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후 늦게 신문 대교를 보러 나섰다. 더위가 기승을 부려 폭염주의보가 발효되었지만, 미세하게 조금은 서늘한 기운이 공기층에 흐르는 듯했다. 중복, 대서도 지나고 지난 8일 입추에 이어 10일이 말복이다. 지긋지긋한 장마와 푹푹 삶는 폭염이 반복되던 여름이 한풀 꺾여 서늘바람이 다가설 터이다. 물론 요즘의 기후변화는 절기나 기본 상식 수준으로 흐르는 게 아니어서 함부로 예단할 수 없기는 하다.
그럼에도 서늘한 기운을 느낀 건 내 가을 기다림이 간절해서였는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조금 더 걷다가 이내 그 서늘한 기운의 정체를 찾아냈다. 멀지 않은 아파트 단지 조각공원에서 쓰르라미 소리가 들려왔다. 조금 전에는 청각장애자인 내 귀에 그 소리가 너무 작게 들려 내가 인식하지 못하는 사이에 서늘한 기운으로 변환되어 느껴졌을까 싶다.
쓰르라미 소리, 치성한 여름 더위에 무엇보다 그리운 소리이고 어릴 적 추억과 환상을 불러주던 소리이다. 쓰르라미가 울면 여름이 막바지에 이르렀다는 전주곡이었고 내가 좋아하던 파라시(婆羅柿)가 맛있게 무르기 시작한다는 신호였다.
가을이 저만치 다가설 즈음, 쓰르라미가 먼저 신호를 보내면 우리 집 나뭇간 함석지붕에 옆집 파라시 감나무에서 조홍시(早紅柹)가 떨어졌다. 아름드리 감나무에는 무수한 감이 열려 여름이 한풀 꺾일 즈음이면 함석지붕 위에 ‘텅!’ 소리를 내며 떨어졌다. 아직 붉은색이 짙어지기 전 붉노랑색 감이다. 파라시는 조금 작지만, 가장 먼저 익어 시장 좌판에 등장하던 감이다. 일찍 떨어지는 감은 대개 익을 무렵에 벌레가 꼭지 아래에 파고들어 떨어지는 감이다.
요즘 아이들은 감을 쳐다보지도 않지만, 간식거리가 드물던 그 시절에 일찍 떨어지는 감은 훌륭한 간식이 되었다. 파라시는 물이 많은 감이어서 발갛게 잘 익은 감은 지붕에 떨어지면서 텨져 흩어졌기에 먹을 수 없었다. 조금 덜 익은 감이 떨어져 대굴대굴 굴러 물받이 홈통에 걸렸다.
그렇게 얻은 감을 항아리에 두어 맛이 들게 한 다음 먹다가 보면 뒤이어 먹거리들이 익었다. 지붕에 이어 댄 포도나무 시렁에 포도가 영롱하게 익어가고 추석이 다가오면 세상에 간식거리가 넘쳐나는 가을이 왔다. 대추나무에 대추가 붉어질 즈음이면 멀지 않은 산에 찾아가 ‘으름’을 따고 ‘머루’랑 ‘다래’랑 감들이 익어 그것들을 깨지지 않게 많이 챙겨 오는 일에 마음을 써야 했다. 그 시절엔 쓰르라미 소리가 오늘처럼 서럽지 않았다.
쓰르라미 소리가 조금씩 더 긴 가락으로 변하고 있다. 더위가 막바지에 이르는 8월 초, 장마가 갔다지만, 무시무시한 소나기가 쏟아지면 금세 도로변에 빗물이 강물처럼 범람한다. 연일 폭염주의보와 폭우가 이어지는 기상 지옥이 거듭되고 있다.
유럽엔 극심한 더위가 이어져 기온이 50℃에 육박하고 북미 지역엔 폭우와 극심한 더위가 잇따르고 있다는 뉴스가 자꾸만 두려운 상상을 불러온다. 결국 인간들의 욕심이 자연의 순환을 거슬러 재앙을 스스로 불러들인 결과가 끝내 인간이 지구상에 살지 못하는 지경에 이르렀다는 생각이다.
과학기술이 발달하여 인간의 탄생과 유전까지 간섭하는 지경에 이르고 살상 무기와 수단은 인류 전체를 몇 번이나 죽이고도 남을 만큼 많다. 지구 환경을 보전하는데 필요한 삼림을 베어 넘기고 석유 자원을 마구 뽑아 올려 태운 덕분에 일산화탄소가 지구를 덮기 시작해 지금은 솜이불처럼 거의 완전히 둘러쌌다고 한다.
그에 따라 태양의 복사열이 대기권 밖으로 나가지 못해 기구가 점점 더워졌다. 지난 100년 동안 지구 평균 기온이 1.2℃ 상승했는데 2027년이면 1.5℃에 이를 것이라고 AI는 내다보고 있다. 그렇게 되면 북극의 해빙(海氷)이 녹아 없어지고 시베리아 동토가 녹아 그 밑에 가두어진 메탄이 분출하여 지구 온난화가 급속도로 빨라져 감당할 수 없는 지경에 이를 것이라는 경고도 있다.
메탄은 이산화탄소보다 2.5배 더 빠르게 지구 온난화를 불러온다. 풀을 먹는 소가 내뿜는 메탄가스 양은 하루에 적게는 150리터, 많게는 500리터라고 한다. 지구상에 있는 젖소와 육우 수가 15억 마리라고 하니 소가 하루 평균 250리터의 메탄가스를 내뿜는 걸로 계산하면 매일 3,750억 리터의 메탄이 지구를 덮어가고 있다는 결론이 나온다.
이런 모든 지구 환경을 종합하면 이미 지구는 인간의 능력으로 기상 재앙을 막을 수 없는 지경에 이른 듯하다. 말로만 걱정하면서 소고기를 싸게 먹느라 소를 더 키우고 편하게 사느라 생산시설을 확장하면서 아직도 화력발전을 멈추지 않는다.
100미터 거리도 자동차를 운전해 가고 온갖 쓰레기를 배출하여 환경을 오염시킨다. 나만 편하면 그만이고 나만 잘 먹고 잘 지내면 그게 행복이라고 믿는 이기심이 경쟁하듯 만연하는 시대다.
지금이라도 모든 걸 멈추고 멸망의 길을 되돌릴 방법을 찾아야 한다.
쓰르라미 소리가 더욱 자지러드는 8월 초순을 건너며 어쩌면 우리는 오래지 않아 쓰르라미 소리도 들을 수 없을지 모른다. 인간의 욕망이 지구를 생물체가 살 수 없는 행성으로 만들어버린 건 아닌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