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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푸르고운 Aug 01. 2024

소리의 레이어 Layer를 소환하다

새벽잠에서 깨어 커튼을 걷고 내려다본 세상이 하였다. 잠에서 덜 깬 눈에 보인 하얀 세상에 줄지어 세워진 자동차들은 모두 같은 색이었다. 크기가 조금 다를 뿐, 새 차나 헌 차를 구분할 수 없고, 색이 모두 감추어져 다 희고 고만고만한 듯 보였다. 자동차만 그런 게 아니라, 보이는 게 모두 하얗고 아무것도 없이 지워진 듯 느껴졌다. 검은 아스팔트 도로와 붉은 포장도로의 색이 모두 같았다. 밤새 내린 눈이 세상을 제멋대로 덧칠해 버렸다. 동녘이 희붐하게 밝아오는 이른 새벽의 눈 덮인 정경은 아련한 그리움 같은 유혹을 담고 있었다. 바람도 밤새 눈을 날라 쏟아붓느라 고단해서, 눈을 얹고 서 있는 나뭇가지 사이에서 졸고 있는지 조용했다.


눈 내린 아침의 멀고 아득했던 소리의 기억을 떠올리며 베란다 창을 열었다. 어릴 적에 겨울방학 때 늦잠을 자고 있으면 아버지가 방문을 활짝 열어젖히며


“이놈들아! 눈 왔다. 어서 일어나 눈 치우고 밥 먹어야지.” 하시던 그때, 정신이 번쩍 들도록 찬 바깥 기운을 따라 들려오던 소리가 그리웠다. 눈 쌓인 날이면 아이들이 울타리 밖 눈밭에서 뛰놀며 떠드는 소리가 멀게 들렸다. 그 먼 소리가 들리면, 밥을 먹는 둥 마는 둥 밖으로 뛰어나가 눈밭을 뒹굴고 목청껏 소리치며 놀았다. 이 나이에 이르도록 겨울마다, 눈이 내린 새벽에는 항상 그때의 아이들이 떠들며 까르르 웃는 소리가 들려올 것 같아 밖을 내다보았다. 눈이 소리를 다 받아먹어 버리고 조금만 남겨놓았기에 들리는 소리는 멀고 아득했다. 아득한 그 소리는 부모와 형제들의 사랑 속에서 잘 뛰어놀기만 하면 되었던 행복한 시절의 그리움 같은 신호였다.



그 소리가 다시 들릴 까닭이 없지만, 베란다 창문과 방충망까지 열어젖혔다. 청량한 새벽의 기운이 한꺼번에 쏟아져 얼굴과 드러난 맨살에 찌르르하게 덤벼왔다. 그리고 눈에 먹혀 아득하게 들리기를 기대한 소리는 전혀 들을 수 없었다. 너무 이른 새벽이어서 들릴 소리가 없는 데다, 세월이 만들어준 청각장애자인 내가 보청기조차 끼우지 않았으니, 나의 기대는 애초부터 잘못된 것이었다. 얼마나 많은 시간이 흘러갔던가, 그 시간 속에서 바래고 소멸해 버린 '소리의 레이어 Layer'를 오늘의 눈에 겹쳐서 멋진 그림을 만들어보겠다는 건 어설픈 시도였고 환상이었다.


찬 기운과 함께 적막 속에 하얗게 비워진 세상이 낯설게 다가섰다. 여태 내가 보아오던 공간이 아니었다. 보이는 눈 세상처럼 내 머릿속도 하얗게 비워졌다. 그리스 신화에서 죽은 영혼이 건넌다는 다섯 강 중에 마지막인 망각의 강이라는 '레테'를 건너면 이런 느낌일까? 어둑새벽을 덮고 있는 눈은 모든 색과 기억을 단번에 지워버리고, 내 의식 세계에 생경한 언어들을 부어주었다.


내 기억을 제멋대로 지워버리고 흰색으로 칠해버린 눈이 날 깨우쳐 일러준 말은


‘영원한 것은 없다. 모든 것은 쉼 없이 변한다.’였다. 내린 눈은 해가 솟아올라오면 오래지 않아 녹아 흘러가고 원래의 모습과 색이 돋아날 터이다. 나는 어리석게도 드러나는 그 모양과 색조차도 시간 속에서 미세하게 변화하고, 앞으로도 변할 것이라는 진리를 짐작조차 하지 못하고 있었다.




불가佛家에서는 사람이 사는 동안을 두고 *수유須臾에 불과하다고 했다. 그런 순간을 살면서 우리는 너무 많은 것을 얻으려 하고, 이름 지어가며 따지고 미워하고, 죽는 순간까지 욕심을 채우지 못해 버둥거리다가 숨이 끊어진다. 눈이 내렸다가 해가 뜨고 시간이 흐르면 녹아 사라지듯, 그렇게 부질없는 삶에서 무엇을 믿고 무엇을 탐하였던가?


다시 들을 수 없는 소리, 되돌아갈 수 없는 시간, 뼛속 깊이 밴 외로움이 들추어낸 그리움의 화인火印이 내 가슴을 뜨겁게 지지고 태웠다. 다시 쓰라린 아픔이 지나갔다. 내가 찾아보고자 했던 소리의 레이어는 달라진 시간에서는 맞추어 볼 수 없는 해묵은 버전 Version이었지 싶다. 자고 나면 변하는 시대에 살면서 묵은 버전의 추억을 뒤적거리는 어리석은 짓은 그만두자, 변하지 않는 건 없다. 쉼 없이 변하는 속에 살면서 같은 생각으로, 같은 방식으로 나날을 보낼 수는 없다. 지난날을 자꾸만 되돌아보며 자책하는 일도 이제는 그만 끝내야 한다. 흐르는 시간의 물결에 맞서려 하지 말고 바닥에서 발을 떼고 몸을 띄워 흘러가야겠다.


흘러가며 토끼 꼬리만큼이나 남은 내 시간의 의미를 알아보고 그 시간과 사귀며 삶의 끝에 저 문門이 열릴 때까지 땀나도록 가자.




* 須臾 : 눈을 한번 깜박이는 시간인 瞬息 보다 조금 긴 시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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