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국에서 0학년이 된 아들 이야기
오늘 서울은 오후부터 눈이 내리고 있다. 아침부터 황사가 가득하더니 차가운 겨울 공기 중에 물방울들을 똘똘 뭉쳐줬나 보다. 망원동 골목골목 벽돌집들 사이로 내리는 눈이 제법 운치 있다. 집 가까이에 있는 수많은 카페들 중 하나에 들어와 라테를 시키고 랩탑을 펼쳤다. 길 위에 쌓인 눈이 내 안에 쌓인 이야기 같다. 늘 그렇듯 금세 녹아 사라지겠지.
지난 여름에 쓴 이탈리아 남자에게 친절을 받은 이야기가 다음 메인에 소개가 되었다.
https://brunch.co.kr/@jaehoshindler/37
인생이 그렇듯 이곳에 쓰는 이야기들이 늘 그렇게 흥미진진한 이야기일 수 없다. 지루한 일 이야기는 쓰지 않으면 안 되는, 선물로 받은 스타벅스 쿠폰 같다. 지루하기 짝이 없는 맛이라도 아까워서 써야 한다. 높아진 연봉만큼이나 사람에 대한 피로감도 높아지며 일은 거듭 지루해지고 있다.
그런 평범한 일상 속 특별한 아이와의 시간을 기억하기 위해 선택한 브런치였다. 사진으로도 남기고 비디오로도 남기지만, 그때 아이가 어땠는지, 어떤 상태였는지, 우린 어떤 고민들을 했었는지는 그곳에 남지 않는다. 대단한 아빠는 아니지만 그래도 그 순간순간을 소중히 생각하는 아빠이고 싶었다. 그래서 오랫동안 쓰지 않았던 말밥을 남기며 글을 시작했다. 일상의 분주함과 게으름으로 인해 아이는 내 글쓰기보다 빠른 속도로 자랐다. 한참 지난 일기를 쓰는 느낌이 매일 든다.
아이는 만 4살을 지나며 학교를 갈 준비를 했다. 아직 한국 나이로는 5살이기에 무슨 학교냐고 생각할 수 있지만, 영국이 그렇다. 만 4세부터 reception이라 불리는 초등학교 0학년이 시작된다. 그래서 어떤 부모들은 갈등하고 어떤 부모들은 안심한다. 4살을 학교 보낼 생각에 걱정이 앞서기도 하고, 유아교육비가 매우 비싼 영국이기에 이때부터 조금 나아진 살림살이에 안도하기도 한다. 우리도 아직 말도 서투른 아이였기에 어떻게 학교를 보내나 했지만, 늘 걱정은 그뿐이고 그 안에 흘러가기 더 쉽다.
영국은 catchment라는 집 주소를 중심으로 한 우선 배정 대상인 학교가 있지만 선호하는 학교를 지원할 수 있다. 호그와트가 있었다면 가끔 마법을 부리듯 깔끔하게 응가를 하고, 주문을 외듯 중얼거리는 아들에게 입학의 기회를 주고 싶었지만... 검색에 나오지 않더라. 따라서 아들은 머글로 살아가게 되었다.
이런 철없는 또는 별 생각이 없는 부모들을 위해 school tour가 있다. 우리는 주변 세 군데 정도를 다녀봤는데 어떤 부모들은 지역 안에 있는 5 학교를 다 가보기도 한다. 우린 집에서의 거리를 우선으로, 주변 평을 들어보고 세 학교의 투어에 참여했다.
사실 특별할 것이 없는 투어였다. 교장 선생님들이 대부분 예비 학부모 그룹을 리딩 해서 학교를 지나면서 대략적인 학교 소개와 커리큘럼 소개를 하고, 부모들의 질문에 대해 답을 한다. 한 학교 교장 선생님은 본인이 말씀하시다가 내용이 기억이 잘 안 나셨는지 선생님들께 물어보기도 하시고... 대체로 좀 엉성한 편이다.
우리는 결국 집에서 걸어서 3분 거리의 학교를 1순위로 쓰고 지원 이유에 '가까워서'라고 썼다. 그 학교 교장 선생님이 맥고나걸 교수처럼 깐깐하게 생겨서는 아니었다. 학교 뒤에 저주받은 숲이 있다거나 그 숲에 유니콘이 살지도 않았다. 정말로 가까워서였다. 아이의 짧은 다리로 다니기에 충분히 가까웠고, 가는 길이 공원으로 난 길이어서 산책하듯 갈 수 있을 것 같았다. 다른 학교들에 비해 공부에 좀 신경을 쓰는 것은 사실 보내고 싶지 않은 이유였다. 아내는 그래서 상대적으로 좀 더 자유로운 분위기의 학교와 이곳 사이에서 끝까지 고민했다. 그렇게 작년 겨울, 아이의 첫 학교 지원을 마쳤다.
