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년 6월 28일 월요일
드디어 스쿼시 1일 차. 정식 강습은 아니고 1회짜리 원포인트 레슨이다. 지난 금요일에 스포츠센터에 방문했을 때 ‘7월 강습은 마감됐다’는 비보와 개인 레슨은 언제나 가능하다는 희소식을 동시에 들었다. 원포인트 레슨은 1회에 4만 5천 원. 가진 돈의 10%를 투자해야 하는 금액이었다. 하지만 궁금한 건 당장 해봐야 하는 왕성한 호기심을 지닌 나는 10초의 고민도 없이 답했다. “그럼 할게요!”
레슨 시간에 맞춰 스포츠센터로 갔다. 스쿼시장은 지하 1층. 로비에서 계단을 내려가니 긴 복도 옆으로 코트 4개가 쭉 이어져있었다. 평일 오후 2시의 스쿼시장은 꽤나 한산했다. 코트 앞의 긴 의자에 앉아 캔버스화에서 운동화로 갈아 신고 있으니 익숙한 얼굴의 남성이 복도 끝에서부터 저벅저벅 걸어왔다. 나는 강사님이 건네는 라켓을 어색하게 받아 들고선 어정쩡한 걸음으로 코트에 들어섰다. 코트 안에선 깨끗한 다락방 냄새가 났다. 아무리 깨끗하게 청소해도 사람들의 격한 움직임으로 생긴 땀과 먼지 냄새는 지워지지 않는 듯했다.
스포츠 하면 스포츠맨십. 그는 가장 먼저 스쿼시장 이용 매너와 게임 룰에 대해 설명했다. 강사님에겐 송구하지만 난 그의 말을 50%는 흘려들으며 얼른 공을 치고 싶다는 생각만 했다. 그다음으론 라켓을 쥐는 법을 배웠다. 라켓을 옆으로 눕혀 악수하듯 쥐고 엄지를 살짝 구부려서 잡았다. 이어서 포핸드 자세를 배우고, 제자리에서 강사님이 떨어트리는 공을 포핸드로 치는 연습을 했다. 그리고 백핸드 자세를 배우고, 백핸드로 공치는 연습을 했다. 공이 바운스 되어서 올라왔다가 다시 떨어지기 직전에 쳐야 하는데, 성질 급한 나는 그 타이밍을 기다리지 못하고 마구 휘둘렀다. 그때마다 몸의 균형이 자꾸만 무너졌다.
“운동 좋아해요?”
이마에 송골송골 맺힌 땀을 닦으며 숨을 고르는 내게 강사님이 말했다.
“네. 온몸으로 하는 운동 좋아는 하는데 체력이 안 돼요.”
“그래 보여요(웃음)”
단시간에 내 몸의 감각을 들켜버린 것 같아 민망했다. 붓을 잡는 모습만 봐도 그림을 배운 적 있는 사람인지, 많이 그려본 사람인지 혹은 손끝은 아직 미숙하지만 미적 감각이 있는 사람인 지 알 수 있듯 몸의 감각도 마찬가지인가 보다. 특정 감각이 극대화된 사람에겐 누군가의 작은 움직임만으로도 그가 지닌 감각의 정도를 파악할 수 있는 것이다. ‘내가 운동을 많이 안 해봐서 그렇지, 운동 신경은 꽤 있는 사람이야’ 라며 자부하고 살아온 나로서는 당황스럽기도 했다.
스쿼시장에 오기 전 내가 걱정한 건 단 하나였다. 공에 맞을까 봐 그리고 맞아서 아플까 봐. 역설되게도, 내가 가장 잘하는 운동은 구기 종목이었다. 그중에서도 공으로 상대를 얼마나 가격하고, 얼마나 가격 당하는 가가 승패를 결정짓는 ‘피구’. 어느 팀과 피구를 하던 네모난 선 안에 마지막까지 남는 사람은 늘 나였다. 공을 날렵하게 가로채 상대팀을 아웃시킨 적은 단 한 번도 없고, 그저 공을 잘 피해 다녔다. 공에 맞는 게 무서워서. 날 아웃시키려고 식식거리며 내게 공을 던지는, 그 공을 요리조리 피하는 날 보고 또 얄미워하는 상대팀의 표정을 보는 게 재밌기도 했다. 정확히는 ‘잘한다’가 아닌 ‘잘 피한다’였다. 가장 잘하는 운동이 무서워서 도망치는 거라니·· 이제는 공에 등을 진채 도망치는 것이 아니라, 정면으로 응수하고 싶어졌다.
스쿼시 공은 단단한 젤리 같다. 굉장히 말랑말랑한 재질에 내 손으로도 가볍게 움켜쥘 수 있을 만큼 작은 크기다. 그래서 ‘맞아도 좀 덜 아프겠네’ 싶었다. 이런 내 이야기를 지긋이 듣던 강사님은 ‘네가 아직 뭘 모르는구나’하는 표정을 지었다. 이어서 실제로 공에 몸을 맞은 듯 제 손으로 허벅지와 팔뚝을 찰싹 쳐가며 말했다.
“스쿼시 공도 세게 맞으면 아파요. 이런데 맞으면 멍들어요 멍.”
그가 친 허벅지와 팔뚝에선 소리만 들어도 내 살이 따가운 “착” 소리가 아니라 타격감 하나 없이 둔탁한 “퍽” 소리가 났다. 몸에 근육 하나 없는 나로서는 그게 참 멋있었다. 근육 소리에 귀는 물론 마음까지 홀라당 홀려버린 나는 ‘그래, 갓 구운 식빵처럼 팔랑이는 내 몸이 쫀득한 베이글이 될 때까지 열심히 해보자.’ 하고 생각했다.
그렇게 두 시간 같은 한 시간이 흘러 강습이 끝나고, 남아서 연습하고 가도 된다는 말과 함께 강사님은 코트에서 퇴장했다. 내가 지닌 체력 중 이미 95%가 소진되었지만, 30분가량 연습을 더 했다. 공치는 시간 10분, 공 주우러 다니는 시간 20분의 비율이었다. 텅 빈 코트가 내가 만들어내는 소리로만 채워지는 게 어색하면서도 흥미로웠다.
대략 1시간 반의 첫 스쿼시를 끝내고 다시 계단을 오르니 두 다리가 후들거렸다. 스포츠센터에서 도보 5분 거리인 버스 정류장까지는 미세한 언덕길이 이어지는데, 그 길을 높은 산을 타듯 어기적 어기적 걸어갔다. 집에 돌아가서는 양말을 벗을 세도 없이 방바닥에 대자로 벌러덩 누웠다. 그대로 잠들면 꽤나 달달할 것 같았지만, 아직 할 일이 많았기에 몸을 벌떡 일으켰다. 그렇게 하루를 쉼 없이 움직인 나는 다음날 어마어마한 근육통을 얻었다. 시든 콩나물처럼 팔랑이고 다니는 나를 본 가족들은 ‘다치지 않겠냐’, ‘할 수 있겠냐’며 걱정했다. “그럼! 재밌으니까 괜찮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