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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롬콤 Jun 24. 2024

가족이기 때문에, 분명히 노력은 필요하다

부족한 내가 사실은 넘치는 나라고, 그렇게 말해주고 그렇게 믿게 된다.


<2018년 1월 새벽 4시에 쓴 글>



예전의 나는 가족의 소중함에 대해 그다지 통감하고 있지 않았던 것 같다.

머리로는 가족이 정말 중요하다는 걸 알고 있고,

내가 정말 힘이 들 때 엄마아빠언니의 한마디가 큰 위로가 되었던 적이 많았지만

'가족들은 어차피 항상 내 옆에 있는데 왜 굳이 따로 시간을 내서 함께 보내야 하지?' 하는 생각을 가지고 있었다. 집에 항상 같이 있기 때문에 자연스럽게 1순위로 생각하지 않는 느낌?


가족여행이나 가족들과의 외식은 친구들이랑 보내는 시간에 비해 재미가 없다고 느껴져서,

나는 가족들에게 내 이야기를 하는 게 매일 어색하고 어려워서,

그리고 내 성격 등의 이유 때문에 가족과 시간 보내는 걸 그렇게 좋아하지는 않았던 것 같다.

각자의 생일이나 기념일 등에는 서로 챙기고 간단한 외식을 했지만 조금 의례적이었고,

그 외에는 내가 기분이 좋거나 필요할 때만 가족을 찾는 경우가 많았다.


평소에 가족을 잘 챙기지 않는 건 아니다.

오히려 주위 친구들에 비해 선물처럼 물질적인 부분은 훨씬 잘 챙기는 편에 속하고, 편지도 꽤 자주 쓰곤 했다.

그저 그 '챙김'에 내가 직접적으로 속해있지 않고, 같이 시간을 보내지 않았던 것뿐이다.


더 어릴 때는 가족들은 의무적으로 일정한 시간을 함께 보내야 한다며 나에게 강제적으로 요구한다고 느꼈었다.

가족으로서 엄마아빠에게 필요한 부분은 받는다,

하지만 그에 상응해서 꼭 시간을 같이 보내고 얘기를 많이 나누어야 하나?

그에 대해서 당연하게 생각하지 않고 뻔뻔하게 행동하지만 않으면 괜찮은 거 아닐까?

남도 아니고 가족인데? (...라고 꽤나 당당하게 생각했었다)




나는 정말 가까운 친구들에게도 100퍼센트 다 털어놓거나 편하게 대하지 못한다.

정말 친하다고 할 수 있는 사람이 점점 줄어들면서,

내가 '진짜 친구'라고 부르는 사람들과의 관계까지 끊어질까 봐 짜증 나거나 서운한 일이 있어도 참았고 하고 싶은 말이 있어도 많이 눈치를 봤다.


그러다가 어느 순간부터는 그게 정말 친한 친구라도 불필요하게 만날 바에는 그냥 혼자서 시간을 보내는 게 더 좋아졌다. (친한 친구들과는 어차피 자주 연락하거나, 가끔 연락하더라도 그 사이를 유지할 수 있는 게 진짜 친한 친구라고 생각해서. 굳이 할 게 있거나 일이 있어서 만나지 않아도 그들과의 관계는 유지될 테니까.)


나는 전에 친구 사이에서건 학교에서건 억지로 한 일들도 많았고,

부당하다고 느껴진 것도 표현하지 못하고 그저 힘들어하면서 참아냈던 것이 많았다.

그래서 잘 실천이 되지는 않지만, 남들 때문에 괜한 시간 낭비 감정 낭비는 하지 말자고 계속해서 다짐을 하려고 했다.

시간을 낭비하더라도 그냥 나 혼자 쉬면서 낭비하자-는 생각도 했다.


가족 안에서라도 내가 진심으로 하고 싶을 때 원하는 걸 하고 싶다고 생각했다.

태어날 때부터 뗄 수 없는 가족이라는 관계가 되기 때문에, 노력해서 친분을 유지해야 하는 관계와는 바탕부터 다르다고 생각했다.

가족들과 집에서 짧게 짧게 얘기하는 건 재밌다고 느낀다.

하지만 밖에서 같이 다니면서 오랜 시간을 보낼 때는 뭔가 분위기도 다르고 조금 어색하다.

그게 가족 전체가 아니고 나랑 엄마 혹은 아빠, 나랑 언니 이렇게 둘이서면 더 불편했다.

평소에 아빠엄마, 특히 언니에게 많이 의지하면서도 막상 밖에서 시간을 보내려고 하면 불편한 마음이 컸다.




하지만 최근 친할아버지 장례식을 치르면서 나는 신기할 정도로 크게 변했다.

