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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윰 Jul 04. 2024

조감독이 되었습니다만

내 시나리오는 to be continued…

 시나리오 합평회를 가졌다. 장장 세 시간에 걸쳐 각자 써온 시나리오를 역할 분담해 리딩했다.

 

 로맨틱 코미디, 오컬트 장르 영화에서부터 자신의

이야기를 진솔하게 담은 자전적 영화까지 다양했다.

이들의 이야기를 읽다 보니 여러 궁금증이 일었다.


 먼저 남자 두 분이 어쩌다 여성 서사 영화의 시나리오를 쓰게 됐을까라는 것과 왜 시나리오를 쓸 때 나의 이야기에서 벗어나기가 어려운가 등이었다.


  첫 번째 질문에 대해서는 논평하는 시간에 직접 물어보았다. 하나의 답변은 자신이 무당의 대물림을 소재로 글을 쓰려고 하니 무당의 이미지로 대게 여성이 떠오르더라 하는 것이었고, 다른 답변은 자신이 부모와 자식 간의 관계에 대해 쓰려고 하니 아들과 아빠 혹은 아들과 엄마의 관계보다 딸과 엄마의 관계성이 특히 복잡미묘한 지점이 있는 것 같아 흥미롭더라 하는 것이었다


 첫 번째 답변의 글을 쓰신 분은 본인이 편견에서 기인한 바를 인정한다면 조금 멋쩍어하셨다.

두 번째 분은 정말로 자기가 말한 대로 믿고 있는 듯했는데, 나도 딸로서 부인할 수 없는 점이긴 하다. 어쨌든,‘흥미‘ 정도로 시나리오를 쓸 수 있을까? 하는 의문이 시나리오를 읽으며 점화됐다. 딸과 엄마의 깊은 갈등의 골과 사랑의 충돌을 어떻게 쉽게 이해할 수 있을까. 이러한 애증의 관계는 너무 개별적이고  감정의 층이 두터워서 여자들끼리도 서로 이해하지 못하는 경우가 허다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딸과 엄마의 갈등은 여성이라면 누구나 공감할 명제이긴 하다. 최근 이효리와 엄마의 여행에서의 갈등과 화해의 모습이 시청자들로부터 큰 공감을 얻고 있다는 것만 봐도 그렇지 않나?


 두 번째 질문,  왜 시나리오를 쓸 때 나의 이야기에서 벗어나기가 어려운가 에 대한 질문은 시나리오를 쓰면서부터 생겼다. 그리고 시나리오 선정에서 배제되고 나서 다시 이 질문이 내게 들어왔다.

 우선 내 시나리오 대한 감독님의 논평은 이러했다. “하고 싶은 이야기가 너무 많아 보인다. 이거 쓰면서 안 괴로웠어요? ” 내 경험이 속속 들어가 있긴 했지만 모두 내가 하고 싶은 거대한 이야기 안에 배치해 놓은 요소에 불과했기 때문에 내가 감정적으로 이입할 것까진 없었다. 혹 감독님이 이 시나리오가 실화 기반이라고 여기신다면 해명을.. 좀 해야 할 것 같은데…

  내 시나리오에 대한 동료의 평은 유일하게 뒤풀이에서 들었는데 시점이 많아 이야기가 하나로 모이지 않아서 아쉬웠다는 거였다.  아, 이건 감독님과 같은 맥락의 평가인데 이거에 대해 해명하자면 작년부터 고레에다 히로카즈 감독의 <괴물>의 연출에 너무 꽂혀있던 터라 조금 그 형식을 따라가 보려 했던 시도가 과했던 것 같다. 고작 15분짜리 단편에서 시점을 둘 이상 둔다는 건지금 생각해 보니까 어불성설이다.


  다시 처음 질문으로 돌아와 보자. 나뿐만 아니라 대부분이 본인의 관심사, 이야기에서 시작한 시나리오를 가지고 왔다. 왜 아마추어는 그럴 수밖에 없는가?

  영화는 내 이야기를 늘어놓는 일기가 아니라 관객이 있을 때만 존재하는 예술이라는 것을 잊어서는 안 되겠다. 그런 맥락에서 봉준호 감독 때문에 회자되는 말 “개인적인 것이 가장 창의적인 것이다”  이 예술의 영역에서 의미하는 바는 충분히 알겠으나 남용해서는 안 되겠다. 내 이야기에서 시작하더라도 모두의 이야기가 될 수 있는 지점을 찾기 위해 노력하는 것 그거야말로 예술이 지향해야 하는 것이니까.

  그러나 왜 아마추어가 그럴 수밖에 없는가?  예술을 하려는 욕구의 본질이 자기 자신의 표출이라서 그렇다고 생각한다. 그런 욕구가 애초에 없다면 영화를 쓰고 찍는 일은 ‘굳이 왜’의 의심으로 하강해 버렸을 것이다. 그런 욕구에 발동해서 이제 시작한 거니까 자기가 하고 싶은 이야기를 다 털어놓고 나면 그때부터 변주가 가능하지 않을까.


  그나저나 나 감독은 안 됐지만 조감독이 되어 버렸다.

“시간 관리 잘하세요? ”라고 물으신다.

큰일 났다.

“감독님 하고 피디 님하고 앞으로 피 터지게 싸우시겠네요. ” 란다.

벌써 무섭다.


 그래도 뒤풀이하며 느낀 바는 아무리 내 자리가 어려워도 감독만 하겠냐는 거다.

조감독 자리 꽤 만족스럽다.

아직까지는. 다 즐거운 걸로.

미래에 대한 건 장님으로 지내련다.


아, 그리고 내가 쓴 시나리오 제목은

 <오후의 아이스크림>

다 맘에 안 들지만 제목은 퍽 마음에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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