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나비사슴 Jan 27. 2024

너무 달라 아름다운 몽골에서

2017년 여름, 몽골 여행

몽골에서 여행을 시작한 첫날은 매우 더웠다. 정말 상상을 초월한 더위였다. 창문도 몇 개 없는 푸르공으로 하루 450km를 달리는 동안, 차 안은 햇빛을 받아 뜨거운 열기로 가득찼다. 그 온도만큼 뜨거워진 물을 마시자, 마치 공기를 마시는 듯한 착각이 들었다. 부채로 부치는 바람은 더운 공기를 얼굴에 전달할 뿐이었다. 모든 것이 더운 가운데 시원한 것은 손수건뿐이었다. 손수건에 물을 적셔 팡팡 소리가 나게 바람에 날리니 얼음만큼이나 시원했다. 물이 기화하면 시원해진다는 과학 시간의 배움이 몽골에서 유용하게 사용될 줄은 꿈에도 몰랐다.


여행은 일주일로 예정되어 있었다. 이 날씨로 일주일을 보낸다고 생각하니 끔찍했다. 돈을 아껴보겠다고 스타렉스대신 에어컨 없는 푸르공을 선택한 것이 과연 잘한 것일까 뒤늦은 후회를 했다. 엎친 데 덮친 격으로 한 친구는 더위와 체한 것이 겹쳐 복통을 호소했다. 화장실을 찾아 차가 급하게 섰다. 가이드였던 자야는 마트에서 산 미니어쳐 징기스칸 보드카를 원샷하라고 했다. 원래 술을 못 마시는 친구여서 1/3쯤 마시고 화장실로 직행했다. 나머지 술을 남은 5명이 나눠 마셨다. 그때 마신 더운 보드카 한 입이 몽골여행에서 가장 맛있는 술로 기억에 남아있다.


첫째 날 점심을 먹으러 들린 마을


더위만큼이나 놀란 것은 하늘이었다. 사실 한국에서도, 세계 어딜 가든 하늘이 있으니 놀랄 것은 아니다. 하지만 차를 타고 가면서, 차에서 멈춰 서서, 아침에, 해질녘에, 별이 빛나는 밤에... 어느 때고 하늘을 보며 감탄사를 내뱉었다. 한국과 다르게 건물이 없고 산이 거의 없는 초원에서 바라보는 하늘은 뭔가 달랐다. 하늘이 더 가까운 느낌일까. 더 큰 느낌일까. 그 느낌은 일주일 내내 사라지지 않았다. 솔직히 사진을 정리하며, 달리는 차 안에서 찍은 비슷비슷한 풍경이 너무 많다는 생각을 했다. 달라진 것이라곤 땅의 색깔뿐이었다. 하지만 그 순간에는 그 풍경이 어제와 또 다른 감격을 주었을 것이다.


많은 사람이 몽골여행에서 가장 멋있는 하늘로 별이 가득한 하늘을 꼽는다. 하지만 내가 여행하면서 가장 기억에 남은 하늘은 해질녘의 하늘이었다. 그날은 아침에 바양작을 들렀다. 원래는 전날 저녁에 바양작을 보는 스케줄이었다. 그런데 비바람이 너무 세차고, 흙이 질어져 걷기 위험했다. 입구에서 기념품 낙타 인형만 사고 그냥 돌아왔다. 다음날에 아침부터 부랴부랴 준비해서 바양작을 보고, 바쁘게 바가즈링 촐로로 향했다. 언제나 그렇듯 푸르공은 자주 고장이 났다. 달리다 서다, 달리다 서다를 반복했다. 결국 바가즈링 촐로를 들리지 못하고 숙소로 향했다.


몽골에선 해가 9시 반에 진다. 아무리 초원에서 길을 잘 찾는 몽골인들이지만 어두울 때는 위험하다고 했다. 그 전에 예약해둔 숙소를 찾아야 했는데, 가이드가 자주 가던 곳이 아닌지 길을 헤맸다. 가는 길 중간중간 게르가 나올 때마다 길을 물어보곤 했다. 아무것도 없는 초원에서 길을 가르쳐준다고 알 수 있을까 싶지만, 그래도 물어물어 길을 가고 있었다. 그리고 어느새 9시가 넘어서 해가 뉘엿뉘엿 지고 있었다. 일행 모두 지친 탓인지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그런데 해가 지기 시작하면서 모두 그 풍경에 홀렸다. 모두 카메라를 들어 흔들리는 차 안에서 사진을 찍고 동영상을 찍었다. 그날이 여행을 시작한지 다섯째  날이었다. 해가 지는 걸 처음 보는 것도 아닌데 왜 그렇게 아름다웠을까. 완전히 해가 다 지기 전에 가이드가 차를 잠깐 세웠다. 마침 하늘엔 비행기가 지나간 흔적이 구름으로 남아있었다. 완벽했다.


