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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묘진 Sep 12. 2017

뚜르 드 프랑스 관람-Stage 18,19

처음 프랑스 여행을 계획할 때 여행 일정과 뚜르 드 프랑스 일정이 겹친다는 것을 알고는 있었지만, 숙소였던 Briançon 근처에서 3개의 stage가 치러지는지는 몰랐었다.
심지어 숙소 근처에서 스타트도 하고, 피니시도 하고. 
보통 뚜르 한 스테이지를 구경하기 위해서는 이틀 정도를 투자해야 하는데 이건 뭐 숙소에 있다가 나가면 되니까 행운도 보통 행운이 아니다.

경기 시작 전에 진행되는 각종 퍼레이드 - 감자칩언니들..


단순히 뚜르를 보러 가면 재미있겠다는 생각으로 관람을 갔었는데, 재미를 넘어서 설명할 수 없는 감동을 느끼고 왔다. 이건 단순히 경기를 보는 수준의 경험이 아니었다. 

사이클이 시작된 나라만이 가질 수 있는 뜨거운 열기와 깊은 문화를 눈으로 보고, 귀로 듣고, 마음으로 느꼈달까.  사이클이라는 매개체로 이 수많은 사람들이 하나 되는 모습은 이 곳이 아니면 결코 느낄 수 없는 특별함이었다. 특히나 선수, 관중, 오피셜, 스폰서 등, 이 곳에 와 있는 모두가 "존중"받는 문화와 분위기는 너무나 큰 울림으로 다가왔고, 평생토록 잊지 못할 감동이었다.


나누어 주는 응원피켓을 들고


단순히 뚜르 드 프랑스를 출발하는 모습을 보고, 응원하려고 갔던 곳에서, 사이클에 빠져지낸 8년여 시간의 정점을 느낀 기분이었다. 그 당시 느꼈던 감정들을 글로 풀어간다는 것은 내 필력으로는 불가능할 것 같다. 

출발지점에서야 몇 시간씩 축제를 즐길 수 있지만, 코스 중간에 있을 때는 5초 남짓한 시간 동안 지나가는 선수를 볼뿐이다. 그럼에도 이 순간의 찰나를 위해 5시간 이상의 기다림도 땡볕에서 기꺼이 즐기는 문화와 사람들.


기나긴 기다림도 뚜르의 즐거운 한 부분


느긋하게 캠핑의자 길가에 펴놓고 가져온 맥주 한 캔씩, 커피 한잔씩 마시며 기다림을 만끽하는 문화.
비록 선수가 아니어도 사이클을 타고 지나가는 모든 이에게 환한 미소로 응원을 외쳐주는 그들의 문화.
이 모든 것을 온몸으로 느끼면서, 왜 가슴이 뭉클하고 눈물까지 고였는지 모르겠다.

뚜르 드 프랑스 관람은 사이클을 좋아하는 사람이라면 꼭 해 볼 가치가 있는 위대한 경험이라고 감히 말하고 싶다. 사이클에 큰 열정을 부었던 지난 8여 년 시간의 마무리를 뚜르 드 프랑스에서 할 수 있었음에 감사하고 행복한 시간이었다.

18 Stage

18 stage는 숙소 근처에서 출발을 하는 날이었고 아침부터 비가 내렸다.
자전거 타고 구경 가기로 했는데 추적추적 내리는 비에 모두가 당황했다. 비 맞으며 자전거를 타고 구경 갈 수는 없으니 차를 타고 가자며 차량으로 이동했는데 그것은 신의 한 수였다.

관람 Tip : 비가 오던 안 오던 뚜르 드 프랑스 "스타트 구경"은 자전거 없이 가야 합니다! 


스타트 지점은 새해첫날 종각 보신각 도로와 같았다.


자전거 가지고 갔었다가는 지옥을 경험했을 거다. 이 한 몸 챙기기도 힘든 인파에 자전거까지 끌고 다녔다면 난 정말 미쳐버렸을 거다. 막상 차를 몰고 시내로 내려오니 비가 그쳐서 적절한 곳에 주차해 놓고 맨몸으로 편하게 관람을 시작했다. ( 돈 받는 주차장은 이미 만석이라, 대충 눈치 봐서 사람들이 다들 세우는 곳에 같이 세웠다. 불법주차 딱지 여부는 대부분 한국에 와야 알 수 있다. 저 날인지 언제인지 알 수 없지만 우리도 뭔가를 위반해서 범칙금이 부과될 것이라는 예고를 렌터카에서 받았고, 조만간 고지서가 도착할 듯..)

