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년기에 알아버린 새참의 참맛
꼬마 시절, 더운 여름이면 엄마는 종종 부엌 찬장에서 넓은 양철 그릇을 꺼냈다. 양철 그릇에 미숫가루 가득, 물 많이, 꿀 조금 그리고 얼음 두 알을 넣고 은수저로 휘휘 저었다.
꿀 대신 설탕을 넣으면 수저로 휘저을 때마다 설탕 가루들이 바시락 바시락 거리며 그릇을 간지럽게 긁었다. 그 사이에 동동 띄워진 얼음들도 그릇에 정신없이 부딪히며 맑은 종소리를 냈다. 그 소리만 들어도 어찌나 달고 시원하던지, 지금도 어디선가 양철 그릇이 부딪히는 소리가 날 때면 입 안에서 미숫가루 맛이 느껴지는 것만 같다.
미숫가루 물은 우리 삼 남매에겐 새참과 같았다. 더운 날씨에도 좀처럼 가만히 있지 못하고 쨍한 햇볕 아래에서 땀을 흘리며 놀 때, 도보 40분의 긴 하굣길을 거쳐 집에 돌아왔을 때, 더위에 지쳐 거실 마루에 쪼르르 누워 있을 때. 엄마는 우리에게 양철 그릇을 내밀었다.
그릇 안에선 차가운 갈색 물이 찰랑였다. 그럼 우리는 놀다 말고, 가방을 멘 채 신발주머니만 대충 내려두고 두 손으로 양철 그릇을 받아 들었다. 그릇만 만져도 온몸의 열이 내려갔다. 한 여름의 열기에 빨갛게 익은 손바닥도 금세 차갑게 식었다.
우리는 마당 파라솔 밑 평상에, 거실 마루에 앉아 미숫가루 물을 마셨다. 처음부터 끝까지 같은 맛을 느끼려면 손을 쉬지 않아야 했다. 미숫가루 물을 한 모금 하고, 남은 가루와 물이 잘 섞이도록 양철 그릇을 동그랗게 돌리기를 반복했다. 그때마다 얼음이 짤랑짤랑 소리를 냈다. 여름의 소리였다.
그 맛이 생각나면 지금도 미숫가루 물을 타 먹는다. 그때 쓰던 양철 그릇에 미숫가루 가득, 물 많이, 꿀 조금, 얼음 두 알을 넣고 은수저로 휘휘 젓는다.
어쨌든 달고 시원하다. 역시 여름의 맛이다. 또 하나 다른 점이 있다면 그땐 작은 두 손바닥으로 그릇을 가득 잡아 호로록 마시곤 했는데, 지금은 한 손으로 가볍게 들어 올려 꿀꺽꿀꺽 털어 넣는다. 이따금씩 그릇을 대충 휘휘 돌리기도 하면서. 손이 커진 탓은 아니다. 몸이 많이 자라지 않은 대신 어른의 습관이 자랐다.
| 100일 글쓰기 프로젝트 66일 차 _ 미숫가루와 양철 그릇