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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민교 Dec 09. 2018

파도도 쉬었으면 좋겠다

현덕사 템플스테이 (3) | 2018. 1. 3. 수요일



아침공양 하고 또 스님이 내려주신 모닝커피 마시고 바로 짐싸고 떠날 채비를 했다.

템플스테이를 현덕사로 정한 건 가까운 곳에 바다가 있기 때문이었다. 주문진 해변은 어릴 때도 몇 차례 가 본 곳이라 다른 해변에 가볼까 했지만 시간이나 교통 여건 상 주문진밖에 달리 갈 곳이 없었다.


버스 시간이나 노선을 검색하지 않고 무작정 현덕사에서 가까운 버스정류장으로 나갔다. 다행히 주문진 해변으로 가는 버스가 있었다. 30분이 넘도록 오매불망 버스를 기다렸다. 앞뒤로 산이 있고 사람은 없는 곳에서. 말도 못하게 추웠지만 그런 잠잠함이 평화로웠다.

 


버스에서는 정류장 안내 음성이 잘 나왔다. 잘못 내릴 일은 없겠다고 생각했는데, 어느 순간부터 나오지 않아 결국 몇 정거장 더 가서 내렸다. 그러나저러나 어쨌든 바다는 나왔다. 잘못 내린 덕분에 보지 않고 지나가버렸을 새로운 풍경도 마주했다.


잘못내린 버스정류장에서 마주친 알프스 풍경


마지막으로 강원도에 왔던 게 5-6년은 된 것 같다. 강원도는 내 기억하던 모습보다 훨씬 웅장한 자연을 품고 있었다.

앞으로는 시퍼런 바다가 철썩대고 뒤로는 희끗한 산들이 겹쳐있.


우선 바로 보이는 바닷가로 내려갔다. 너른 모래사장은 관리가 잘 되지 않았는지 쓰레기가 굴러다녔고, 사람이라고는 나 말고 아무도 없었다.

종말한 세상의 끝에 혼자 서있는 느낌...

그렇게 생각하기 시작하자 공포가 안에서 단번에 확 펼쳐졌다. 무한의 공간에 떠있는 느낌이었다. 롤러코스터에서 떨어질 때처럼 심장이 떴다.






아무도 없는 무서운 겨울바다. 파도가 흉폭해보인다.



냅다 뒤돌아 뛰어서 해변 밖의 보행자길로 걸었다.

이정표만 보고 직진하자 원래 가려고 했던 주문진해변이 나왔다. 사람도 나왔다.


어릴 때 가족들과 왔던 기억도 새록새록 나왔다. 내가 중학생이었을 무렵이었나. 친가 가족들과 다함께 왔던 기억. 이제는 절대 있을 수 없는 일이 되었지만 그 때 나는 새로 산 폴라로이드 카메라도 들고 와서 사진을 찍어갔는데.

그 때 이후 처음 온 것 같다. 예전의 내가 그랬듯이 대부분은 가족이나 친구들끼리 온 사람들이었다.



묵직한 파도는 멈추지 않았다. 쉬지도 못하는 게 힘들어보였다. 밀려왔다가 다시 돌아가는 수천의 파도를 가만 보고있는 것만으로도 시간은 훌쩍 지났다. 시간도 쉬지 못하는 게 안쓰러웠다.










배고파서 먹을만한 곳을 찾는데 마땅한 곳을 찾지 못해 해안가를 따라 계속 걸었다. 걷고 걷고 또 걸었다. 아무도 없는 길을 또 혼자 걸었다. 왼쪽으로 바다를 두고 걸었다. 이렇게 가다 보면 뭐라도 나오겠지 하면서 걸었다.

핸드폰 배터리는 또 나가고 가방은 너무 무거웠다. 간혹 나오는 이정표를 보면서 주문진항을 향해 걸었다.


 그렇게 가다 보니 드디어 목적지가 나왔다. 오래 걸리거나 돌아가긴 해도 길을 헤매는 편은 아니다. 그렇게 힘들게 도착하다 보면 확신에 차 걸었던 내가 자랑스럽기도 하고.








주문진항에는 사람이 많았다. 다들 관광객인듯 했다.

공중화장실 옆에 정자가 있었는데 아웃도어를 입은 아저씨들이 앉아서 쉬고 계셨다. 나도 일단 정자에 가방부터 팽개치고 잠시 쉬었다.



맞은편에 튀김집이 보였다. 너무 허기져서 오징어튀김과 새우튀김을 먹었다. 일단 튀김사장님께 물어 터미널로 갈 수 있는 버스를 타는 곳의 위치를 확인하고, 그 근처의 식당을 찾아 배회했다.


버스정류장 쪽으로 가다가 1인분을 먹을 수 있을 것 같은 식당을 발견해 들어갔다. 강원도에 와서 꼭 물회를 먹고 돌아가려 했는데 메뉴에 다행히 가자미 물회가 있었다. 식당에는 근처에서 일하는 사람들이나 주민들이 오가는 것 같았다. 다들 무난한 밥 메뉴를 먹는 와중에 가자미 물회를 혼자 먹고 있는 나는 누가 봐도 외지인이었다. 그러거나 말거나 아랑곳 하지 않물회는 매콤새콤 맛있었고 나는 그릇을 싹싹 비웠다.






밥 먹고 나와서는 강릉터미널로 가는 버스를 20분 기다려서 탔다.

빈 시간은 좋지만 기다림은 별로 좋아하지 않는데, 정류장에서 버스를 기다리는 건 정말 성가시다. 마냥 넋놓고 쉬면서 기다릴 수도 없고, 놓치면 또 기다려야 하고.


겨우겨우 버스를 타고 터미널에 도착했으나 부천행 버스를 타기 위해 또 1시간 가량을 기다렸다.

빈 시간 동안 책 몇 장 읽을까 하여 터미널 내에 있는 카페에 들어갔다. 음료도 빵도 맛없었고, 아줌마도 욕심쟁이 기계처럼 일하고 손님들 대하는 게 보는 것만으로도 기분이 나빠서 다 먹지도 않고 그냥 나왔다.

더 기분좋게 말하고 웃으면서 대할 수 있을텐데 굳이 다른 사람들까지 기분이 나쁘게 만들어야 할까.



4시 반쯤 드디어 부천행 버스를 탔다. 노을질 때 시외버스를 타니 더 여행하고 싶은 마음이 들었다. 다른 도시행 버스 타고 싶었다. 여행을 다닐 때면 대체로 해질 녘에 새로운 장소로 향하는 버스를 탔던 것 같다. 그래서인지 일몰 즈음의 버스는 나를 새로운 곳으로 데려갈 것 같다.

버스에서 한참 자다 깨서 창밖을 봤을 땐 산능성이 붉게 물들고 있었다.


그렇게 하루종일 걷고 걷고 또 걷고 기다리고 기다리고 추운 날이었다. 그래도 어떻게든 여행을 연장시키고 싶어서 부천 터미널에서 집까지 30분 여를 또 걸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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