설렘과 흥분감에 발걸음이 가볍고 즐거운 사람들

구경하자마자 제일 먼저 만난 팀카 - 팀 아스타나

주차해서 나오자마자 만난 팀 아스타나.
팀버스 앞에 놓인 마스코트 인형이 얼마나 탐나던지. ㅎㅎ 선수들 자전거 구경 구경, 팀카 내부도 들여다보고 우와앙 음식도 만들고 있고, 미케닉들은 자전거 만지느라 분주하고, 아 우리가 뚜르 드 프랑스 구경하러 온 게 실화다! 

멋진 운치를 배경으로 세워진 스타트 아치


대회장에 가까워질수록 사람들이 격하게 많아지는 것이 행사장 분위기가 더욱 실감 난다.
마샬 오토바이, 중립차, 운영차들이 줄줄줄 서있고, 여기저기 서있는 경찰들을 비롯한 거리를 활보하는 행사차량들을 보며 우리들의 기분도 덩달아 흥분되었다. :)

요 근래 민감한 유럽 테러 때문인지, 원래 행사장에 경찰이 생각보다 많았던 것도 인상적이었고(경찰견까지), 스폰서들의 각종 이벤트와 행사차량을 구경하느라 눈과 귀가 쉴 틈이 없었다.

정말 마음에 들었던 행사"닭" ㅋㅋㅋ 오븐 치킨 먹고 싶었다.
팝업샵에서는 뚜르 드 프랑스 각종 기념품을 팔고 있다...만, 부흐드와장 자전거 가게에서 다 팔고있다..


사간이 떠난 뚜르의 빈자리는, 사간 티셔츠가 대신하고 있었다... 저딴게 4만원이라니..
행사요원들은 며칠째 하는 일일텐데도 모두가 즐겁게 대해준다. = 일당값 톡톡히 하고 있음..


행사장은 각종 공연과 끊임없이 나누어 주는 음료수를 받아먹으며 구경할 수 있다.
관계자나 VIP들은 선수들이 몸을 푸는 지역까지 입장할 수 있는데, 그곳에서 선수들을 코 앞에서 구경하는 것도 특별한 경험이겠지만, 밖에서 뚜르 드 프랑스를 즐기는 분위기와 문화를 즐기는 것이 내게는 더 소중하고 값진 시간이었다.


사람들이 몰리기 시작한 스타트 라인


이제 출발 시간도 다 되었고 해서(물론 우리 생각보다 한참 뒤에 출발했지만), 스타트 라인으로 이동하였다. 스타트는 1시인데, 이미  11시부터 스타트 라인에는 사람들로 발 디딜 틈이 없다.

인고의 노력 끝에 얻을 수 있는 맨 앞자리


끈기 있게 서 있다 보면, 기다림에 지쳐 가끔 자리를 비우는 사람들 자리로 쏙쏙 들어가서 바리케이드 맨 앞줄까지 진출한다. 맨 앞줄에 서게 되었을 때, 나는 이 곳의 망부석이 되기로 결심했다. 힘들게 얻은 이 맨 앞줄을 절대 놓칠 수 없다..
 
이 출발선에 서 있던 사람들은 모두가 한 마음으로 거지로 빙의되는 경험도 신선했다. 막상 받고 보면 버릴 물건이 반 이상인데 어떻게든 하나라도 받겠다고 모두가 구걸을 한다.ㅎㅎ
별거 아닌 그 하나에도 열광을 하며 즐기는 것 또한 관람의 매력이다.

(좌) 하리보 하나에 열광하는 사람들.. (우) 200원이면 슈퍼에서 파는 하리보에 내 영혼까지 팔아가며 구걸함..

