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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Terry Choo May 16. 2021

영화 '기생충'

기생충으로 공존을 말하다.


Keep your position


요즘 유행하는 말 중에 '선 넘네'가 있다. 


우리 사회가 점점 계급 사회가 되어가는 것 같다. 계급 사이에 선이 뚜렿해지고 있다. 개천에서 용이 나오던 시대는 지나갔다. 가난한 집에 태어나 열심히 고시 공부를 해서 엘리트 계급에 진입할 수 있는 때는 옛날이야기다. 용은 금수저 집안에서만 나온다. 개인끼리는 선을 넘을 수 있지만, 계급끼리는 선을 넘을 수 없는 사회가 되었다. 


지배계급이 바뀌어야 나라가 좋아진다?

피지배 계급은 양보할 수 없는 집단이다. 양보하는 순간 죽게 된다. 생존할 수 없게 된다. 그러나 지배 계급은 양보할 여지가 있다. 나라 전체를 주도할 힘이 있는 그런 계급이 지배 계급이다. 지배 계급은 스스로 착한 임대인이 될지 악덕 임대인이 될지를 스스로가 결정할 수 있는 여유가 있다. 그러나 임차인은 절대로 착한 임대인이 될 수가 없다. 이런 면으로 보면 이 사회의 지배 계급이 누구인가 알 수 있다. 




여기서 우리 속에 고정관념이 있다. 지배계급은 나쁘다는 생각이다. 그러나 지배 계급은 책임지는 계급이다. 지금 우리 사회의 지배 계급은 그래도 책임 있게 나라를 이끌었다고 생각한다. 지금 우리가 누리는 번영은 모두 지배 계급의 덕분이기도 하기 때문이다. 



누가 착한가?


드디어 영화 '기생충'을 봤다. 


영화는 나름 잔인했다. 그래서 그런지 누가 착한지 안착한지 조금 집착하게 되었다.


송강호 가족이 착한가? 이선균 가족이 착한가? 

이선균 가족이 착하다.


기생충 영화는 송강호 가족에 대한 고발 영화이다. 이 영화에서 누가 제일 나쁘게 나오냐면 송강호 가족이 나쁘다. 이선균 가족은 그야말로 이게 무슨 일이고 상황이다. 이 가족은 어마어마한 피해를 봤다. 영화 보는 내내 드는 생각이 송강호 가족 참 나쁘다는 생각이다. 송강호만 나쁜 게 아니고 한 식구가 똘똘 뭉쳐서 나쁘다. 이런 의미해서 기생충은 고발 영화이다. 



이선균 가족은 무엇을 잘못했을까? 사람을 집에 들이지 말았어야 했다. 송광호 가족에게 의존해서 살 생각을 하지 말았어야 했다. 자신들의 삶의 윤택함과 풍요로움이 송광호 가족에게 의존했다는 것이 문제이다. 그래서 결국 일이 벌어지는 것이다. 이것이 바로 우리 사회 계급을 보여준다. 각 계층, 계급에 의존하는 것이다. 이 의존성을 깨달아야 한다. 의존하면서 지배한다는 것을 모르고 자기들이 선을 넘을 것이다. 송강호 가족도 지하실 가족에게 절대 선 넘도록 허락하지 않았다. 정규직, 비정규직 문제를 보는 것 같다. 송강호 가족이 지하실 가족에게 얼마나 잔인하게 대했나 보면 알 수 있다. 계단 밑으로 차린 장면에서 그 잔인성을 느낄 수 있다. 을끼리 벌어지는 수직 수평 폭력을 상징하고 있다. 대부분의 사람이 이선균 가족과 송강호 가족에 포커스를 맞추어 영화를 보는데 사실은 지하실 가족과 송강호 가족이 더 포인트라고 생각한다.




