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블링은 소에만 있는 게 아니다
2015. 10. 2 피렌체 첫 번째 공방. 종이로 만드는 아름다움 ALBERTO COZZI
원래 처음 취재하려던 곳은 이곳이 아니었다. 처음으로 취재 비슷한 것을 하려다 보니 긴장이 되어서, 그래 조금이라도 알려진 곳부터 시작해보자라며 가죽 제품을 판매하는 'Il bisonte 일 비종떼'에 갔다. 피렌체에서 가방을 사, 그것을 들고 학교에 다니자는 것은 나의 교환학생 첫 번째 다짐이었으니까. 하지만 일 비종떼는 이미 너무 큰 기업이었고, 매장 안에는 공방이 있지 않았다. 점원에게 괜히 말을 한번 붙여보긴 했지만 많은 정보가 이미 온라인에 있기 때문에 더 자세히 물어볼 수 없었다. 돈이 없는 학생이라 다음에 꼭 사러 오겠다는 너스레를 괜히 한번 떨어보면서, 매장 밖으로 나왔다. 몇 개의 팸플릿으로 무엇을 쓸 수 있을지 고민하면서.
그때, 바로 옆에 예쁜 가게를 발견했다. 엽서라도 사가야겠다고 생각하면서 들어선 순간 아름다운 온갖 수첩과 노트에 눈이 휘둥그레졌다. 그리고 그 안쪽에 자리한 공방. 그 앞에는 세 사람이 무슨 작업을 하고 있었다.
이거다!
피렌체에 온 지는 1달이 넘었지만, 사실 그 전까지는 가게 안에 공방이 있는 것을 본 적이 없었다. 취재를 하기로 결심하면서도 공방 취재는 주인과 친해지거나, 허락을 받고 가게 깊숙이 들어가야지만 있는 줄 알았다. 이후에도 돌아다니다 보니 가게 안에 공방이 있는 곳이 많았다.
DEL 1908
안에 들어가서, 데스크 앞에 계시던 여자 분께 조심스럽게 말을 붙여 보았다. 그분은 아주 친절하게 노트를 보여주시며 가게에 대한 소개를 해주셨다.
종이 문구를 만드는 페이퍼에는 두 종류가 있는데, 하나는 전통적인 일러스트 페이퍼를 구입하여 직접 바인딩하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가게에서 직접 마블링을 해서 종이를 만드는 것이다. 마블링을 통해 만든 종이는 세상에 단 하나밖에 없는 유일한 것이 된다. 그리고 같은 종이라고 하더라도 어떤 부분을 쓰느냐에 따라 다른 느낌을 준다. 토요일 세 시쯤에 오면 마블링을 하는 모습을 직접 볼 수도 있다고 한다. 하지만 늘 있는 건 아니기 때문에 약간의 행운이 필요하다. 여기에 머무는 동안 다시 한번 찾아가 마블링을 하는 모습을 보려고 한다. 이렇게 만들어진 종이는 노트나 수첩이 되기도, 액자나 앨범이 되기도 한다. 종이 외에도 가죽커버로 된 노트나, 필통, 앨범 역시 구매할 수 있다. 사진은 찍지 못했지만 가게 한쪽에 가죽들이 통째로 걸려있었다.
이 공방은 1908년부터 지금까지 100년이 넘은 가족 사업이라고 한다. 그라지엘라(Graziella)라는 가족이 4대째 이어 오고 있다. 안쪽에 계시던 분은 아버지와 두 아들이었고, 나에게 가게에 대해 설명을 해주신 분은 그 아들 중 둘째 분의 아내 셨다. 가게에서는 제품을 만들어서 판매하는 것뿐만 아니라, 한 사람만을 위해 개인적인 책의 커버를 씌우기도 하고, 도서관의 책들을 바인딩하는 공공기관과 같이 하는 일도 하고 계시다고 한다.
안쪽으로 들어가 직접 어떤 작업을 하는 지 볼 수 있게 해주셨다. 한 분은 가죽을 크기에 맞게 자르고 계셨다. 다른 두 분은 책 표지에 풀칠을 하고, 그것을 눌러주는 작업을 하셨다. 기계를 쓰지 않고 손으로 직접 작업을 하고 계셨다.
이렇게 예쁘고 손이 많이 가는 작업들이지만 가격은 그리 비싸지 않았다. 피렌체로 들고 온 다이어리가 공간이 많지 않아서, 일기를 쓸 노트를 찾고 있었는데 아주 예쁜 것을 살 수 있었다. 노트는 4가지 크기가 있었는데, 3번째 크기를 샀다. 이 크기가 15유로였다. 다른 가격은 정확하게 기억나지는 않지만, 가장 작은 것이 8유로, 그다음이 12유로 정도였던 것으로 기억한다. 노트와 함께 펜도 세트로 구매할 수도 있다. 가이드북에 자주 소개되는 가장 유명한 문구점 '일 파피로'는 노트가 30유로 가까이 되었으니, 조금 더 저렴한 것을 찾는다면 이 곳을 방문해 보았으면 한다. 전체적으로 크게 부담되지 않는 가격이었다. 처음에는 프린트되어 있는 종이로 만들어진 것이 더 예뻐 보였지만, 이 곳에서만 살 수 있는 것을 사고 싶어서 마블링 노트를 샀다. 포장도 아주 예쁘고 정성스럽게 해주셨다. 볼수록 더 마음에 들고 특이해서 마음에 든다. 돌아다니다 보면 같은 무늬로 된 제품을 많이 볼 수 있기 때문에, 기념을 하고 싶다면 마블링노트를 추천한다. 모양이 조금씩 다 다르고 색깔도 다양해서 하나만 고르는 것이 쉽지는 않지만, 고르는 재미도 쏠쏠하다!
전통적인 종이 자체만을 살 수도 있다. 제품도 책갈피나 편지지처럼 작은 것부터 박스, 앨범, 필기구까지 아주 다양한 종류가 있다. 예산이 많지 않아도 이렇게 정성이 듬뿍 담긴 편지지에 나의 정성까지 더해서 편지를 보낸다면, 받는 사람이 정말 행복하지 않을까?
이 포스팅을 다 쓸 무렵에는, 아마 난 파산할 것 같다.
https://goo.gl/maps/24vbpm8GuV52
- 아직 구글 맵 첨부하는 방법을 몰라서 이렇게 해놓는다.
'' 하나만 아는 이탈리아어 ''
libri 책의 복수형. 단수형은 libro
글. 사진 BUONA VITA