구걸하는데 애어른 구분 없다. 하리보에게 외면당하자 절규하는 어린이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제일 마음에 들었던 5가지 기념품 중 Top 3 : AG2R티셔츠/ FDJ 야구모자 / 닭 열쇠고리 3개 ㅋㅋㅋ

수많은 구걸 속에 제일 좋았던 것은 AG2R 티셔츠!! 
동양 여자 어드벤티지가 작용한 듯한 느낌적인 느낌이지만 티셔츠 받았을 때는 세상을 다 얻은 기분이었다. ㅎㅎㅎ  SKODA 티셔츠랑 FDJ 티셔츠도 받고 싶어서 정말 불쌍한 눈으로 구걸했는데 결국 못 받아서 빠큐나 먹으라며 속으로 저주를 퍼부었다. -_-
뚜르 드 프랑스의 격에 맞게 각종 기념품들의 퀄리티는 굉장히... 저렴했다.ㅋㅋㅋㅋㅋㅋ
AG2R 티셔츠는 한 번 빨자 채도가 40%는 옅어졌고, 쪽모자는 투어 때 한 번 쓰고 쿨하게 버릴 수 있는 수준이었다.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그래도 행사장 현장에 가야만 받을 수 있는 특별한 기념품인 만큼 소중히 가져와서 지인들 선물로도 주고, 나도 간직하고 그랬더랬다.

감자칩 언니들이 활보하고 있다.


선수들이 오기 전에 본격적으로 시작된 퍼레이드. 
신나는 음악과 함께 열정적인 쇼맨쉽으로 스타트 라인은 축제다. 모두가 들썩들썩, 나도 리듬에 맞추어 어깨춤까지 추어가며 즐기느라 정신이 없다. 진정한 축제다!


뚜르 드 프랑스의 상징적인 마스코트들이 지나가고

각종 스폰서들의 정성 가득한 행사차량

(좌) 역시나 내 마음에 쏙 들었던 닭 차량. 닭꼬치를 싣고 있어! ㅋㅋㅋㅋ / (우)의젓한 개님까지 ㅋㅋㅋㅋㅋㅋ

(좌) 세제 언니와 (우) 마들렌 언니


퍼레이드 행렬에도 구걸의 손길은 끊이지 않는다. 마들렌을 먹고 싶다면 영혼을 팔아라 이것들아!


정말 기상천외한 행사차량들이 한 시간 넘게 끊임없이 쏟아져 나온다.
뚜르 드 프랑스의 스폰서가 이렇게 많다는 것을 처음 알았다.  사진을 너무 많이 찍어서 다 올릴 수도 없고, 나중에는 지쳐서 사진도 안 찍음. -_-;
그렇게 긴 행렬에도 지루하지 않았던 이유 중 하나는, 행사 차량들이 하나같이 다 기발하고 너무나 정성스럽게 만들어져서 하나하나 보는 재미가 컸다. 어찌나 이쁘던지 그 차량 위에서라면 나도 저들처럼 신나게 일 할 수 있을 것만 같았다.


지치면 행사차량에서 동냥한 간식과 음료로 보급을 했다. 비텔이 그리 비싼 물인지 나중에야 알았다.

햇빛에 정수리가 벗겨질 것 같고, 아사할 것 같은 기분을 십 수 번 느낄 때쯤, 갑자기 사람들이 웅성웅성거려서 보니 선수들이 드디어 오기 시작한다.
꺄아. 어서 와 선수님들. 내가 너희들을 기다리다 객사할 뻔했단다.

드디어 스타트라인에 모습을 드러낸 슨수님들


2시간의 땡볕 기다림따위가 날아가는 순간


안녕 옐로옐로프루미. 10월에 한국에 또 온다며.


콘타가 헬멧을 쓰고 고글을 씁니다..

콘타가 뒷바퀴를 체크하고 갤러리의 손을 잡아줍니다. 내... 내 손도!!!


그런데 콘타가 내 앞에서 출발 대기를 한다. 하악!!!
손을 후적후적 거려 봤지만,  콘타 앞에 서 있는 무비스타 선수 때문에 그의 손을 잡을 수 없었다. 마음 같아서는 무비스타 선수한테 좀 비켜달라 하고 싶었지만, 그가 마음 상할까 봐 차마 말은 못 하고..
무비스타 너 때문에 콘타를 눈앞에 두고 악수를 할 기회를 놓쳤어... 너는 150km 독주로 솔로 BA 치다가 100m 남겨두고 팰러턴에 잡혀버려라!! 저주 한 가득..
그들은 모든 사람들의 마음을 흔들어 놓고 출발 신호와 함께 유유히 사라져 갔다. 실제로 보면 리스펙 지수 5만 배 상승. 잘 뛰어 손 흔들흔들

행렬의 끝이 보이지 않는다

숙소로 돌아가서 자전거를 타고 얼른 피니시에 가자며 발걸음을 떼는데, 이 많은 인파가 도로를 빠져나가려니 이건 뭐.. 주차한 곳까지 가는데도 모두가 부비부비 하는 기분으로 이동을 해야 했다. ㅎㅎ


오늘 스테이지의 피니시는 출발지에서 20km 떨어진 Col d'Izoard이다. 물론 선수들은 돌고 돌아 약 200km를 타고서 오르지만.. 선수들이 오르는 반대 방향으로 20km 업힐을 하면 피니쉬 지점이기 때문에 우리도 자전거로 오르기로 하고 숙소로 돌아갔다.