며칠 동안 많은 일들을 겪으면서 몸도 마음도 힘들었고, 화나기도 슬프기도 했으며,

예전 나의 모습에 대해 자책도 반성도 했다.


사춘기 시절의 내가 떠오르면서 엄마에게 정말 많이 미안했다.

그때 힘들었던 엄마를 도와주지 않고 그저 불평만 했던 내가 너무 후회스러웠다.

사춘기가 심했을 때는 어쩔 수 없었다지만, 펑펑 눈물이 날 정도로 엄마에게 미안했다.

엄마도 우는 나를 달래면서 울었다.

장례식 기간 동안 주변 상황 때문에 우리 가족 4명이서 똘똘 뭉치게 되었고 솔직한 이야기도 많이 나눴다.


내 주변 사람들, 특히 가족들이 건강하게 옆에 있을 때 잘하자. 나중에 후회하지 않게.

무슨 감정의 변화인지, 사실 나도 명확히 표현하기는 어렵다.

전과는 확연히 다르게 가족들과 있는 시간이 즐겁고 재미있다.

가기 싫었던 얼마 뒤의 가족 여행도 의욕이 솟고, 그동안 나서서 많이 찍지 않았던 가족사진도 잔뜩 찍어오고 싶다.


아빠 엄마 언니와 붙어있고 싶고, 장난도 더 많이 치고 계속 얘기하고 싶다.

내 가족들에 대한 깊은 애정을 느낀다.

이제 가족들이랑 시간을 보내는 게 전혀 낭비로 느껴지지 않고 기분이 좋다.

며칠 전에 엄마랑 언니가 어떤 강연을 들으러 가자고 했는데, 평소 나라면 생각도 하지 않고 거절했을 것이다.

그런데 강연에 대한 관심보다는 엄마 언니와 시간을 보내고 싶어서 흔쾌히 갔다.


아무튼 변한 내가 참 신기하고 뿌듯하고 조금은 자랑스럽기까지 하다.

그래서 내 생각과 감정을 가족들에게도 말하고 싶지만, 그건 너무 부끄럽고 어색하니까 아직 무리무리다...

그래도 내 바뀐 모습을 언젠가는 가족들이 느끼고 칭찬해 줬으면 좋겠다.

딱히 칭찬받을 일은 아니지만 그동안 가족들과 시간 보내기를 피하고 조금은 낭비라고 여겨왔던 나를 생각하면, 그리고 앞으로 더 많이 바뀌고 가족들을 소중히 여길 나를 위해서

아빠 엄마 언니가 잘했다고 칭찬해 줬으면 좋겠다!






<현재의 덧붙임>


이런 글을 썼던 2018년의 나와, 2024년 지금의 나는 또 다르다.

그 사이에 한 번 더, 가족에 대한 나의 생각과 태도가 바뀌게 되었는데 그 이야기는 나중에 따로 이야기해야지.


현재를 꾸며내지 않고 과거의 나를 감추지 않기 위해서, 가감 없이 쓴 글을 그대로 복사해 왔다.

철이 들고 나서 어릴 때 나의 행동과 말을 다시 돌아보니 조금 마음이 아프고 부끄럽기도 하다.

그래도 어찌 되었든 나는 변했고, 또 한 번 좋은 방향으로 나아가고 있으니까 괜찮다.



위에서 말했던 것처럼, 내가 크게 변화한 계기는 친할아버지의 장례식이었다.

사실 할머니 할아버지와는 1년에 한두 번 뵈는 게 다였고, 따로 연락을 드린 일도 손에 꼽았다.

잘했다는 건 당연히 아니지만.. 어렸을 때 할아버지 할머니가 나를 예뻐했다는 어렴풋한 기억 위로, 내가 크면서 생긴 어색함이 덮였다.  

엄마아빠가 아닌 할머니 할아버지와 평소에 가깝게 지내는 건 특정한 상황(어릴 때 할아버지 할머니가 길러 주셨다거나)이 아니면 솔직히 주변에서도 거의 보지 못해서 이런 내가 무정하다고 생각하지는 않는데,

친할아버지가 돌아가셨을 때 그 자체의 사실에 대해서는 덤덤하게 받아들였다.

큰 병으로 오래 아프셨거나 아직 젊은 나이에 돌아가신 게 아니었고, 어느 정도 자연스럽게 다가온 죽음이었다고 생각한다.


언니와 나는 집안에서 '장례식에서 앞에 앉아 조의금 받는 일은 남자가 해야지' '할아버지 사진이나 유골은 남자들이 들어야지' 같은 말에 모두 반박하기 위해서 장례식에서 며칠 동안 열심히 엄마아빠를 도왔고,

친할아버지는 내가 다 큰 성인이 된 후 돌아가셨기 때문에 장례식이 끝날 때까지 내가 느꼈던 건 슬픔보다는 책임감이었다.

