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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민교 Dec 05. 2018

어디로라도 무사히

현덕사 템플스테이 (2) | 2018. 1. 2. 화요일


아침 먹으면서 현종스님을 처음 뵈었다. 인사도 드리고 후식으로 스님께서 직접 내려주신 드립커피도 한 잔 받아마셨다. 생각지도 못한 커피를 마실 수 있어서 심봤다 싶은 심정이었다. 절과 드립커피. 어딘가 이질적이지만 뭐든 좋았다. 사발커피를 한 사발 들이켜고 나니 속이 쓰려왔지만...




양치하고서 절 주변을 어슬렁거리며 돌아다니고 새소리도 듣고 나무도 살펴보고 강아지하고 인사도 하면서 노닥거리다가 스님과 등산을 다녀왔다.

포행이라고 하셔서 근처로 산책가는 줄 알았는데, 소금강으로 간다고 하셔서 강가로 가는 줄 알았는데, 小금강산이었다.

산이 높거나 험하진 않아서 갈만했으니 다행이다.



몇 주 전부터 상태가 온전치 못한 나의 핸드폰은 역시나 등산 5분만에 전원이 나갔다. 필름카메라를 챙겨간 덕에 다행히 풍경을 담을 수 있었다.

핸드폰 하나 없을 뿐인데 사진 찍는 것도 신중해지고, 시간도 알 수 없고, 혹시나 응급상황이 생길지라도 아무것도 할 수 없었다.







협곡 사이로 면서 마주치는 풍광은 이국적이었다. 이국적인 동시에 동양화 속에 들어와 있는 것 같았다.


계곡은 얼어있었다. 스님은 멀쩡한 길을 두고 굳이 얼음으로 가고싶다고 하셔서 나까지 언 계곡 위로 걸었다.


시작이 있으면 끝이 있고 모두가 언젠가는 죽음에 이르는 것이라며 나의 예정된 죽음에 매우 초연하고 여한이 없는 듯 했으나,

'지금 핸드폰 배터리도 없는데 물에 빠지면 이 겨울날 외진 산에서 생을 마감하겠구나...'

하는 생각을 가장 처음 한 나를 보며 죽음에 있어 1도, 0.1도 초연하지 않음을 보았고.





겨울 계곡과 필름카메라가 익숙지 않아 초점이 날아간 스님 사진






다행히 얼음은 깨지거나 녹지 않았고 나는 살아남아 이렇게 평화롭다.


계곡 바위에 앉아 명상하는 설정샷도 찍고, 내려오는 길엔 금강사라는 절에 들러 차도 한 잔 얻어마셨다.


절로 돌아와 한시간쯤 쉬다보니 어느덧 점심 공양 시간.

하루를 이렇게나 알차게 쓸 수 있다는 것이 놀랍다. 산까지 올라갔다 내려왔는데도 아직 오전이라는 것이.

매일 이렇게 살고 싶다. 시계 없이 해 뜰 때 일어나서 밥먹고 동물과 식물과 놀다가 자연을 걷다가.




밥먹고 들어와 조금 잠들었는데 스님이 차마시러 오라고 전화하셔서 차 마시러 갔다.

처음보는 언니도 있었다. 템플스테이를 시작으로 스님과 연이 되어 자주 뵙는다고 했다.


스님은 거칠고 쿨한 말투를 갖고 계시는데(게다가 경상도 사투리를 써서 더 세게 들린다) 굉장히 열려있는 분이라는 걸 짐작할 수 있었다. 여행도 좋아해서 많이 다녔다고 하셨다.


언젠가 글을 써서 책을 만들고 싶다고 말씀드렸더니 현덕사 이야기 꼭 쓰라고 하셨다. 스님이랑 소금강 포행도 다녀오고 너무 좋았다고, 그런 내용으로다가. (그런데 다녀온 지 1년이나 지나서 쓰네요...)




대왕 홍시도 챙겨주셨다. 방에 가서 후루룩찹찹 흘리며 먹었다. 책 좀 보다가 쉬다가 홍시도 먹다가.

그러다보니 저녁 공양 시간. 밥시간이 빨리빨리 돌아와서 하루 일정이 빡빡하다.


가져온 책들 3권이나 되는데 1권도 제대로 못끝냈고

노곤노곤하니 또 머리만 대면 잠에 스르륵.

 

더 길게 쉬다가 가면 좋겠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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