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년 6월 25일 금요일
중·고등학교 6년 내내 계주를 놓친 적이 없으며 악산도 다람쥐처럼 성큼성큼 올라가는 체육 소녀였다. 10년이 지나 지금은 지구력, 근력, 힘이 들어가는 모든 것과는 거리가 먼 사람이 되었다. 어쩌다 힘을 쓴 후에는 꼭 체력장 다음날처럼 온몸이 뻐근하게 아프고, 허리 통증과 다리 저림은 아침에 일어나 물을 마시고, 잠들기 직전에 화장실을 다녀오는 것과 같이 일상적인 감각이 되었다. 어느새 몸엔 근육이 다 빠져 힘줄만 남았다. 얇은 힘줄 하나가 머리와 목, 팔, 허리를 지지한 지 오래. 힘줄의 아우성이 들려온다. “제발, 동료 좀 만들어줘. 나 하나론 못 해 먹겠다. 안 그러면 나 파업한다! 어디 네가 나 없이도 살 수 있나 보자.” 일당백을 하느라 지친 힘줄의 최후의 경고. 이제야 난 생활을 유지하고 다듬는 일의 기초 동력은 체력이라는 사실을 체화했다. 무엇이든 있을 땐 존재적 가치를 몰랐다가 상실하고서야 깨닫게 되는 것이다.
운동을 시작하기로 했다. 운동이 처음은 아니다. 요가 6개월, 수영 3개월. 도합 9개월 경력자다. 우선 요가는 인내가 기본인 운동이었다. 스읍-후 습-후우 호흡하며 어려운 동작들을 버텨야 했다. 마음을 비우려 요가를 한다지만, 요가를 할수록 내 안엔 화가 쌓였다. 학생들에게 고통스러운 동작을 주문한 채 “자, 5초 동안 유지~” 하고선 1초를 3초의 속도로 세는 선생님이 밉기까지 했다. 참을 인을 마음속에 새겨가며 인내를 찾는 운동은 역시 내게 맞지 않았다.
그리고 수영. 오래전부터 난 물을 무서워했다. 어린 시절 물에 빠졌다거나 하는 사건이 있는 것은 아니다. 내 몸을 어딘가에 지지하지 않은 채로 움직인다는 것, 호흡에 제약이 있다는 것이 두려울 뿐이었다. 그 때문에 태어나 지금껏 여름을 온전히 즐겨본 적 없는 나로서는 늘 아쉬움이 있었다. 그래서 일단 물에 뜨기를 목적으로 수영을 시작했다. 먼저 발장구 지옥을 거쳐 물에 붕붕 뜰 때의 여유로움과 해방감을 느꼈다. 이내 배영까지도 성공했다. 하지만 여전히 물에 얼굴을 박고 호흡하는 것은 두렵기만 했다. 수영의 기본 영법인 자유형은 끝끝내 성공하지 못한 채 그만두었다.
그런데 걸음과 호흡, 즉 이동과 숨에서 자유롭지 못하다는 건 누구에게나 두려울만한 일 아닌가? 평탄한 길가를 걷다가 미세하게 높은 어느 면에 걸려 넘어지고 나면 그 후엔 땅에 시선을 고정한 채 잰걸음을 하게 되고, 평소엔 콧구멍으로 숨이 드나드는 걸 의식하지 못할 정도로 잘 쉬던 숨도 갑자기 의식하게 되면 호흡이 가빠지고 불편해지는 것처럼. 요가와 수영, 내가 이 두 운동을 이어가지 못한 이유는 큰 제약이 있는 활동이기 때문이라는 걸 알았다. 문득 불편함도 다스릴 정도의 경지에 올라 호흡에서, 물에서 자유를 찾은 요가인, 수영인들에게 경의를 느낀다.
그래, 이번 운동 선택의 조건이 나왔다. 1 내 두 발을 땅에 디딘 채 할 수 있는 운동. 2 참지 않고 에너지를 분출할 수 있는 운동. 그러자 곧바로 ‘스쿼시’가 팅 하고 튕겨져 올랐다.(스쿼시 공을 칠 땐 ‘팅’이 아니라 “퍽!” 소리가 난다.) 위의 조건에 더해 1 쉬지 않고 전신을 움직이며 2 실내에서 해서 계절이나 날씨의 영향을 받지 않고 3 여러 명이 함께 하는 운동. 게다가 내 움직임의 성과를 바로 확인할 수 있는 운동. 공을 제대로 치면 라켓이 진동으로, 벽과 공이 소리로 반응하니까. 그 타격감도 맛보고 싶었다.
지금도 스쿼시는 배드민턴이나 테니스처럼 취미로서 많이 알려진 운동은 아니다. 그런데 내가 스쿼시를 접한 지는 아주 오래되었다. 대략 15년 전, 초등학교 졸업을 앞둔 시기였다. 당시 나는 마이걸이라는 로맨틱 코미디를 즐겨봤다. 주인공인 부잣집 딸내미, 아들내미들은 마음이 번잡할 때면 스쿼시장에 가 공을 신경질적으로 쳤다. 그 장면이 내 기억에 오래도록 남았다. 그 모습이 꽤 멋있었기 때문이다. (사실 스쿼시는 돈이 많아야만 할 수 있는 운동인 줄 알았다.) 아무튼 난 부잣집 딸내미는 아니지만, 건강한 딸내미는 되기 위해 이 마음이 사라지기 전에 집 근처 스포츠센터로 곧장 향했다.
그리고 내게 끈기를 부여하기 위해 오늘부터 일지를 쓰기로 했다. 쓰기 위해 운동해야 하고, 운동을 해야 쓸 수 있다. 쓰고 치고, 치고 쓰다 보면 그날의 운동을 자연스레 복기할 수 있겠지? 앞으로의 선순환을 기대하며 글을 마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