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술실 상차림에 대한 이야기를 한 적이 있다. 스크럽 간호사가 손을 씻고 들어가서 멸균 가운을 입은 후 가장 먼저 하는 것이 집도의와 해당 수술에 맞게 수술상을 차리는 것이다. 한 과의 수술 상차림은 instrument 상과 mayo stand 모두 고유한 특징을 가진다. 환자 침대와 메이요 스탠드가 들어가는 위치에 따라 set의 위치가 정해지고, 이를 바탕으로 스크럽 간호사의 활동 범위에 맞추어 쓰이는 빈도와 흐름에 따라 각종 기구를 놓으며 상을 차린다.
우리 병원의 경우에는 대부분의 과에서 상 오른쪽에 set를 두지만, 신경외과나 산부인과는 상 왼쪽에 set를 둔다. 보통 복강경 set는 왼쪽 가장자리, 왼 상단 가장자리에 주로 위치하며 산부인과 복강경 수술은 상의 가운데에 가깝게 복강경 set를 둔다. 절대적인 규칙이 있는 것은 아니지만, 정확하고 빠른 지원을 위해서 최적의 효율에 가까운 상차림을 만들어두고 이를 진료과 별 수술을 익힐 때 숙지하며 배워나간다. 병원마다 상과 메이요 스탠드를 쓰는 방법(상의 모양도 다르다. 직사각형 형태의 상을 쓰기도 하고, ㅅ자 모양으로 꺾인 상을 쓰기도 한다.)이 다르고, 이는 해당 수술실 간호사에게 문화처럼 인계되고 전승된다.
전에 외과 방에 순회 간호사를 갔었는데, 소독 간호사가 손을 바꿔 수술을 하는데 기구를 찾느라 당황하는 모습을 본 적이 있다. 평소에 허둥대는 모습을 보이지 않는 선생님인데 무슨 일일까 싶었더니, 그 방의 데이한테 인계받은 수술 상이 '예전의 상차림'과 달라 기구의 위치가 변한 탓이었다. 교육에 열정을 가진 방장 선생님이 주도적으로 해당 집도의가 쓰는 기구, 실 쓰는 순서 등을 반영하여 '새로운 상차림'을 만드셨고 이를 바탕으로 상을 차리셨는데, 장시간 수술이 되다 보니 이게 이브닝 번 간호사에게 넘어간 상황이었다.
그 방의 데이 근무를 하는 방장 선생님과 액팅 선생님은 새로 만들고 있는 상의 규칙대로 상을 차려 예측 가능한 상태로 수술을 할 수 있지만, 그 외에 수술을 이어 받아 해야 하는 다른 간호사들은 그 규칙을 모를 수밖에 없는 상태였던 것이다. 그러한 변화가 가능한 수술일수록, 집도의가 우리 병원에서 새로 도입하는 수술이거나 기구가 특히 많이 나오는 수술인데 이를 일일이 인계받고 익히기란 쉽지 않을 것이다.
일상적인 업무만 하기에도 바쁜 상황에서, '더 잘 일할 수 있는, 더 효율적인 방법'을 고민하고 이를 직접 실천에 옮긴 방장 선생님의 열정은 정말 존경하는 마음이 들었다. 한편으로는, 발전적이고 혁신적인 변화는 조직의 공감과 이해가 따라줘야 가능하고 규모가 클수록 오랜 시간이 걸릴 수밖에 없구나 하는 현실이 느껴졌다. 어떻게 한 과의 방장 간호사가 수술실 간호사 모두를 가르치겠는가? 이미 그 방 트레이닝을 한 외과 간호사들은 물론이거니와, 응급 수술이나 주말 근무에 수술을 인계받아 이어서 해야 할 타과의 수술장 간호사들 전부가 그 변화를 언제 익히겠는가? 그 외에도 하나의 수술을 온전히 지원하기 위해 익히고 기억해야 하는 끊임없이 변화하는 수술 재료, 신형 자동 봉합기와 복강경 기구들, 새로 도입되는 지혈제와 유착 방지제, 수술법 등 신경 쓸 것이 얼마나 많은데. 변화는 저항에 부딪칠 수밖에 없고, 어쩌면 변화 자체를 거부당할지도 모른다.
이러한 상차림 변화에 대해 외과 간호사들 간에 어떤 피드백이 있었고, 추후 어떻게 조정 과정을 거쳤는지는 정확히 알지 못한다. "이렇게 하는 게 편하더라." 하는 소독 간호사들의 팁이 자연스레 퍼지는 경우는 접해왔지만, 이러한 의도적인 변화는 시도가 낯설게 느껴졌다. 선생님의 열정과 도전을 응원하지만, 수술실 간호사의 교대 근무 특성상 효율과 정확성이 이어지는 '예측 가능한 환경'에서 서로의 수술상을 이어받는 것이 선호되는 것은 변함없는 사실이다. 우리의 변화는 어떤 식으로 가능할까. 무언가를 새로이 밀고 나가는 것은 정말 쉽지 않은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