돌아가신 할아버지보다는 할아버지를 보내면서 우는 엄마와 아빠를 보고 눈시울이 시큰해졌다.


장례식을 모두 마치고 집에 와서, 나는 엄마를 붙잡고 펑펑 울었다.

사춘기의 폭풍을 겪고 있을 때 돌아가신 외할아버지가 생각나서였다.

그때 엄마는 입이 부르틀 정도로 많이 힘들고 슬퍼했는데, 바보 같고 어린 중2의 나는 장례식에서 오래 자리를 지키고 있는 걸 그냥 싫고 불편해했으며 가족들을 도와주지도 않았다.

친할아버지의 장례식을 치르면서 제대로 보내드리지 못한 외할아버지와, 그때의 어리기만 했던 내 행동거지가 떠오르면서 엄마한테 너무나 미안했다.

아직도 가끔 그때를 떠올리면 조금 울컥한다.




그래도 늦게라도 깨달아서 다행이다.

가족들은 어차피 항상 옆에 있는 존재잖아, 같이 사는 '가족'인데 따로 모여 앉아 보내는 시간이 굳이 필요해?, 남도 아니고 가족인데? ...는 모든 말은 다 철없음에서 나온 거였다.

가족이기 때문에 오히려 하지 못했던 혹은 하기 어려운 속 얘기를 꺼내는 연습을 하고,

한 집 안에서 각자의 방에만 있는 게 아니라 같이 밥을 먹으며 이야기를 하고,

어색하고 불편한 부분이 있다면 서로 의식적으로 노력해야 한다.

가족이기 때문에 '더 당연하게 생각하면 안 되는 것이었다'.


친구들이나 남자친구에게는 자연스럽게 나오는 표현들이 혈연관계에서는 솔직히 어색할 수 있다.

이건 어느 정도 자연스러운 반응이라고 생각한다.

가족들끼리 스킨십을 하면 으잇!하는 거부 반응이 있는 것처럼?


그런데 표현을 하고 안 하고는 엄청난 차이를 만들어내더라.

예를 들어서 나는 중고등-대학교 시절을 지나면서 성격의 변화도 겪었고,

어느 순간부터 애교가 많이 생겼는데 이게 가족들 사이에서 굳건한 '애기 막내'의 위치를 만들어주는 데 큰 기여를 했다.

엄마는 아빠나 언니한테 나를 너무 아기처럼 대하면 버릇이 나빠진다고 말하지만

아빠와 엄마의 작은 딸, 그리고 언니의 동생으로서 뻔뻔하게 애교를 부릴 때 기분 좋은 사랑스러움이 감도는 건 분명하다.

그래서 부리는 건 아니고 저절로 나오는 애교이긴 하지만요.. :)



내가 귀엽지 않게 굴던 시절, 언니는 몇 번이나 말했다.

장문의 카톡으로도, 편지로도, 가족의 소중함에 대해서 반복하곤 했다.

언니는 나에게 제2의 엄마 같은 느낌이 다분해서 그런 소리가 막연한 잔소리로 느껴질 때도 많았지만 나중에서야 느꼈다.

그건 언니의 지난한 노력이었구나.

(우리 가족의 행복에는 언니의 역할이 정말 크다고 할 수 있는데, 이건 또 나중에 따로 풀어서 써보겠다)




좋지 않게 끝났던 관계들, 이에 받은 상처, 워낙에 사서 걱정을 하는 성격,

그리고 지금에 와서는 일방적인 게 아니라 방식은 달라도 서로 진심을 다하는 관계에만 신경 쓰자 했던 굳은 다짐. 등등으로 인해서 나는 보다 '가벼워졌다'.

꽤 많은 포기가 동반되고 가끔은 씁쓸함을 느끼기도 하지만, 그래도 결과적으로는 부담감도 덜었다.

현재 나에게 중요한 사람들은 지척에 있는 친구들과 남자친구, 그리고 가족뿐이다.


이제는 '가족 안에서라도 내가 진심으로 하고 싶을 때 원하는 걸 하자'는 방식이 아니다.

가족 안에서라도 편하게 혼자만의 시간이 필요했던 과거의 나였기에 왜 내가 그런 생각을 했었는지 알고, 그때의 내가 조금 안타깝기도 하지만..

지금은 내가 필요하지 않았던 관계들에 낭비하고 버렸던 시간과 감정들을 어여쁜 방식으로 가족들에게 줄 수 있게 되었다.

그리고 끊어져버린 관계에 대한 아쉬움보다 가족들에게 집중할 수 있음에 다행인 마음이 더 크다.


혹 많은 노력이 수반되지 않더라도 가족들은 나를 사랑할 것이다.

