는 일이니, 우리가 변덕스러운 봄을 닮아간다고 해야 옳겠다. 봄 날씨는 늘 그러하듯 개었다가는 흐리고 우중충 뿌옇다가도 어느새 맑게 개어 사람들에게 어서 나오라고 손짓한다.


코로나 세상에 먼지가 하늘을 덮어 마스크로 가리고 사는 게 다행이지 싶은 봄이다. 그나마 이젠 웬만한 자리에서는 마스크를 벗으라니 꼴 보기 싫은 정치판 얼굴들을 맨낮으로 보아야 할지 몰라 우울해지려 한다.


이런저런 꼴이 싫어서 뉴스에서 멀리하고 책을 들어 읽겠다고 나름 자세를 잡아보아도 봄이라는 계 절을 기억하는 몸과 머릿속의 유혹을 견디기 어렵다. 봄의 설렘을 참을 만큼은 아직도 덜 자란 마음공부 때문이라고 자책하면서 책을 내던지고 카메라를 집어 들었다. ‘어디로 가겠다.’라 거나 ‘무엇을 보고 촬영하겠다.’는 마음 작정도 없이 봄을 보러 나선 것이다.


살아온 세월이 적지 않은 지금껏, 봄마다 저절로 몸이 반응해 들썽이었다. 찬바람 사이로 스며드는 훈풍의 기미를 옷깃 사이로 받아 봄을 거니채고 산수유 · 매화 봉오리가 벙그는 순간의 환희를 기억했다.


왔다 싶으면 가고 없는 봄, 그 수유(須臾)를 기억할 수 없으니 카메라에 담아 보고 싶은 마음이 일었지 싶다. 이제 봄꽃들이 피기 시작하면 세상을 하얗게 덧칠하는 벚꽃이 피고 산에는 진달래, 철쭉, 산벚꽃이 온통 피어 알록달록 우리 마음을 흔들 것이다.


작은 풀꽃은 어디나 봄풀이 돋아있는 자리를 찾으면 만날 수 있다. 가깝고 만만한 동네 공원으로 발길이 간다. 큰 개불알꽃이 지천으로 널린 동산을 찾아갔다. 요즘 ‘봄까치꽃’이라고 예쁜 이름으로 개명(改名)해서 부르지만, 뭐 이름이 뭔들 어떠랴. 남청색의 작고 예쁜 꽃이 하늘의 별처럼 가득하다.


그 파란 꽃 사이로 가는 줄기가 솟아 여린 바람에도 살랑살랑 머리를 흔드는 좁쌀냉이꽃이 여기저기 피었다. 좁쌀보다 작은 꽃이 머리를 맞대고 다닥다닥 붙어 피는 좁쌀냉이꽃은 실바람에도 가는 줄기가 흔들려 매크로렌즈로 촬영하기가 여간 어렵지 않다. 나무집게로 줄기를 잡아놓고 어렵게 셔터를 눌렀다.


봄은 늘 그렇게 흔들리고 아련해져서 겨우 내 가라앉힌 마음을 저 밑바닥부터 울렁거리게 한다. 뱃멀미하듯 봄은 사람의 마음을 속에서부터 흔들어 들판으로 오솔길로 이끈다. 그 유혹을 견디려 애쓰는 짓도 무모하고 어리석다.


자연이 이끄는 힘을 거부하고 버티는 일이 가당키나 한 일인가? 봄은 늘 우리를 불러내서 계절의 변화를 알리고 적응하도록 가르친다. 시간이 이만큼 흘렀음을 가르치고 그 흐름을 이해하여 자신의 내면에 변화를 찾고 가꾸도록 가르치는 위대한 스승이다.


그 가르침을 가장 잘 받아들여 드러내는 이들이 시인이다. 시인은 그 가르침에서 영감을 얻고 자신 속에 받아들여 새롭게 육화(肉化)한 글씨로 적어내는 사람들이다. 시인이 노래한 계절 가운데 가장 많은 것이 봄이다.


이해인 시인은 <봄이 오면 나는>이라는 장문의 시에서 “전략-봄에는 꽃들이 너무 많아 어지럼증이 나고/마음이 모아지지 않아/봄은 힘들다고 말했던 나도// 이젠 갈수록 봄이 좋아지고/나이를 먹어도/ 첫사랑에 눈뜬 소녀처럼 가슴이 셀렌다./-후략” 라고 노래했다. 봄은 나이 든 수도자의 마음조차 흔드는 수완을 가졌고 이 늙어 빠진 할배의 가슴에도 작은 불씨가 있음을 일러주는 멋진 안내자이다.


멀리 서해의 풍도(楓島)에는 변산바람꽃, 노루귀, 복수초, 얼레지, 제비꽃까지 피었다며 어서 오라고 손짓하는 계절이다. 이제 들판에는 별꽃, 광대나물꽃, 괭이밥, 봄맞이꽃, 선갈퀴꽃 등 등 야생화들이 줄줄이 피어서 날 부를 것이다. 노구(老軀)에 힘겨운 줄도 모르고 땅바닥을 기어 다니며 카메라에 담아낼 멋진 봄을 위하여 오늘도 알록달록 고운 꿈을 꾼다.


해마다 오는가 하면 가버리는 봄을 아쉬워하다가 ‘내년 봄에는 기필코’ 뭔가를 이루겠다는 다짐을 한다. 그리고 안되면 내 후년에 또 내년에 그 봄이 영원토록 찾아올 것이라고 믿는다. 이 짧은 봄이 마지막 봄일 수 있다는 생각은 하지 않는다. 봄은 늘 아쉽고 안타까운 계절이다.


늙어서 모든 일이 힘들고 어려워도 어김없이 찾아오는 봄을 위하여 내 남은 기력과 솜씨를 총동원하여 작은 꽃들을 담아낼 것이다. 그리고 올해는 내 유튜브 채널에 작은 꽃들과 작은 곤충들을 멋진 영상으로 만들어 세상에 보여줄 생각이다.


오래 비워두었던 브런치 작가 자리도 활성화하여 글과 그림으로 세상을 아름답게 그려내는 시간도 채워볼 생각이다. 그러려면 버거워하지 말고 어서 들판으로 나가야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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