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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발모어책방 Dec 19. 2023

그때 그 아이라는 걸

어느새 여기 나이로 다섯 살이 된 첫째는 그 사이 Year 1이 되었다. 한국으로 치면 나름 1학년에 해당하는 정식 교육에 접어든 것이다. 학교에서 영어 Phoenix도 열심히 가르쳐 준 덕분인지 이제는 제법 영어로 된 책이나 매거진도 혼자 잘 본다. 혼자 책을 크게 소리 내어 읽기도 하고, 모르는 단어가 있으면 물어보기도 한다. 한국어와 영어, 두 언어 모두를 하는 아이라 어떨 때는 한국어로 알기도 하고 어떨 때는 영어로만 알기도 한다.


언어는 아이에게 세상에 대한 탐색 과정이다. 겨울이 가까워와서 입김이 나오자 이걸 '영어말'로 뭐라고 하냐고 묻는다. 그렇다, 교포느낌으로 '영어말'이라고 아직 표현하는 다섯 살 되시겠다. Breath fog이라고 알려줬나 아님 그냥 breath라고 알려줬던가. 점점 영국에서 학교를 다니지 않은 아빠의 vocaburary를 넘는 질문들이 등장한다. 아이는 학교 가는 길에 아빠 머릿속의 혼란 같은 희뿌연 입김을 만들고 그 사이를 폴짝폴짝 뛰어다닌다. 아이는 새로 배운 말들 사이에서, 그리고 아빠가 되도록 어렵게 설명한 왜 입김이 만들어지는지에 대한 과학적 사실 사이에서 자라고 있다.


동생이 태어나고 늘 붙어있던 엄마와 떨어져 아빠와 자신의 방에서 자야 하는 처량한(?) 신세가 된 아이는, 그래도 더 잘 자고 있다. 늘 엄마의 젖과 품이 있어야 자던 아이가, 자신이 좋아하는 공룡으로 뒤덮인 방에서 - 정말 이불, 텐트, 침대패드, 각양각색의 공룡인형 등 정말 모든 것이 공룡인 공간 - 자는 것을 보는 일은 부모에게도 색다른 경험이다. 늘 자신이 원하는 온도와 엄마의 냄새, 적당한 진동이 있어야 자던 아이가 그렇게 세상과 타협을 시작한 나이. 더 이상 자신이 원하는 것만 얻을 수 없는 나이. 아이는 어른의 세상을 배워가고 있다.


덕분에 아이의 아침은 일찍 시작한다. 얄짤 없는 아빠의 저녁 8시 이전 취침 방침 덕분에 이전보다 일찍(?) 잠든 아이는 대략 아침 6시면 깬다. 문제는 처음에는 잘 같이 내려와 주던 아빠가 이상한 핑계를 대면서 혼자 내려가서 놀라고 한 뒤부터이다. 잠이 깬 아이는 자신의 방 문을 열고, 컴컴한 무서운 계단에 혼자 불을 밝힌 뒤, 동생과 엄마가 깰라 조심히 내려온 뒤, 아무도 없는 거실에 또 다른 빛을 불어놓고 혼자만의 시간을 가진다. 전날 미처 탐색하지 못한 안킬로사우르스의 꼬리가 얼마만큼 강력한 회전력을 지녔는지, 스피노사우르스의 등에 솟아오른 스핀이 정말 더위를 막아주는지 등을 1시간을 탐색하고 나면 지루해진다.


겨울에 가까워질수록 영국의 너른 들과 초원에 얼굴을 부비며 등장하는 아침햇살에 지루한 눈을 뜬 아빠가 내려오자 아이가 말한다.


"아빠, 내가 엄마랑 아빠 깨우려고 우웨에케에엑 공룡 소리를 냈는데도 엄마 아빠가 내려오지 않았어"


아이의 순진한 고백에 나는 너털웃음을 짓다가, 새삼 이 아이가 그때 그 아이와 같은 아이라는 걸 깨닫는다.


건강하게 태어나준 것이 고마웠던, 장애 확률이 1:48이었던 아이

낮에는 늘 아빠와 엄마를 향해 웃어주었던 아이 (밤에는 그렇다고 하지 않았음)

걸음마를 배울 때 아빠의 손을 기억하고 늘 비대칭으로 두 손을 들고 공원을 걷던 아이

빨간 영국 버스 장난감에서 나오는 노래에 엉덩이를 씰룩이며 춤을 춰주던 아이

Baby walker에 달린 문을 유달리 좋아해 열고 닫으며 놀던 아이

왕할머니 돌아가셔서 한국에 간 아빠를 그리며 울던 아이

잠을 잘 자지 않아서 안고 한참을 걸어야 잤지만 안고 있으면 따뜻하고 좋은 향기가 나던 아이

Caversham court garden에서 아빠와 술래잡기를 하며 꺅꺅하고 뛰던 아이

낯선 childminder에게 다녀와서 엉엉 울던 아이

Softplay 가서 울퉁불퉁한 미끄럼틀을 꺅꺅대며 타고 내려오던 아이

조금만 뛰면 이상하게 기침이 나던 아이, 그래도 늘 뛰던 아이

잠을 잘 자지 못해 주말이면 유모차에 태워 강가를 한참 산책해야 해서 엄마와 아빠에게 이야기할 시간을 주었던 아이

아빠가 생일에 써준 그림카드를 바로 던져버리던 장난기 많은 아이


같은 아이라는 것. 지금은 학교를 가는 공원 어귀에서 골목대장처럼 뛰어다니고, 앉아서 동생에게 책을 읽어주고, 떼를 부려서 저기 가족과 떨어져 혼자 공룡을 갖고 놀면서 "혼자 있기 싫은데" 외치고, 말을 너무 안 듣는다며 열받은 엄마를 피해 도망 다녀도. 그때 그 아이와 같은 아이라는 것.


메리 크리스마스, 아이야. 올해는 학교 크리스마스 연극에서 트리가 되었던 너가 참 귀여웠어. 형아가 되고 Year 1이 되어서 힘들었지. 그래도 동생이 태어난 뒤가 더 좋다는 넌 참 멋진 아이인 거 같아. 한 해가 또 이렇게 가고 너와 함께 있는 시간들이 어려웠던 것도 있지만 그래도 감사하고 행복했어. 고마워, 그 때나 지금이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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