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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발모어책방 Jul 20. 2023

이곳, 그곳. 어느 선생님의 죽음

한국에서 일어난 소식을 먼 곳에서 듣는다. 멀리 있어 그 소식의 황망함을 다 느낄 수는 없겠지만, 늘 마음을 무겁게 하는 것은 그것을 둘러싼 목소리들이다. 수학여행을 가다 바다로 사라진 아이들을 조롱하던 사람들, 이태원에서 축제를 즐기다 스러진 젊은 목숨들을 비웃던 사람들, 매년 비가 오는 시기에 온 비인데 수없이 사람들이 죽어도 나는 상관없다 하는 사람들. 보상금이네 뭐네 하며 본질을 흐리며 돈으로만 세상을 보는 사람들.


한 젊은 선생님이 목숨을 끊었다. 예고된 일이었을지 모르겠다. 요즘 학교는 어떻다는 이야기는 마시 도시전설처럼 퍼졌으니까. 그리고 부디 화환과 꽃다발을 멈춰달라는 그 학교 학부모의 글을 보고 다시 마음이 무거워졌다.


동시에 올해 초에 이곳에서 있었던 일이 떠올랐다.


아이가 다니는 초등학교 교장 선생님이 돌아가셨다. 크리스마스와 새해 휴일이 끝나고 난 직후 학교에서 급하게 보낸 이메일로 처음 그 소식을 들었다. 선생님이 돌아가신 바로 다음 학교는 이미 학생들에게 알리고 교육청에 해당하는 기관의 상담팀을 배치해서 충격을 받은 학생들을 따로 상담을 시작했음을 알렸다.


그리고 가끔 조깅을 같이 하는 이웃에게서 듣게 된 것은, 교장 선생님의 죽음이 작년 말에 있었던 학교 평가와 관련이 있다는 것이었다. 영국 학교들은 Ofsted (The Office for Standards in Education, Children's Services and Skills)라는 기관에서 정기적으로 감사를 받고 평가를 받게 되어있다. 아이가 다니는 학교는 이미 오래전에 Outstanding이라는 최고 평가를 받은 곳이었다. Outstanding을 받은 학교는 차후 10년 간 평가가 면제되는데 작년 말이 그 평가를 다시 받는 해였다.


교장 선생님은 이 평가를 앞두고 굉장한 스트레스와 우울감을 주변에 표했다고 한다. 사실 우리는 집에서 제일 가까워서 여길 보내지만, 이 학교의 평가를 보고 보내는 부모들이 많기 때문이다. 아이들이 줄면 상대적으로 규모가 작은 이 학교 특성상 예산이 줄고, 교육의 질이 떨어지고, 등급이 더 떨어지는 악순환을 겪는 학교들이 많다. 그래서 따로 펀드레이징 행사도 많이 열기도 했다.


안타깝게도 그 평가는 최악으로 치닫았다. 평가관이 학교를 방문했을 때 어떤 아이가 아이들이 할 수 없는 게임에 나오는 춤을 췄는데, 그것을 포함해서 safeguarding 부문에서 최하점을 받으며 전체 학교 평가가 최하로 떨어진 것이었다. 이로 인해 교장 선생님이 돌아가셨고 교장 선생님의 가족이 BBC radio에 나와서 인터뷰를 했고 세상에 더 많은 사람들이 알게 되었다. 사실 거의 영국 전역에 큰 충격을 준 스캔들에 해당하는 일이었다.


그럼 여기서  질문. 학교와 지역사회는 어떻게 반응했을까?


앞서 언급했듯이 학교는 즉각적으로 필요한 학생들을 대상으로 상담을 진행했다. 1월부터 매주 받았던 학교 뉴스레터에는 어떻게 가정에서 아이들을 도울 수 있는지, 학교는 무엇을 하고 있는지 알리고 있다. 어느 학부모가 트라우마를 겪을 아이들을 걱정해 추모를 멈춰달라고 말하지 않아도 됐다.


학교는 그 외에도 교장 선생님에 대한 Memory book을 운동장에 둬서 학부모들과 아이들이 추모의 글을 남길 수 있게 했고, 학교 이메일을 통해서도 메시지들을 받아서 따로 프린트를 해서 덧붙이기도 했다. 그 이유가 무엇이든 아이들에게 선생님을 추모할 수 있게, 슬퍼할 수 있는 방법과 시간을 줬다.


학부모들은 학교 프로젝트에 소매를 걷어붙이고 참여했고, 나무를 심고 꽃을 가꿨다. 아이들이 교장 선생님의 공백을 느끼지 못하게, 학교를 더 따뜻한 곳으로 만들기 위해 노력했다. 더 나아가 지역 사회와 함께 선생님을 추모하는 시간을 공원에서 따로 가지기도 했다. 교육계 종사자들은 45000명의 서명을 모아 Ofsted의 평가 시스템에 대해 항의하는 시위를 웨스트민스터에서 하기도 했다. 이후 교장 선생님의 가족은 교육부장관과 면담을 가지기도 했다. 어느 학부모가 가디언에 기고한 글을 보면 이 문제를 두고 학부모들이 가지는 전반적인 생각에 대해 알 수 있다.

출처: https://www.readingchronicle.co.uk/news/23444035.ruth-perry-caversham-community-pay-respects-mem

선생님이 돌아가신 후 2달 뒤에 있었던 장례식에는 수백 명의 조문객들이 참여했고, 재학생들이 부른 노래를 녹화해서 틀었다. 우리 아이도 그 노래가 좋았는지, 몇 달 동안 집에서 흥얼거리기도 했다.


이 모든 일은 그 선생님이 완벽한 교육 자였는지에 대해 말하는 것은 아니다. 어떤 부모들은 그 교장 선생님으로부터 상처를 받은 일도 있고, 아이를 전학시켜야 하는 일도 있었다. 학교 평가가 떨어져서 학교의 차후 대책에 대해 설명을 요구하는 학부모들도 있었다. 하지만 그 모든 일은 우리가 가져야 할 슬픔보다 앞서지 않았다. 어느 사람의 죽음에 대해 기본적으로 가져야 할 예의보다 앞서지 않았다.


그리고 이 자리를 빌려 교장 선생님께 개인적으로 고마웠던 마음을 전한다. 작년 둘째를 가졌을 때 조산 가능성 때문에 한국에 가야 하는 상황에서 최선을 다해서 방법을 찾아주신 점. 돌아보니 그때가 가장 힘드셨을 때인데... 사실 아이 학교를 정할 때 교장 선생님의 이 학교에 대한 애정과 열정이 보인 것도 우리에게 중요했던 것. 다시 한번 감사하다고 전하고 싶다.


에필로그라면 아이는 아직 이 학교를 잘 다니고 있다. 새로 수정된 학교 평가가 여전히 최고 등급은 아니어도, 여전히 아이에겐 제일 가까운 학교이고 여러 좋은 선생님과 친구들을 만난 곳이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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