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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나비사슴 Jun 21. 2019

여섯 번째 대멸종의 한가운데에 서서

이정모 <공생 멸종 진화>

지구에 벌써 다섯 번의 대멸종이 있었고, 지금이 여섯 번째 대멸종을 향해가는 중이라는 사실을 듣고 너무나 놀랐던 기억이 있다. 멸종이라는 것은 공룡이 이 지구 상에서 사라진 것 외에는 해당사항이 없었다고 생각했기 때문이었다. 생각보다 지구에는 많은 종의 생물이 살았었고, 또 살고 있다. 공룡은 그저 사라진 것이 티가 날 정도로 크기가 큰 생물이었을 뿐이다. <공생 멸종 진화>를 읽으며 그때 궁금했던 다섯 번의 대멸종에 대해서 어렴풋이 감을 잡을 수 있었다.

이 책에 대한 감상을 짧은 단어로 설명하라고 한다면 '논리적 명쾌함'이라고 하겠다. 가장 놀라고 감탄했던 것은 눈의 진화에 대한 이야기였다. 이 책의 저자인 이정모 관장님(전 서대문자연사박물관 관장 / 현 서울시립과학관 관장)이 박물관에 온 사람들이 공룡이 어떻게 태어났는지 궁금해하는 일이 없었다는 에피소드를 이야기한 것이 있다. 나 역시도 눈이 어떻게 생겼는지에 대해 생각해본 적이 없었다. 나도 눈이 있고, 우리 집에 사는 고양이도 모양은 조금 다르지만 눈이 있고, 작은 곤충인 잠자리도 조금 다른 방식으로 작용한다지만 눈이 있다. 따지고 보면 식물에는 눈이 없고, 지렁이에게도 눈이 없는데 왜 눈이 있는 것을 당연하게 생각했을까.

출처 : https://evolution-institute.org/eye-origins-how-evolution-could-produce-a-sophisticated-eye/

눈이 없던 먼 과거의 생물은 진화를 통해 눈을 갖게 되는데, 이때 어떤 한 종에서 눈이 생겨서 분화한 것이 아니라는 점이 놀라웠다. 어떻게든 빛이 존재하는 이 세계를 파악하기 위한 방법으로 생명체에게 눈은 필수적이었던 것이다. 재미있는 것은 진화를 통해 만들어진 눈은 논리적으로 완벽하지 않고, 때로는 효율이 떨어지기도 한다. 그리고 이것은 진화는 자연선택이라는 사실에 강력한 근거가 된다.

눈의 진화처럼 <공생 멸종 진화>는 아무것도 없던 시기부터 설명을 하고 있어서 책을 읽고 있을 뿐인데 마치 타임머신을 타고 지구에 생명이 탄생하기 이전으로 돌아가는 듯한 경험을 선사했다. 생명이 탄생하고 진화하고 멸종하는 데 중요한 시점을 직접 관찰하는 기분이랄까? 수많은 관찰과 분석, 깊은 사유를 쌓아 이제까지 이룩한 과학의 성과를 이렇게 날로 얻어먹어도 되나 싶을 정도였다.

물론 과학에 대한 앎이 짧아 아무리 봐도 모르는 부분이 있긴 했다.

출처 : http://blogs.discovermagazine.com/d-brief/2019/03/20/alligators-shed-light-on-dinosaur-hearing/

예를 들어 공룡의 정의를 중생대 육상 파충류라고 하는데, 어떤 이유로 그렇게 정의가 되었는지 알 수가 없었다. 많은 사람에게 공룡에 대한 대략적인 인식과 편견을 갖게 해 준 쥬라기공원에서도 공룡은 파충류로 표현된다. 하지만 공룡의 골격만 보고 어떻게 파충류로 생각했을지 책에서는 특별한 설명이 없어 이해하기 어려웠다. 나는 파충류에 대해서는 악어나 도마뱀 등으로 생각하고, 냉혈동물이라는 정보만 있었다. 하지만 이후 발견한 화석을 통해서는 깃털이 있는 공룡도 있었을 것으로 추정된다고 했다. 내가 아는 파충류 중에 깃털이 있는 동물은 없어서, 그렇다면 공룡의 정의가 변경되어야 하는 것이 아닌가 생각이 들었다.

출처 : https://amp.livescience.com/474-controversy-evolution-works.html

또, 고래의 화석을 보며 진화의 과정을 엿볼 수 있다는 부분도 이해하기 어려웠다. 그 뼈 사이에 어떤 연관성이 있는지 전혀 알 수 없었던 것이다. 물론 고래에게 골반과 뒷다리가 있다는 사실이, 육상에서 바다로 나갔다는 증거임은 분명할 것이다. 인간에게 꼬리뼈가 남아있는 것이 꼬리가 있었다는 증거인 것처럼 말이다. 하지만 내가 고래 화석을 발견한 과학자라고 가정했을 때, 이 화석 간의 관련성을 찾으라 한다면 전혀 알 수 없었을 것 같다.

그래도 책을 다 읽고 나서, 알 것 같은 느낌을 준 것이 이 책의 장점인 듯싶다.

지금 지구에서 최상위 포식자로 자리를 잡고 있는 인간은, 이전의 최상위 포식자가 하지 않았던 일들을 많이 하고 있다. 석탄이나 석유처럼 오래전 지구의 생물들이 열심히 모아놓은 태양 에너지를 모두 불태워 없애기도 하고, 우리가 어떻게 태어났는지를 연구해 이렇게 책으로 공유하기도 한다. 인간의 지능이 발달한 것의 음과 양인 것이다. 그리고 그런 인간 때문에 95%의 종이 멸종했던 때보다 더 빠른 속도로 멸종이 시작되고 있다고 한다.

SF에서처럼 지구를 떠나 인간만이 존재할 수 없는 것이라면, 사실상 인간은 이 지구에서 다른 생물들과 함께 살아가야 하는 운명일 테다. 함께 살아가려는 노력을 하는 인간들이 많아지면, 멸종의 시기를 조금 더 늦출 수 있기는 하겠지만 정말 새발의 피라는 생각이 든다. 그래서 비관적인지 낙관적인지 모를 결론이 머릿속에 떠오른다. 인간이 멸종하더라도 수많은 생명이 살아온 이 지구는 다른 모습으로 북적북적할 거라는 사실 말이다. 인간은 그저 여섯 번째 대멸종 한가운데에 서서 수많은 생명이 사라져 가는 것을 바라보다 멸종 이후의 누군가들에게 교훈만을 남길지도 모르겠다.


커버 이미지 출처 : https://shop.wildtype.media/products/sydney-brenners-10-on-10-the-chronicles-of-evolut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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