하지만 '오히려 가족이기 때문에 분명히 노력은 필요'하며,

가족 안에서도 내가 일방적으로 원하고 받기만 하는 쪽이어서는 안 된다.

필요할 때 찾는 그런 존재가 아니라 옆에 있기 때문에 더욱 감사하고 소중함을 깨달아야 하고,

기꺼운 상호작용을 해내는 그런 관계가 이루어져야 한다.



내가 즐겁다고 느꼈던 술자리들, 단시간에 친해지고 별 거 아닌 이야기에도 깔깔대며 웃었던 여러 관계들은

돌아보면 그냥.. 어렸기 때문에 느낀 재미였던 것 같다.

그런 데에서 재미를 느꼈던 게 고작 2-3년 전이지만, 어느 순간 거나하게 마시는 술이나 진지한 이야기가 오고 가지 않는(평생 가지 않을 사이라는 사실을 이미 알고 있는) 가벼운 관계에 대한 나의 재미는 확실하게 끝이 났다.


언니와 매일같이 주고받는 카톡, 집에서 엄마 아빠와 먹는 밥, 서로 모여 나누는 실없는 소리,

형부까지 함께 가는 가족여행, 그 사이에서 주고받는 작고 큰 애정들.

이제는 이것들이 나의 행복이자 재미, 그리고 일상이다.

(아직 언니가 있는 가족 시간이 훨씬 더 빵빵 터지게 즐겁고, 언니 없이 엄마 아빠와 따로 놀거나 할 때는 어색한 순간들이 있지만.. 그건 서로 좀 더 노력해야 하는 걸로!)


가족들과 의식적으로 혹은 억지로라도 보내는 시간은 낭비일 수 없다.

어느 정도는 의례적으로 보냈다고 생각한 그 시간들은, 사실 나중의 후회를 줄여주는 시간이었다.  

지금은 일주일에 한 번 언니를 보지 못하면 보고 싶고,

약속 때문에 아빠 엄마와 자주 저녁을 먹지 못하게 되면 신경이 쓰이고,

각자가 좋아할 만한 물건을 발견하면 자연스레 선물해주게 되며 이전보다 속 이야기를 편하게 꺼내보게 되었다.

(남자친구 얘기처럼 극히 사생활인 부분은 아직 정-말 쉽지 않고 불편하지만, 이것도 차차 노력하는 걸로..!)




표현은 참 어렵다. 특히 나처럼 이런 데에 타고나지 않고 부끄러움을 많이 느낀다면, 더 어려울 것이다.

가족들에게 하는 직접적인 말의 표현은 아직도 어렵고, 계속해서 노력이 필요하다.

그럴 때는 짧은 편지나 귀여운 이모티콘, 슬쩍 건네는 다정한 카톡으로 대신해도 좋다.

어떻게든 표현을 해내는 것, 그게 정말 중요하다고 느낀다.


가족에 대한 나의 생각과 태도가 크게 바뀌면서 주변 친구들에게도 가족 이야기를 가끔 꺼낼 때가 있다.

서로서로 쿨하게 개인적으로 행동하는 가족의 이면에는 서운함이 숨어있지 않을까?

아무것도 궁금해하지 않는 것 같지만 서로 먼저 말해주길 한없이 기다리고 있는 건 아닐까?

어떤 부분에 상처받고 힘들었는지 알지만(그리고 내가 그걸 결코 모두 이해할 순 없겠지만) 혹시 나중에 소원했던 가족 관계를 후회하진 않을까?

쓸데없다고 말씀하시지만 부모님께 뜬금없는 꽃다발이나 편지를 드리면 진짜 좋아하실 걸?



나뿐만이 아니라 모두가, 하지 못했던 것에 대해서 나중에 후회하지 않기를 바란다.

해보고 후회하는 것과 시도해보지 않음에 후회하는 건 무게가 다르다고 하지 않나.

가족이기 때문에 더 어려운 부분이 있지만 가족이기 때문에 한 번 시작하면 쉬워지기도, 쉽게 용서되기도 한다. 가족은 그렇게 당연해 보이면서도 당연하지 않은, 쉬우면서 어려운 관계다.

하지만 가족에서 오는 행복과 안정은 모든 어려움을 뛰어넘는다.


그리고 나의 아빠 엄마 언니가 그랬던 것처럼, 우리의 가족들은 우리가 해낼 때까지 기다려준다.

어떨 때는 밉고 이해할 수 없고 힘들어도, 가족이니까 믿고 기다려준다.

어리석고 바보 같은 모습도 성장의 과정으로 받아들여준다.

부족한 내가 사실은 넘치는 나라고, 그렇게 말해주고 그렇게 믿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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