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레인 Aug 21. 2020

[서평]길 하나 건너면 벼랑 끝

성매매

를 떠올리면, 소설가 김훈이 그의 소설에서 성매매에 대해 묘사했던 것이 생각난다. 그는 그의 소설 『칼의 노래』에서, 성매매 여성이 생선 가판대의 생선처럼 성기를 널어놓고 판매한다며 비하했었다. 그 소설에서 조선의 영웅 이순신은 전쟁을 앞두고 성구매를 한다.


나는 병신년 가을에 처음으로 여진을 품었다. 그 여자의 몸은 출렁거리며 나에게 넘쳐 왔다. 다리 사이에서 지독한 젓국 냄새가 났다. 그 여자의 입속은 달았고 그 여자의 몸속은 평화로웠다.   


혐오, 구매 그리고 일상


 성매매가 문학적으로 당당하게 묘사되었다는 점, 성매매 여성을 혐오하면서도 성매매를 쾌락의 관점에서 묘사했다는 점 등 이토록 성매매에 대한 한국 사회의 인식을 잘 표현한 글이 또 있을까? 물론  있어도 읽고 싶지 않다 이것이 한국사회에서 성매매를 인식하는 방식이다. 성판매 여성을 혐오하면서도 그들의 섹슈얼리티, 즉 존재성을 구매하는 것을 일상적으로 인식한다는 점을 미루어볼 때, 한국사회에서 성매매에 대한 이미지는 성구매자 남성의 관점에서 구성되었을 테다.


책 『길 하나 건너면 벼랑 끝』의 부제는 "성매매라는 착취와 폭력에서 살아남은 한 여성의 용감한 기록"이다. 내가 딱히 이 책에 대한 설명을 덧붙이지 않는 이유는 이 책의 부제만큼 이 책을 완전하게 설명할 수 없기 때문이다. 책 『길 하나 건너면 벼랑 끝』은 부제 그대로 "성매매라는 착취와 폭력에서 살아남은 한 여성의 용감한 기록"이다.


가난에 시달리던 저자는 중2때 학교를 자퇴하고 공장을 전전한다. 한 달에 휴일 없이 야근해도 15만원을 받던 저자는 술을 먹는 남성들 옆에 앉아있기만 해도 9만원을 받는다는 이유 때문에 가족들을 부양하고자 가라오케로 향하지만, 결국은 성매매의 굴레에 빠지고 만다. 저자가 제 발로 가라오케로 향했지만, 그 내적 동기는 숨막히는 생계부양이었다는 점을 떠올리다 보면, 성매매는 단순히 자발/비자발의 이분법으로 나뉠 수 없다는 점을 알 수 있다. 성매매에 유입된 이후 숨쉬기만 해도 빚이 불어나는 상황에서 저자는 역설적이게도 탈성매매하고자 악착같이 성매매를 버텨낸다. 성판매 여성이 업소에 유입되면 그녀에게 들어가는 주거비, 의복 및 화장 등의 미용비, 당겨받은 생활비 등이 '선불금'이라는 이름의 빚으로 쌓인다. 이렇듯 성매매에 필요한 모든 비용이 성판매 여성에게 전가되기 때문에 정신을 차리고 보면 선불금은 갚을 수 없을 정도로 불어나 있다. 생리로 인한 결근까지 벌금이라는 명목으로 빚이 되기 때문에 때문에 탈성매매를 하고 싶어도 할 수 없는 상태가 된다. 업주(포주)는 성판매 여성이 업소에 오래 있는 것을 달가워하지 않기 때문에 다른 업소로부터 선불금을 대신 받고 성판매 여성을 팔아 치운다. 그렇게 20여년간 저자는 업소에서 업소로 매매'된'다.

이미지 출처 <https://blog.naver.com/areyoukkkk/221834647466>


 아일랜드 작가의 성매매 경험에 관한 책 『페이드 포』가 왜 성매매가 여성에 대한 폭력인지 경험을 담아 논리적으로 풀어낸다면, 이 책은 한국사회의 성산업 현실이 구체적으로 어떠한지, 웃으며 성구매 남성 옆에 앉아있던 성매매 여성의 진짜 내면은 어떠한지 담겨져 있다. 이 책을 읽다보면, 미디어에서 숱하게 드러나는 성매매에 대한 이미지-남성 배우들이 술을 먹고 있을 때 짧은 옷을 입은 채 웃으며 시중드는 여성들의 이미지가 성매매의 전부가 아니라는 것을 알 수 있다. 지각, 결근, 심지어 생리 벌금까지 떼이며 끊임없이 빚이 늘어나는 업소에서, 여성들은 어떻게든 빚을 갚고 성매매로부터 탈출하기 위해 악착같이 '출근'하고 악착같이 앉아 있던 것이다. 그녀들은 즐겁지 않았다.


1부에서 저자가 성매매를 겪었던 경험을 들려준다면, 2부에서는 저자가 탈성매매를 한 이후, 반성매매 활동가로 살아가는 일상이 나온다. 성매매는 사치스러운 여자만 하는 거라며 욕하는 여동생에게 저자는 사실 20여년간 성매매에 유입됐었다고 고백한다. 오랫동안 사회로부터 격리된 채 성매매 업소에서 전전했기 때문에 다시 사회에 나온 이후 관계맺음에 어려움을 겪기도 한다. 좋아하는 가수 이문세의 콘서트에 가서 자신이 좋아하는 노래가 성매매에 유입되기 전인 중학생 때 멈춰져 있다는 것을 깨닫기도 한다. 또한 탈성매매하고나서야 비로소 요리 등 자신이 좋아하는 것이 무엇인지 알아가게 된다. 행복해지려고 노력하는 한 사람의 삶에 응원을 멈출 수 없다.


우리 사회에서 성매매는 단순히 '성'을 매매하는 것으로 여겨지곤 한다. 그렇기 때문에 차라리 성매매를 성노동으로 합법화하여 자유롭게 성을 구매하자는 주장도 줄곧 나오곤 한다(진보적인 남성들로부터 이런 의견을 더 자주 듣는 건 왜일까).  하지만 인간은 '성'과 개별적으로 분리될 수 없다. 쾌락은 몸에서 분리될 수 없으며 인간은 몸 자체다. 그렇기 때문에 성 구매를 통한 쾌락은 성 판매자에게 있어 자신의 존재성이 침해 당하는 시간을 견디는 것에 불과하다. 판매자에게 있어 성매매가 존재성 착취인데 반해, 구매자에게 있어 성매매가 쾌락이라면 이것이 폭력이 아니고 무엇이겠는가?  


 이 책은 언어를 박탈당했던 성매매 경험 당사자가 자신의 성매매 유입과 탈성매매 과정을 직접 '말한' 책이다. 침묵이 종용되었던 당사자가 입을 열면 견고한 차별의 구조엔 균열이 일기 시작한다. 이 책이 쓰이고 읽히는 과정은 커다란 진동이다.




이 책의 저자가 팟캐스트와 유튜브에 출연하여 자신의 경험을 이야기한 컨텐츠이다. 책을 읽을 여유가 안된다면 이 컨텐츠들을 읽거나 들어도 좋을 듯 하다.

http://www.podbbang.com/ch/1769459

https://www.youtube.com/watch?v=mD9uLNQZM0s

매거진의 이전글 집과 취향과 존엄, 영화 <소공녀>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