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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Ash Gray Aug 26. 2018

<예시답안3> 정도로라도...

글이 잘 안 써지는 이유

확실히 글은 감정이 격해야 잘 써진다.

격하게 화가 나거나, 격하게 슬프거나, 격하게 즐겁거나, 격하게 우울할 때.


이게 내가 요즘 글이 잘 안 써지는 이유다.

살아오며 거의 겪지 못했던, 무료할 정도의,
보통의, 평범한, 근심.걱정 없는 나날이다.


물론 조금씩 화도 나고, 가끔씩 울적하기도 하고, 외롭기도 했지만
생활의 뿌리가 흔들릴 정도로!

밤에 잠이 오지 않을 정도로!
감정이 격렬했던 적은 최근 몇 달간 거의 없었다.


참, 외롭고 우울하고 슬펐던 순간에도 내가 손만 내밀면 내 손을 잡아줄 좋은 사람들이 가까이에 있다는, 분명 그 곳에 있다는 신뢰와 기대는

이내 나를 다시 설레게 만들었고, 내일을 기다리게 만들었다.


조금만 참으면 돼.

오늘만 참으면 돼.

하면서 말이다.


글을 써보려고, 감정 좀 잡아보려고, 애써 나를 괴롭혀 보기도 했지만....

지난 주에 이어 이번 주,

나는 깨달았다.


나 요즘 정말정말 참 잘 살고 있다는 것을.


하, 포기하니까 차라리 마음이 편안하다.

지난 주에도 나의 행복과 안정, 평화를 인정하고
노트북을 더 빨리 덮었더라면

침대에 더 빨리 드러누웠더라면 난 더 많이 행복했을텐데.

왜 그걸 인정하지 못하고, 포기하지 못해서.

건강하고 즐거운 돼지가 뭐 어때서.


내 언젠가 내 안에서 끄집어내리라, 했던 그 많은 이야기들, 막상 평온한 마음으로 여유로운 시간에 차분히 꺼내보려하니.

내 스스로 그 이야기들과 그 때 그 감정들을 애써 회피하고 있다는 걸 알았다.


너무 분하고 슬프고 억울해
목구멍 위로 솟아 마구잡이로 토해댔던

그 많은 이야기들이

막상 정제되니 내 속에 가만히 웅크리고만 있다.

아직 소화된 것 같지는 않은데 말이다.


복수는 나의 힘

음악은 배설

이라는 어느 아티스트들의 예술관에 적극 공감하는 나로서는.... 어떤 에너지를 잃어가는 느낌이다.


이대로 소화, 흡수시켜도 될까....

오랜날 시간적 여유만 노려왔던 내 삶의 목표를 이대로 놓아줘도 되는 것일까....

그러다 언제라도 힘든 상황이나 비슷한 상황에 처하면

찌질찌질하게 꼬리에 꼬리를 물고 나올
지나온 분노와 슬픔과 억울함과 그 절묘한 스토리가 다시 나를 쥐고 흔들텐데 그때,
요즘 이 날들을 곱게 흘려보낸 것을 후회하거나 안타까워 하지 않을까 싶기도 하다.
이런 여유 부리는 거, 부렸던 거 진심으로 행복해할 수 있을까.


있으면 있어서 난리,

없으면 없어서 난리.

편하면 편해서 고민,

힘들면 힘들어서 고민.

좋으면 좋아서 불안,

나쁘면 나빠서 불안.

참, 춤추기 어려운 장단.


이 쯤이면 대충 다 맞았을 거야.

이 정도면 정답까진 아니어도 모범답안쯤은 되겠지.

했던 순간들, 지나고나니 모두 다

'아니올시다.' 였다.


이 날들도 그리 될까 살짝 걱정이 되지만...

요즘이 오답일지라도 어떻게든 정답, 하다못해 예시답안3 정도로라도 만들어버리겠다고,

다짐에 각오를 하고 이만 잠자리에 눕겠다.


점점 더 행복해지길 기도하면서.

행복의 글빨이 내 안에 가득 차주길 기도 하면서.


이 평화와 안정에 감사 드린다.

그게 누가 되었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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