20km만 가면 Col d'Izoard 피니시까지 구경할 수 있다.


다들 자전거 타고 피니시 보러 갈 생각에 두근두근


숙소로 돌아가서 라면 한 그릇 씩 끓여먹고 자전거 타고 나왔으나 이미 교통통제.. 라면을 끓여먹고 나온 우리가 잘못했네.. 시간도 여유도 아직 많았고, 업힐 정상에서 경기가 끝나기 때문에 반대편 길을 이렇게 일찍 교통통제를 할 줄은 몰랐다. 선수들이 업힐을 넘어와서 반대편으로 다운힐을 하는 것도 아닌데 왜 막냐..라고 묻고 싶었지만 아무도 불어를 할 줄 몰랐지...(묻는다 한들 바뀌는 것도 없었겠지만..)

많은 라이더들이 너무 이른 교통통제에 당황하여 자리를 떠나지 못한다.


뚜르 관람 Tip 2 :  어디를 가던지, 생각하는 것보다 3시간은 일찍 움직일 것.. 

우리는 이대로 포기할 수가 없었다. 20km만 가면 피니쉬인데!
구글맵을 켜고 각종 골목길을 쑤셔봤지만, 골목길 구석구석마다 경찰들이 배치되어 있었고, 이미 우리와 같은 수많은 사람들이 골목길을 쑤시다가 실패하고 돌아오고 있었다.

모든 샛길/골목길 차단.. ㅠ_ㅠ

모든 골목길을 차단당하고 갈 곳 잃은 영혼들.. ㅋㅋㅋㅋ


비록 피니시는 실패했으나, 자전거 타고 나왔으니 바로 근처에 있는 col du Granon을 다녀오기로 한다.
오르는 중간에 구름도 순간 어둑해지고, 빗방울도 내려서 잠시 움찔했으나 피니쉬를 못 본 아쉬움으로 오르고 또 올랐다.

검은 구름과 빗방울은 아무 문제도 되지 않아.. 는 훼이크고 정상의 날씨가 겁이 났다. 이 곳은 알프스니까.

어느 구간은 또 이리도 화창하고. 알 수 없는 알프스의 날씨.

그냥 숙소 뒷산인데 이렇게 멋진 산맥들로 둘러쌓여있다.


첫 날 부터 가도가도 끝이없는 기분


골반이 아파서 (나만) 얼굴이 좋지 아니하다...


역시나 해발이 올라갈수록 추워졌고, 이 곳에 오기 전에 다쳤던 골반이  서걱거리면서 아픈 게 여간 신경 쓰이는 게 아니다. 아직 걸을 때도 아픈데 해발 2,400m을 오르려니 정말 아픔..
이렇게 자전거를 타도 되는 건가 싶어서 겁도 났다.

이제 여정의 시작일 뿐인데, 벌써부터 이런 풍경을 선사하면 어떡하니..


앞을 봐도, 뒤를 봐도 눈에 다 담지도 못하는 아름답던 풍경들


몇 년 만에 오르는 해발 2,400m 생각보다 길게 느껴졌다. 
물론 출발지의 해발이 높았기 때문에 실제로 오른 해발은 1,400m 밖에 안 되긴 했지만, 몸상태가 안 좋아서 과연 내가 정상에 오를 수 있을까 싶었는데, 꾸적 꾸적 오르다 보니 드디어 정상에 도착했다. 
정상에는 알프스 산맥과 너무 잘 어울리는 카페도!

Col du Granon 정상의 모습


Col du Granon 정상의 다른 방향 풍경


다들 신남 / 풍경이 좋아서 신난 건지, 알프스라서 그냥 신난 건지, 업힐이 끝나서 신난 건지...

사고 나고 근 한 달만의 라이딩이 2,400m이라니.. 나 많이 힘들었다.