몽골 해질녘 풍경


내가 몽골 여행을 가겠다고 마음먹은 가장 큰 이유는 모래사막을 보고 싶어서였다. 영화나 TV프로그램에서 모래사막을 보며 늘 가보고 싶단 생각을 했다. 심지어 사막을 돌아다니는 게임도 했다. 관광지인 홍고링엘스로 가는 도로 옆에 100km 넘게 펼쳐진 모래사막이 보였다. 드디어 저곳을 내 발로 밟아본다고 생각하니 가슴이 두근거렸다.


홍고링엘스는 셋째 날 여행지였다. 첫날 걱정했던 것과 달리 둘째 날에는 그리 덥지 않았다. 여름에도 얼음이 있다는 시원한 욜링암을 갔기 때문이다. 가이드는 다음날이 모래사막이니 이 시원함을 마음껏 누리라고 했다. 모래사막은 더울 테니 각오를 단단히 하라고도 했다. 그런데 비가 오기 시작했다. 비가 오지 않아 사막이라 하지 않았나. 가이드도 모래사막에 여러 번 왔지만 비는 처음이라 했다.


홍고링엘스는 큰 모래 언덕이다. 300m가 넘는다고 했다. 낙타를 타고서 도착해 모래 언덕을 오르기 시작했다. 멀리서 봤을 때는 그리 높아 보이지 않았는데, 올라가면서 보니 한없이 높았다. 맨발로 오르기 시작했는데 발이 모래 안으로 쑥쑥 들어갔다. 시간제한이 없었다면 괜찮았을까. 해가 지기 전에 올라가야 해서 급하게 올랐다. 비 덕분에 그리 덥지 않아 다행이었다. 게다가 모래 위에 비가 내리자 살짝 단단해져 오르기 쉬웠다. 이제까지 해본 등산 중 가장 힘이 쭉쭉 빠지는 등산이었다.


힘들게 올라가서 본 모래사막의 풍경은 마치 외계의 어느 행성 같았다. 바람 때문에 모래가 만들어낸 곡선의 형태는 파도 같기도 했다. 비가 오지 않았다면 그 풍경에서 일몰을 보았을 것이다. 평생 잊히지 않는 특별한 기억으로 남았을지도 모른다. 그 풍경을 보지 못해 아쉬움은 있지만, 먹구름 가득한 사막은 다른 이들이 보지 못하는 특별한 풍경이라고 위안을 삼았다. 그리고 언젠가 다시 모래사막을 가야 하는 운명이라고도 생각했다. 


먹구름 낀 사막


몽골여행을 간다고 마음먹고 주변에 알렸다. 한번도 가보지 않은 이들은 몽골에 대한 동경과 걱정을 했다. 한번이라도 가본 이들은 정말 좋다는 간증과 격려를 보냈다. 이제 나는 다녀온 사람으로 주변인들에게 몽골여행을 극찬한다. 그런데 무엇이 좋았냐고 물으면 선뜻 무어라 집어 말하지 못한다. 고생은 했지만 풍경이 아름다웠다고 이야기한다. 하지만 그것만은 아니다.


여행하며 나는 평소보다 훨씬 큰 감정을 느꼈다. 가장 크게 느낀 감정은 놀라움이었다. 일상, 내가 늘 살아가는 한국, 서울의 도시 생활과 너무나도 다른 풍경과 문화를 마주했을 때 느낀 감정이 바로 놀라움이었다. 몽골의 웅장한 자연을 바라보며 압도되는 것을 느꼈다. 그 다음은 기쁨이었다. 한국에서 누리던 편리함과 달리 물과 전기가 없어 느끼는 불편함이 있었다. 하지만 물에 적신 손수건의 시원함만으로도 너무나도 기뻤다. 초원 한가운데서 인터넷이 될 때마다 신이 났다.


여행은 그런 것이라 생각한다. 일상과 다른 무언가를 느끼는 것. 몽골은 한국과 너무나도 달라 매력적인 여행지였다. 아마도 다음에도 몽골을 찾게 될 것이다. 다음엔 홉스골을 찾아가서 또다시 아름다운 풍경에 압도되고 싶다. 그 전까지 변하지 않는 모습으로 있어 주기를.

바양작
작가의 이전글 이탈리아 돌로미티로 떠난 8박 9일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