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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Ash Gray Jul 15. 2018

무료한 날들에 대한 투정

'꼭 그렇진 않은' 배부른 이야기...

하루 전날, 알람을 맞추지 않고 잠든다.

중간에 깨어도 무시하고 계속 잔다.

더 잘 잠이 없을 때까지 잔다.

일어나도 할 게 없으니까.

너무 오래 누워있어 목.허리가 아프거나, 너무 더워 더는 누워있을 수 없을 때, 그 때 일어난다.


느긋하고 게으르게 청소, 빨래, 설거지를 시작한다.

'나는 이따 나갈 거니까. 나가야 하니까.'

하는 마음이 아니고서는 도저히 집안일이 시작되질 않는다.


덕분에 집안일을 마무리하고는 뭐든 먹으러 나간다. 주차도 애매하고, 급한 일도 없으니 그냥 혼자 버스를 타고 간다. 배고픔은 아직까지 그럭저럭 참을만하다.
버스를 내려서는 무작정 걷는다. 걷다가 마음에 드는, 들어가보고 싶은 예쁜 가게가 있으면 그냥 들어간다. 혼자 들어가 신중히 고른 후 혼자 먹는다.


1인분에 11,500원하는 베이컨 모짜렐라 샐러드를 시켰다. 요즘 꽂혀있는 메뉴다. 최근 자주 먹으러 왔다. 
간간이 오는 기혼 친구들의 카톡에 답을 해주며 샐러드를 먹는다. (주로 남편이나 시댁 욕이거나 아이들 때문에 힘들다는 하소연이다.)

같이 근무하는 또래(그러나 후배) 남자 동료들에게 물어보았었다. 한접시에 1만원이 넘는 샐러드를 사먹겠냐고. 절대 사먹지않겠다 3명, 어떨지 궁금하니까 한번쯤은 도전해보겠다 1명.

나는 정기 배송 받아 먹고 싶은데. 촵촵.


돈이 없어 먹고 싶은 것을 꾹꾹 참거나, 더 저렴한 같은 메뉴를 찾거나, 그거 한 번 먹어보겠다고 몇 끼니 돈 아껴 모아 한번씩 '나를 위한 선물'처럼 사먹었던 취업준비생 시절이 불과 7~8년 전이다.


남편이나 아이, 또는 편찮으시거나 불편하신 부모님, 해야하는 일들에 신경 쓰지 않고 자고싶은 만큼 자다 일어나고.
자유롭게 길을 걷다 먹고 싶은 게 있으면 들어가서 사먹고.

혼자 여유롭게 낭만 떨 듯 게으름 부리며 내일 걱정 없이 그저 오늘을 사는 하루.


할 게 없으니 심심하여 뭔가 할 일을 만들어내지만 꼭 해야하는 일이 아니고, 나혼자 하는 일이라 부담도 스트레스도 없다. 이렇게 무료함의 끝을 파고 있다.


대걸레로 바닥을 밀다, 고무장갑을 끼고 빨래를 하다, 세면대 하수구에 낀 머리카락을 치우다 문득문득 생각한다.

지금 나에게 남편이, 아이가, 남자친구가 있었다면 난 더 행복했을까? 덜 외롭고 덜 심심했을까?

대답은 '꼭 그렇지는 않았을 거다.'

이것이야말로 확신에 차 할 수 있는 말.

꼭 그렇지는 않았을 거다.


나는 그냥 지금의 나에게 주어진 이 모든 것들을 감사히 누리며 내 삶에 주시는대로 살아가야지,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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