정상에 있는 카페 / 실내외 모두 테이블이 있다.

커피는 우리나라 수준이고, 콜라가 좀 비싸다.(캔콜라임)


정상에 있는 카페에서 커피 한 잔 하는 것을 추천한다.
커피 가격이 비싼 것도 아니고, 세월이 묻어나는 카페의 소박한 내부는 커피 그 이상을 마시는 기분이다.
더불어 Col du Granon 정상보다, 카페 정상의 모습이 더욱 멋지니, 커피를 마시지 않더라도 꼭 올라가 보길. :)


알프스에서 바람막이는 필수!

구름을 뚫고 뻗어나오는 햇살의 장엄함을 10%도 담을 수 없었다.


날이 흐린 와중에 정상은 바람까지 불어대니 체감온도가 급격히 떨어져서 얼른 내려갔다.
나는 오랜만에 가드레일 없는 다운힐이 적응이 안 되어서 시속 30으로 질질 기어내려갔다. 그리고 더불어.. 아직까지 내 자전거를 믿지 못하겠어서..;;;

우리가 내려간 시간이 저녁 6시쯤이었는데, 우리가 내려갈 때 많은 라이더들이 이 곳을 계속 올라오고 있었다. 한국에서 라이더들이 퇴근하고 북악을 오르듯, 이 동네 사람들은 퇴근하고 해발 2,400m을 타러 올라오나 보다. 스케일이 다르니 실력이 다를 수밖에.. 대단하다들..

이렇게 18 stage를 구경했던 하루를 마감하고, 다음 날 19 stage 구경 갈 계획을 세우며 잠이 든다.



19 Stage

19 stage는 큰 업힐 코스는 없지만, 그래도 작은 업힐이 중간에 있어서 그곳에서 구경을 하기로 했다.
차를 타고 약 80km를 가서 주차를 해놓고, 자전거로 그 업힐까지 가는 것으로!

차량은 통제하고 자전거는 보내주었던 경기구간.


어제 우리 생각보다 일찍 교통통제를 했으니, 더 일찍 나가자! 하고 출발했으나 통제는 언제나 우리를 앞서갔다.  목표지점에 도달하기 전에 또 교통통제가 시작되고 있었다. 
차량은 통제하더라도 자전거는 보내주었는데, 그마저도 10km 정도 가니 막아섰다.
도로는 안 되고, 도로 밑에 있는 자전거 길로 가면 된다고 해서 얼른 내려갔는데 자전거 길이 비포장 도로다. 

우리에게 허락된 길은 오로지 비포장 자전거길


그래도 가야 한다며, 다들 펑크를 감수하고 비포장 도로를 신나게 달려댔다.
달리다 보니 도로 위로 달리는 자전거 그룹을 발견. 왜 우리는 안 되고, 쟤들은 되는 거지? 하고 지켜보니,  아무래도 경기 구간을 먼저 달리는 행사팀인 것 같았다. 그래서 우리도 그 그룹 뒤에 무임승차.. 


무임승차 직전


흐르는 사람 있어도 절대 뒤를 돌아보지 않는 그룹.  매정해라..


방해가 될까 봐 적당한 거리를 두고 뒤에서만 조용히 따라갔다. 
따라가다 어떤 분이 흘러서 우리 일행이 쭈욱 밀어서 갖다 붙여주니 엄지 척 Merci Merci 


이미 길가에는 응원하기 위한 캠핑카들이 가득가득


달리는 동안 길에서 뚜르를 보기 위해 기다리는 사람들이 우리에게 보내주던 응원은 가슴을 뛰게 했다. 선수가 아니어도 사이클을 탄다는 이유로 박수를 쳐주고, 함성을 외치며 우리를 응원해 주던 사람.
그들의 눈빛과 표정에는 진정 사이클을/ 라이더를 사랑하는 마음이 묻어 있었다.
그런 이들의 진심 어린 응원을 받는 것은 지금껏 경험해 보지 못한 새로운 뭉클함이었다.


뚜르 코스를 달리는 기분이란..


그렇게 달리다 경찰에게 최종적으로 제지를 당했다. 진정 교통통제의 마지노선에 도착한 것이다.
원래로 목표했던 지점에 도착하지는 못했지만, 이곳은 멋진 호수의 다리를 건너오는 팰러턴을 감상할 수 있는 아주 멋진 spot이었다.
더불어, 교통 통제에서 살짝 샛길로 빠지면 이 곳이 모두 내려다 보이는 산으로 오르는 길이 있어서 기다리는 동안 자전거도 탈 수 있었다.


