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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간호사K Oct 30. 2023

동기야, 네가 있어서 다행이야

짧지만 로테이션과 파트 이동으로 동기와 함께 일하는 시간이 생겼다. 우리 과에 오기 전에 같이 이브닝을 했었는데, 그 때 동기는 시간이 날 때마다 '과 인계'를 달라고 귀엽게 졸랐다. 


우리 과에 교수님 배정은 요일 별로 어떻고 그들이 주로 어떤 수술들을 하는지부터 시작해, 방의 부속과 소모 재료 특이사항, 동기가 처음 접할 수술에 대한 전반적인 개요와 수술 진행, 주의점 등을 시간날 때마다 이야기해주었다. 현장 이야기를 더해 동기는 SOP를 뽑아 공부하면서 단어와 개념을 익히고, 궁금한 점을 물어보고, 수술 진행 과정을 열정적으로 공부하는 모습을 보여주었다. 



"나는 처음하는 로테이션이나 다름 없잖아~ 열심히 해야지!


그리고 이번에는 처음 삼성 노트에 pdf 깔아서 필기해가면서 했는데 이게 진짜 편하더라.


기억나? 신규 때는 수첩에 하나씩 적어가며 했던 거."


동기는 신규 시절에 같은 기숙사에 살았던 친구다. 그 때에는 신규 시절의 희노애락을 거실 식탁 테이블에서 함께 나누고, 종이 수첩에 수술 프로시져를 적어가며 정리하고 서로 알려주곤 했었는데. 그런 동기를 이제는 과의 회식 자리에서 만나 같이 술을 먹고, 같이 아는 교수님이 생겨 칭찬과 뒷담을 좀 더 구체적으로 하고, 각자가 트레이닝이 약한 수술일 때 편하게 디테일을 물어가며 수술을 익히고, 수술이 끝나고 사원님들이 방 청소를 할 때 일상 이야기를 나누며 즐거운 시간을 보낸다. 



방장 선생님 식교를 하면서, 동기랑 둘이 일하는 순간이 올 때마다 평소 말의 곱절은 하는 듯하다. 동기는 상대를 편안하게 배려하면서도 솔직한 표정과 언어 표현이 매력적이고 풍부한 편이다. 그래서 나는 동기를 실시간 관찰하며 웃을 때가 많고 그 시간이 재미있다. 동기는 수술 중에 눈 마주칠 때마다 손으로 제스쳐를 하고, 수술이 끝나갈 때면 그간 못한 말들을 쏟아낸다. 말하기를 좋아했는데 '동기 만한' 친구가 없어서 그간 내가 조용하고 차분했던 것인가, 나는 새삼 놀란다. 



나도 속한 수술방의 집도의 배정이 바뀌면서, 동기에게 배우면서 일하며 덕을 많이 봤다. 작은 실수나 오해 상황에서도, 서로 깨끗하게 잘못을 시인하고 사과하면서 편하게 이야기하고 인정하는 관계가 주는 청명한 느낌도 간만이었다. 만나면 반갑고, 또 보고 싶고, 같이 일하고 싶고. 직장 내 사회생활 관련한 고민을 들어 주고 공감해주며 해결책도 제시해 준 동기가 참 든든했고 나는 고백하고 말았다. 



"OO아~ 나는 네가 정말 좋아. 네 팬이야" 



때때로 떠나는 동기들이 생기고, 우리네 로테이션과 파트 이동의 앞길은 어떻게 될 지 모른다. '서로를 알고 인정하고, 오래 보아 온 편안함이 있는 동기들 덕분에 병원을 다니고 있구나'는 생각은 점점 깊어진다. 각자의 삶을 사느라고 예전처럼 모이는 일은 거의 없어졌지만, 이러한 변화 또한 인정하고 나니 마음이 편하다. 그저 지금 함께 할 수 있는 시간이 고맙고, 서로가 있어 든든하고 아주 소중하게 느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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