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 창문이 무려 3개
2009년 1월, 이제는 10년이나 지나 정확한 날짜는 기억 속에서 잊혔지만 사고 당시는 여전히 생생하다. 대학 교양 수업으로 맛봤던 스키의 즐거움을 또 한 번 찾으러 갔다가 탈이 났다. 초보임을 망각하고 까불거리다 슬로프에서 굴렀고, 정신을 차렸을 땐 이미 다리가 내 것이 아녔다. 난생처음으로 구급차에 실렸고, MRI도 찍었다. 운동선수만 겪는 줄 알았던 오른쪽 무릎 십자인대 파열로 결국 수술대에 올랐다. 재활까지 6개월 정도 걸렸지만 자질구레한 불편함은 꽤 오래갔다.
그중에서도 가장 힘들었던 점은 오른쪽 다리를 필 수 없는 환경을 마주할 때다. 왜 아픈지 알 수 없지만 답답한 느낌이 들면 무릎 통증이 찾아왔다. 이런 탓에 영화관, 버스, 기차, 비행기 등 모든 좌석을 오른쪽 다리를 필 수 있는 통로 쪽을 고집하게 됐다. 징크스의 시작이다. 괜스레 가운데 낀 자리나 창가 좌석으로 자동 배치되면 그렇게 불안할 수가 없었다.
이러한 생활이 계속됐기에 비행기 창가 좌석은 1시간 정도 되는 국내선만 노릴 수 있었다. 국제선은 감히 엄두를 내지 못했다. 그렇지만 퍼스트 클래스에서는 무려 창문이 3개. 바깥세상만 10시간을 봐도 지루하지가 않았다. 시시각각 바뀌는 풍경을 보며 사색에 잠기는 재미. 장거리 여행에서만 느낄 수 있는 최고의 호사 중 하나다. 그중에서도 러시아 상공에서 봤던 묘한 얼음(?) 세상과 옹기종기 모여 불빛을 내는 작은 마을, 초승달이 판타지처럼 다가왔다. 입을 벌린 채 멍하니 보면서 닿지 못할 세상에 대해 마음대로 상상하고, 또 기록했다.
여행 인생 중 이 정도로 특별한 비행을 만나기는 쉽지 않기에 정말 1분도 허투루 보내지 않았다. 그렇게 11월2일의 KE901편 1A 좌석에서의 11시간을 마쳤다.
대한항공 인천-파리 퍼스트클래스 저녁 기내식
샐러드, 수프, 치즈 등은 점심과 크게 다르지 않아 생략하고, 빵과 샐러드, 메인, 과일만 즐겼다. 양념갈비가 그렇게 맛있다고 해서 선택. 기대대로 고기 부드럽고, 육향 제대로. 거기에 약간 달달한 간장 양념이 잘 어울려 물리지 않고 끝까지 즐겼다. 단호박 안에 넣은 찰밥도 꽤 훌륭. 저녁 식사 전까지 양식 위주로 즐기다 보니 상큼한 게 당겨 귤을 부탁드렸는데 아주 단아하게 준비해주셨다.
그리고 내리기 직전까지 잠도 거의 안 자고 사진 찍고, 키보드를 두드리는 여행자를 신기하게 생각했는지 막 구웠다고 피칸 파이를 내주셨다. 맛은 그저 그랬지만, 그 마음과 기록을 위해 사진으로 남겼다. 하늘 위의 천국을 즐기고 5년 만에 파리에 재입성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