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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Ash Gray Aug 19. 2018

지금 무엇을 갖고 계신가요?

원하는 걸 갖고 있을 때도 공허하다면... 대체 무엇을 더 해야하는 걸까

굳이, 그럴 필요까진 없었는데, 애써, 혼자 있고 싶은 마음에 덜컥 2박3일 호텔 스테이를 결제해버린 나.

'호캉스'라고 하기엔 선선해진 바깥 날씨와 에어컨을 끄고 자는 내가 말이 되지 않는다.


이것저것 일거리, 생각거리, 쓸거리들을 싸들고 왔지만 결국 이틀 내내 한 짓은 '멍 때리기'.

정말 아무 것도 하지 않고 있다가 잠시 후 집에 가게 생겼다.

아무 것도 안하기만 했으면 다행, 괜한 고독을 자처하여 외롭고 울적하기까지 했다.

뭐, 이렇게 될 줄 알면서도 고질병처럼 나는 혼자 있기를 원했다.


결국 이럴거면 굳이 왜, 이 돈을 들여 여기에 왔나, 싶어서 눈물나게 돈이 아깝지만.

내가 사는 도시에서 마치 여행객이 된 마음으로 늦은 밤이나 새벽, 시내 중심가를 돌아다녀본 것은 나름 좋은 경험이었다. (가성비는 떨어지는 것 같지만... 아무래도 자기 합리화인 것 같다...)

어차피 아무 것도 안할 거였으면 아예 스트레스 없이 푹 쉬고 빈둥거릴 것을, 괜히 불안해하고 찝찝해하면서 게으름을 부렸다. 더 편히 놀 수도 있었는데..... 그리고 참 많이 우울했고 외로웠다. 그렇게 원했던 혼자였는데도.


집에는 출장간다, 하고 나왔다. 차마, '그냥 혼자 있고 싶어서.'라는 말은 입 밖으로 떨어지지 않았다.

거짓말을 했든, 하지 않았든, 어쨌든 나는 쉽게 혼자가 될 수 있는 자유를 얻었다. 그리고 지금 신나게 누리고 있다. 하지만 나에게 남편과 아이가 있었다면, 그랬더라도 이리 쉽게 혼자 나와 2박3일을 뒹굴거리며 혼자 놀고 먹고 잘 수 있었을까?

남편은 나의

"혼자 있고 싶어."

라는 솔직한 말이나

"출장이야."

라는 거짓말을 받아들일 수 있었을까?

아니, 그 전에 내 스스로 저런 말들(진실 혹은 거짓)을 남편과 아이 앞에서 당당히 할 수 있었을까?


하, 다시 한번,

'나는 결혼이란 걸 다시 할 수 있을까? 과연 나는 결혼 생활을 견뎌낼 수 있는 영혼인가?'

하는 진지한 고민과 성찰이 시작된다.


나는 언제 가장 행복했나? (예전 가장 오래 만났던 남자친구와 함께 했을 때)

그 때 나는 정말 행복했나? (이렇게 회의감 들기 시작하면 밑도 끝도 없지만)

내가 정말 원하는 건 뭘까? (외로운 자유를 원하니? 답답한 안정을 원하니?)



최근 2번의 출장을 통해 나와 동갑인 동료를 2명 만났다. 한명은 남자, 한명은 여자.

사실 동갑이란 걸 알기 전까진, 나도, 주변 사람들도 그들을 모두 나보다 더 연상으로 보았다.

남자분은 나보다 10살 정도, 여자분은 나보다 5~6살 정도.


안다, 나도.

내가 잘나고 대단해서 동안인 게 아니라, 나혼자 홀가분한 삶이라 현실에 덜 지쳐 동안인 것을.

기혼자들에 비해 나에게 신경쓸 시간과 투자할 돈이 조금은 더 여유롭기에 동안인 것을.

(덧붙여,, 나는 20대 때 노안이었음을 고백한다. 그 세월들 지금 보상 받고 있음도.)


