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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나비사슴 Jun 23. 2019

링 아래에서 수건을 준비하겠습니다.

김승섭 <아픔이 길이 되려면>

“건강하세요!”는 잘 지내라는 말을 하고 싶은데, 좀 세련되게 말하고 싶을 때 하는 말이다. 그런데 생각해보면 건강하기가 참 쉽지 않다. 얼마 전까지도 나는 심한 감기에 걸려 2주 동안 앓았다. 왼쪽 고관절은 늘 뻐근한 상태고, 계속 앉아 일하다 보니 허리가 아프기도 하다. 먹을 거 잘 먹고, 좋아하는 고양이와 함께 사는 내게도 아프지 않고 사는 것이 이렇게 쉽지 않다. “건강하세요!”는 사실 희망사항이나 다름없는 말이다.

<아픔이 길이 되려면>은 이렇게 쉽지 않은 ‘건강하게 사는 법’을 연구한 책이다. 그것도 이 사회에서 소외되고 가장 약한 사람들이 건강하게 살 수 있는 법을 고민한다. 차별받는 동성애자, 트랜스젠더, 외국인은 물론이고 회사에서 쫓겨난 쌍용자동차 노동자, 친구들을 잃었지만 마음껏 슬퍼하지 못하는 세월호 생존자, 죄를 짓고 교도소에 있는 재소자 등등 사회에서 보듬어주지 않는 이들이 겪는 아픔을 연구했다. 그리고 그들이 아프지 않으려면, 사회적으로 차별받지 않고 배려받아야 한다는 점을 지적한다.

이 책을 쓴 김승섭 교수님을 처음 알게 된 건 피드에서였다. 내 페친 중 누군가가 좋아요를 누른 글이었다. 성소수자 부모 모임에서 강연을 하고 왔다고 했다. 동성애자를 차별하는 이들을 반박하기 위한 길고 긴 강연 끝에 그는 이렇게 말했다고 한다. 다른 사람의 잘못된 주장에 주눅 들지 말라고. 비록 이 내용으로 그들의 주장에 반박하지 못하더라도 상처 받지 말라고. 그건 대학에서 연구하는 자신 같은 사람의 몫이라고 말했단다. 책에서도 군대에서 동성애자를 처벌하는 것에 반대하는 시위에서 한 말이 있다.


쏟아지는 비를 멈추게 할 수 없다면, 함께 그 비를 맞겠다.


눈시울이 붉어졌다. 얼마나 위로받았을까. 든든했을까.

이토록 따뜻한 시선을 가진 김승섭 교수는 그들과 함께 비를 맞기 위해 데이터를 모은다. 링 위에 올라서 싸울 수 있는 무기를 준비한다. 이 책은 그런 결과물이다. 나는 싸우지는 못하겠지만, 링 아래에서라도 응원하며 물과 수건을 준비하는 사람이 되어야겠다 생각했다. 이 책을 좀 더 많은 사람에게 권하는 일 같은 것. 김승섭 교수님의 후속책 <우리 몸이 세계라면>에 대해서 알리는 일 같은 것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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