이제 이 곳에서 3시간을 기다리면 되..


기다림이 일상인 사람들, 기다림도 뚜르의 일부분인 사람들

아무것도 안 하고 3시간을 있으려니, 우리들은 그런 기다림이 익숙지 않았다.
준비해 온 거라고는 자전거와 비상금뿐이고, 주변에 레스토랑이나 카페도 없고 해서 몇 몇명은 샛길로 빠져서 자전거를 타기로 했고, 한 명은 프랑스 다음 여정으로 가게 될 그리스의 지진 상황을 알아보고, 나머지 일행은 다리 건너에 있는 슈퍼에 "걸어가서" 먹을 것을 사 오기로 했다. (자전거로는 통제되지만 걸어서는 갈 수 있었기에) -  하지만 막상 다녀오기 전에는 그 다리가 그렇게 길 줄 아무도 몰랐다. 그들의 클릿은 사요나라...

한산한 곳에 앉아서 도란도란 얘기도 하고.. 다리를 '걸어서' 건너는 그들의 고통을 멀리서 지켜봤다.


클릿이 사망하면서까지 그들이 사 온 일용할 양식으로 요기를 하고 나니, 분위기가 부산해지는 게  뭔가가 다가오는 것 같아서 다들 길가로 나가보니, 선수들 오기 전에 먼저 지나가는 행사 차량들! 어제도 보고 오늘도 보네!!

구걸의 행렬은 언제 어디서나...


어제 스타트 라인에서 이미 많은 기념품을 받았던 우리는 시큰둥했고, 배가 고파서 그냥 먹을거나 던져줬으면 했다. 음식 행사차량 지나갈 때만 영혼 없이 손을 후적후적...


선수들을 기다리는 사람들

행사차량도 다 지나가고... 마샬들도 계속 지나가는 것이.. 곧 선수들이 지나가겠구나.
사람들이 다 길가로 나와서 선수들을 기다리기 시작..
사이렌이 울리고 다리 저 너머에 웬 벌떼들이 넘어오는 형상이 보이는 게 드디어 그들이 왔다!

BA그룹을 잡으러 가는 SKY팀을 시작으로


어깨 다닥다닥 붙인 선수들이 순식간에 바람을 일으키며 내 앞을 지나간다.


내 앞을 지나간 건 5초 정도였던 것 같다.
바늘 꽂을 틈도 없을만치 빽빽이 선수들로 구성된 팰러턴이 지나갈 때는 바람이 불었고, 그 바람을 맞을 때는 소름이 돋기도 했다.
그들의 스피드를 모습을 그대로 보고 싶어서 사진은 포기했다. 대략적인 위치에 놓고 셔터만 누를 뿐.

나 어디있게.. 


고작 내 앞을 지나간 몇 초의 모습을 보기 위해 내가 이렇게 기다렸다는 사실이 신선하게 다가왔고, 그 기다림이 너무나 일상으로 스며든 이 나라 사람들의 문화가 여유롭게 다가왔다.
그들의 기다림에는 즐거움이 있고, 기다림을 즐기는 문화가 있었다.

우리나라에 그런 문화가 없다고 아쉽지는 않았다. 아직 우리나라는 사이클이라는 스포츠뿐 아니라, 생활의 모든 부분에서 이런 기다림이 생활의 한 부분이 될 만큼 여유가 생긴지 얼마 안 된 나라니까..

선수보다는 선수를 기다리는 그들의 여유를 담고 싶었다.


19 stage는 선수들 보다, 그들을 기다리는 사람들을 보며 가슴이 뭉클했던 관람이 아니었나 싶다.
사이클이라는 문화가 보이지 않는 곳까지 뿌리내린 이 나라 사람들의 문화를 보고 느낄 수 있었던 19 stage 관람은 주차한 곳까지 라이딩을 하며 마무리되었다.


두 개의 스테이지를 관람하며 느꼈던 감동만으로도 이번 여행은 충분했다고 느꼈는데, 관람 이후에도 계속 가슴 벅찬 시간들을 보내며 잊을 수 없는 2017 프랑스 론알프스 여행을 채워가게 되었다.
이제부터 또 다른 여행이 시작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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