우리가 동갑이란 걸 안 순간부터 남자분은 처음부터 끝까지 슬프고 지친 표정을 풀지 않았고, 여자분은 매우 솔직하게 자신의 자괴감과 우울감을 말로 표현하셨다.

"우리 아이들을 반품해야 하나, 어떻게 자기랑 내가 동갑인 거지...... 나도 믿어지지가 않는데 남들은 오죽할까. 난 인생을 어떻게 살아온 걸까? 결혼은 왜 그렇게 빨리 했고, 애는 왜 벌써 둘이나 낳아서. 이렇게 좋은 나이에 왜 나는 벌써 폭삭 늙어버린 건지... 나 자기가 대놓고 부럽네요."


"제 입장서도 부러운걸요. 다 가지고 계시잖아요. 남편과 아이, 분명 집도 있으실 거고. 전 하나도 없요. 아이가 둘이나 있는데도 이렇게 일하러 다니시는 모습도 놀라워요. 진정한 능력자시지요. 얼른 아이 다 키우고 놀러 다니시면 되잖아요. 요즘 140세 인생인데 아이들 다 키우고 나서도 정정 하실 거예요. 어쩌면 저는 그즈음 골골 대면서 육아하고 있을 지도 몰라요."


나의 말에 그 분은 환한 미소를 띄셨다.

"아, 그런 생각도 할 수 있겠구나. 그런 관점은 미처 생각을 못했어요. 내가 능력자로 보일 수도 있겠어!"


나의 말에 공감되신 이 여자분은 이내 활력을 되찾으셨지만 역시 모든 것을 다 가진 또다른 능력자 내 친구는 늘 한탄하며 말한다.

"난 아무 것도 한 게 없어. 해놓은 게 없어."  

해놓은 게 없다니! 대체 그게 무슨 말인가!

7년 연애 끝에 적령기에 순조롭게 결혼하여 돈 잘 버는 의사 남편과 함께 아파트 평수 넓혀 가고, 원하는 외제차도 척척 사고, 3년 전 태어난 아들은 이제 뛰어다니고 말도 할 수 있게 되었는데!

왜 내 친구가 아무 것도 한 게 없단 말인가! 그 남편과 아들의 현재는 내 친구가 없었다면 감히 꿈꾸기 어려운 것이었을데!!!

 

취직 시험에 계속 떨어졌던 5~6년간 내 삶은 아무런 변화가 없었던 암흑기, 정체기였지만 그 때 만났던 남자친구와의 연애는 그 시기, 나의 유일한 '존재의 이유'였다. 그 관계를 유지시키고 발전시켜 나가려 애썼던 노력과 시간들은 텅 빈 내 영혼을, 아무 것도 없던 내 삶을 잔잔하고 따뜻하게 채워주었다. 서로 할퀴고 눈물 흘리게 한 날들도 있었지만 우리는 분명, 서로에게 위로였고 안식이었다. 나는 그 관계에서, 그 남자친구에게 배운 게 있었고, 가르친 게 있었으며, 서로 주고 받은 게 있었다. 변화는 없었을지 몰라도 성장은 분명히 있었다.


비록 지금은 어디에서 어떻게 사는지 알지도 못하고, 다시 만난 적도 없으며, 만나고 싶지도 않은 그 전 남자친구. 내 삶에서 가장 행복한 시간이었다, 고 말하기엔 현재의 나와 너무도 아무 상관 없는 그 시간들. 하지만 그 당시 나는 이렇게 말하고 다녔었다.

"지금 난 아무 것도 가진 게 없지만, 제대로 해낸 게 하나도 없지만, 이거 하나는 확실히 했어. 연애. 정말 내 모든 걸 다 바쳐서 했어."   



결혼, 연애, 싱글 라이프.

무엇이 나를 행복하게 하고, 내 스스로 내 행복을 만들 수 있을까?

내가 진정 원하는 삶은 무엇일까?


원하는 걸 가졌을 때도 공허하다면 우리는 그 다음에 무엇을 해야하는 걸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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