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명이라도 이탈하면 곧바로 망해요
감독, 조감독, 촬영감독 외 2명, 스크립터, 미술감독, 동시녹음, 제작부 2명 그리고 배우들.
초저예산 단편 영화 하나를 만드는데 필요한 (거의) 최소 인원이다. 사실 영화의 규모에 비해 많은 축에 속한다. 그러나 제작을 해보면 지금 인원도 턱없이 적으며, 한 명이 거의 3명의 역할을 맡는 상황이 된다. 나만 해도 메이크업 아티스트, 캐스팅 디렉터, 각본가 등 여러 역할을 맡고 있다.
대학교 때부터 대부분 조별과제에 대한 기억은 좋지 않을 듯하다. 조별과제의 악몽을 한 번씩은 다 꾸었으리라. 열의 있는 혹은 절박한 소수 아니면 한 명의 주도 하에 과제를 수행하게 되는 경우가 허다하다.다 차려놓은 밥상에 숟가락을 얹는 이는 한 명뿐이 아니라 대부분인 상황이 발생한다. 운 좋게 팀원들이 조금 열정을 가지고 있는 경우에도 흥미롭게 흘러가지는 않는다. 왜냐하면 효율성을 우선으로 두는 우리는 각자 맡은 역할을 정확하게 배분하고, 자료를 추합해 정리하는 역할을 맡은 구성원이 마감 전날 자신의 일을 이행하고, 발표 당일 발표를 맡은 구성원이 발표를 하기 때문이다. 굉장히 효율적이고 생산적인 과정으로 들릴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이게 정말로 조별과제를 하는 목적일까? 개인과제 대신 조별과제의 이유를 생각하다 보면 팀워크, 협동과 같은 단어가 떠오른다. 그러나 앞의 단어들이 쉽게 쓰일 환경은 이상적이고, 그런 경험을 한 사람들도 거의 없을 것이다.
영화를 만드는 과정은 사뭇 다르다. 나는 비교적 작은 규모의, 대부분 열정 있는 사람들로 구성될 수밖에 없는 특별한 환경 속에 있다는 사실을 인정한다. 하지만 여기서 영화를 만드는 일이 다른 프로젝트와 구별되는 특수한 과정과 결과에 관한 걸 이야기 하고 싶다.
앞서 말했던 구성원 각자가 맡은 역할을 제대로 수행하지 않을 때 낳게 될 결과는 참담한데, 이 정도가 상상보다 끔찍하다. 그리고 가혹한 상황을 두 번 이상 경험해야만 한다. 먼저 마주할 참담한 광경은 촬영 당일이다. 우리에겐 제한된 예산과 시간이 있다. 현장에서 시간은 돈이다. 만약 조감독인 내가 촬영날까지 배우의 의상을 구하지 못했다면? 내가 까먹고 배우에게 콜타임을 잘못 알려줬다면? … 어떻게 될지 상상하고 싶지 않다. 내 실수가 사소하다고 해도, 세세하게 분업되어 있는 우리의 팀 구성원 각각의 사소한 실수가 모이고 모이면결국 촬영을 마치지 못할 것이다.
영화 현장은 인간의 실수가 없다 하더라도 변수가 많은공간이다. 자연이 허락해주지 않으면 촬영을 포기해야 하기 때문이다. 예측하지 못한 소나기가 내린다면… 촬영은 뒤로 밀릴 것이고… 촬영 장비를 지켜야 하고… 배우에게 늘어난 촬영 시간에 양해를 구해야 할 뿐 아니라 출연료를 더 지급…. 우리는 최소한의 예산으로 진행하기 때문에… 우리의 돈이 투입… 두려움이 밀려온다.
어찌어찌 촬영을 무사히 마쳤다고 하더라도 감독은 다시 혼돈을 경험하게 될 것이다. 포스트 프로덕션 즉, 촬영본을 확인하고 편집 단계에 들어가 절망한다. 당시에놓친 것들을 무수히 발견할 것이다. 샷에 걸려버린 제작진의 옷들, 아쉬운 연기, 저장되지 않은 촬영본, 체계적이지 않은 스크립. 그러나 때는 이미 늦었다. 재촬영의 기회는 오지 않는다.
상영 당일 큰 스크린에 띄운 자신의 작품을 보며 또 한 번 절망한다. 자신이 원했던 그림이 전혀 아니다.
자신이 원하는 그림을, 가상의 현실을 명징하게 스크린에 구현하는 감독은 없을 것이다. 만약 성공했다면, 그건 능력 있는 스태프들과의 완벽에 가까운 앙상블 덕분일 것이다. 이 때문에 나는 영화 만드는 일이 조별과제의, 팀워크의 최전선에 있다고 생각하게 됐다.
여기까지 비관적인 말만 늘어놓은 것 같다. 아마추어 조감독은 촬영을 10일 앞두고 이래저래 불안하다.
그래도 다행히 최종 대본고가 나왔고 모든 배우와
로케이션을 섭외했다.
걱정은 접어두고 일단 쓰자.
오늘 일일 촬영표를 작성해야 한다.
내가 가장 약한 부분인… 계획표 작성…해내야만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