그러던 어느 날이었다. 달빛이 의뭉스럽던 봄날 밤, 갑자기 스산한 바람이 거리에 불고 나무가 흔들렸다. 휘잉 바람소리는 한동안 계속됐다. 집 앞 쓰레기통이 덜커덩 덜커덩하며 진동하는 소리에 자고 있던 아들이 끄응하며 뒤척였다. "슈우 슈우" 토닥이며 내가 내는 바람 소리에 아이는 조금 지나 다시 깊이 잠들었다. 어렴풋이 보이는 아이의 잠든 얼굴이 평안하다. 나는 문득 목마름을 느끼고 아래층으로 내려왔다.
아무도 없는 거실은 고요했다. 이제는 잦아든 바람 소리에 희미해진 달빛만 식탁 가장자리를 어루만지고 있을 뿐이었다. 스코틀랜드에서 제조된 하이랜드 스프링워터 뚜껑을 열고 투명한 유리컵에 따랐다. 졸졸졸. 잔잔해진 컵 안의 수면을 응시한다. 어라? 하나, 둘. 갑자기 동심원이 생기더니 퍼져간다. 두두두. 급기야 식탁이 흔들리며 컵도 덜커덕거린다. '갑자기 무슨 일이지, 지진인가?' 나는 위로 뛰쳐 올라가 잠든 아이와 아내를 데리고 와야 하는지 찰나의 순간 동안 고민했다. 두두두두. 스웨덴에서 온 나무 바닥을 울리는 진동이 커졌다. 그 순간.
수많은 부엉이들이 집 안으로 밀어닥쳤다! 흰 부엉이, 줄무늬 무엉이, 부리가 까만 무엉이, 머리에 뿔이 난 것처럼 뾰족한 부엉이, 날개가 파란 부엉이 가릴 것 없이 밀어닥친다. 막혀있는 것이 분명했던 Fire place를 뚫고 어제 분명히 걸어 잠근 창문을 열어젖히고 더 많은 부엉이들이 밀어닥쳤다. 아아아아, 아니. 자세히 보니 이것들이 부엉이가 아니다. 이것은 비둘기가 아닌가! 어쩐지 색깔이 다채롭다 했다.
구구구구구구구. 비둘기들이 요란스럽게 소리를 내며 집에 물고 있던 것들을 마구 날린다. 저 잡식동물이 무엇을 날리는 것인가. 어제 먹은 새우깡이라도 날리는 것인가, 동네 펍에서 주워 먹은 피시앤칩스 조각이라도 날리는 것인가. 어이가 없어 우두커니 선 내 어깨에 소박히 내리는 무언가를 얼른 움켜잡아 보았다. 그것은 두루마리였다! 두루마리에는 이렇게 써 있고, 이상한 빨간색 도장이 찍혀있었다.
"이 편지는 영국에서 시작되어..."
낭만 없는 영국 녀석들은 아이의 offer letter를 이메일로 친절히 전달해주었고, 아이는 결국 그 가까운 학교에 가게 되었다지. 부엉이는 없었고, 비둘기는 여전히 우리 정원을 비행했지만 집 안에 들어오진 못했다 (창문을 열어두어야 했나?). 아이의 가장 친한 장난꾸러기 친구도, 앞 집에 사는 친구도 모두 이 학교에 부엉이나 비둘기 없이 입학을 하게 되었다. 나중에 알게 된 사실인데 low birth year라고 지원 미달이 될 것을 걱정했던 그 맥고나걸을 닮은 교장선생님의 걱정이 무색하게 30명 정원인 두 반이 꽉 차고 심지어 대기를 탔다. 홍콩 민주화 운동 이후에 홍콩 사람들이 대거 영국으로 왔는데, 우리가 사는 도시에도 적지 않은 사람들이 온 까닭이었다. 교육열이 넘치는 그들은 다른 마을에 살면서도 이 학교에 굳이 지원을 해서 20분 운전을 해서 아이를 통학시켰다. 혹시 학교에 동양 아이가 아이뿐일까 했던 우리의 걱정도 함께 눈처럼 녹아 버렸다.
그렇게 9월에 학교가 시작되고 아이는 초등학생이 되었다. 0학년이라고는 하지만 파닉스도 배우고, 기본적인 산수도 배우는 나름 정규과정이었다. 신기하게 어린이집 격인 nursery보다 아이는 학교가 마음에 든다고 했다. 무언가 배우는 게 재미있는걸까. 학교 선생님은 nursery 선생님들보다 더 아이에게 관심이 없는 지 별 말이 없는데. 교복을 입고 아침마다 나서는 길이 마냥 가볍진 않다.
학교를 가는 길, 마주치는 이웃들과 뚜시뚜시 이상한 소리로 인사를 건네고 여전히 반에서 최고 장난꾸러기로 선생님께 혼나기도 많이 혼나지만. 매일 공룡만 그리던 아이가 아빠 얼굴이라고 웃는 얼굴을 그려줬을 때 그 기쁨을 소중하게 간직하게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