이런 한국 사회 전체를 국제 사회에 고발한 영화이다. 또 어떻게 보면 이선균 가족은 미국일 수도 있고 송강호 가족이 한국일 수 있고, 지하실 가족이 제3세계 국가일 수도 있다. 다양한 비유가 가능하다. 너무나 많은 것을 말해주는 영화이다. 이런 점에서 전 세계인들이 공감했다고 생각한다. 



냄새


완벽한 차단은 불가능하다. 원래 선이란 없다. 냄새라는 것은 원래 존재를 부정할 수 없다는 것을 의미한다. 선은 돌파된다는 의미이다. 영화 초반에 소독 장면이 나온다. 소독 연기가 창문 사이로 들어온다. 공짜로 소독하겠다고 창문을 연다. 이 장면이 영화 초반에 나오면서 냄새의 의미를 잘 보여준다. 기체라는 유동체는 차단벽이 불가능하다는 것이다. 횡으로든 종으로든 완벽한 차단은 불가능하다. 이 말은 즉, 차단하려고 하면 비극이 생각이라는 복선을 깔고 가는 것이다. 여기에서 많은 사람의 의문이 해결된다. 송광호는 왜 사람들을 죽였어야 했냐는 그 의문이 해결된다. 감독은 비극은 일어날 수밖에 없다는 이야기를 하는 것이다.



설국 열차로 가보자. 결국, 똑같은 이야기를 한다. 설국열차에서 만약에 꼬리 칸에 아이들이 좁은 공간에서 열차의 수리를 하는 장면이 없었다면 이 영화는 최악의 작품이었을 것이다. 그 아이들이 있었기 때문에 영화가 말이 되는 영화가 된 것이다. 그 설국열차를 만들고 설계한 자  맨 앞 머리 칸에 있는 자 그리고 중간에 있었던 사람들 이 모든 사람이 꼬리 칸에 있는 아이들에게 의존하고 있다는 사실은 말하지 않으면 설국열차는 말이 안 되는 영화가 된다. 핵심은 바로 서로 의존하고 있다는 점이다. 







엄청난 선이 나온다. 

영화 전체 미장센을 보면 수평선이 계속 나온다 비 올 때 집으로 돌아가는 장면이 하이라이트이다. 그리고 이선균의 집을 보여줄 때도 지하실부터 계속해서 수평선을 보여준다. 2층으로 올라가는 그 선과 언덕 위에 있는 그 집.  이 수평선은 바로 높이 계급의 문제를 말하고 있다는 것이다. 이 선을 오가는 송강호 가족의 움직임들이 핵심이다.



수평선과 수직선이 계속 나오고 다만, 차단은 불가능하다는 메시지를 보여준다. 그래서 서로 의존해서 살 수밖에 없다는 점이다. 기생이 아니라 공생이 되어야 한다는 점이다. 그래서 서로의 계급 간에 충돌이 일어나게 하지는 말아야 한다고 말하고 있다.




결국 신자유주의 이야기다


대만 카스테라 이야기가 상징적으로 보여준다. 유행을 뒤쫒다가 망한 이야기다. 처음에는 필라이트 맥주를 마시다가 맥스, 테라 맥주를 마신다.


감독은 계속에서 계급 문제에 대해서 말하고 있다. 설국열차와 기생충은 같은 주제 의식을 가지고 있다. 사회에 대한 불만과 변혁을 이야기하는 사람들의 문제도 함께 이야기한다. 하층 계급의 비루함과 지리멸렬함을 정말 처절하게 잘 그려낸다. 가난한 사람들이 항상 선하고 위대한 것처럼 묘사하지 않아서 참 좋다.



결국 영화는 지배 계급이든 피지배 계급이든 서로 의존하고 있다는 강한 메시지를 전하고 있다. 이선균 가족처럼 안 살 면 된다. 이런 단순화가 아니라 크게 생각하면 기업은 노동자 없이 돌아갈 수 없다는 점이다. 자원, 자본의 문제와 계급을 문제를 항상 생각하는 감독이 바로 봉준호인 것 같다. 그래서 그런지 세상을 보는 시각이 마음에 무척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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