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브런치북 팔남매 08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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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푸른 모래시계 Oct 21. 2023

68년생 여섯째, 기남

엄마는 팔 남매 모두를 집에서 낳았다. 동네 아줌마의 도움을 받을 때도 있었고 여의치 않을 때는 아버지와 둘이서만 낳을 때도 있었다. 


 여섯째 딸 기남이 태어났을 때 아버지가 출산을 도왔다. 여섯째도 딸이 나오자 엄마는 아버지를 볼 면목이 없었다. 아버지도 실망이 이만저만 아니었다. 엄마는 아기한테 젖을 물리면서도 아기에게 눈길도 주지 않았다. 하룻밤이 지나고 아침이 되자 아버지는 미역국을 끓여 놓고 출근을 했다. 셋째 현숙에게 엄마 미역국을 잘 챙겨주라는 당부를 하고 자전거를 타고 출근을 하는 아버지가 자꾸 뒤를 돌아보았다. 


 아버지는 아기에게 눈길조차 주지 않는 엄마가 너무 낯설었다. 엄마는 아기가 태어나면 함박웃음을 지으며 젖을 물리고 매일 아기를 목욕시키며 아기와 눈을 맞추었다. 아기가 아무리 칭얼대도 행복한 얼굴이었다. 아버지는 엄마의 서늘한 기운이 걱정되었다. 


 아버지가 출근한 후에 엄마는 여섯째 아기를 강보에 싸서 부엌으로 갔다. 이번에는 정말 아들일 줄 알았는데, 발길질이 힘차고 입덧도 남달라 정말 아들일 줄 알았는데. 엄마의 너무 큰 기대는 실망을 넘어 절망을 불러왔다. 엄마는 여섯째 아기가 보기 싫었다. 엄마 눈에서 눈물이 쉬지 않고 흘렀다. 부엌으로 간 엄마는 강보에 싼 아기를 아궁이 입구에 넣었다. 그때 부엌문이 열리며 아버지가 뛰어들어왔다. 너무나 께름칙한 기분을 떨쳐내지 못한 아버지가 바로 집으로 되돌아왔던 것이다. 아기를 헐레벌떡 품에 안은 아버지는 언제 아들 낳아 달랬냐, 여섯째 딸이면 어떠냐며 엄마와 같이 울었다. 


 사흘 동안 결근을 하고 아버지는 여섯째 아기 옆을 떠나지 않았다. 엄마가 자기가 정신줄을 놓았었다며 이제 제정신으로 돌아왔으니 출근을 하라고 해도 아기 곁을 엄마에게 주지 않았다. 젖 먹일 때만 엄마에게 아기를 건넸다. 엄마는 배시시 웃음이 났다. 


 이런 연유로 여섯째 기남은 팔 남매 중에 가장 아버지의 사랑을 많이 받았다. 아버지는 어딘가에서 주워 들었다면서 딸에게 남자 이름을 지어주면 남동생을 본다더라며 여섯째 아기 이름을 기남이라고 지었다. 이름 덕분인지 기남 아래로 남동생이 태어났다. 


 성그렛골로 돌아오며 셋째, 넷째, 다섯째는 전학을 했고 여섯째 기남만 1학년으로 새로 입학했다.

 언니들이 아버지와 엄마에게는 학교를 간다고 거짓말을 하고 다리 건너 마을로 소풍 아닌 소풍 가던 날 기남도 언니들을 따라가고 싶었다. 아직 어린 기남이 가기에 너무 먼 거리라 언니들은 기남만 학교에 데려다주었다. 기남은 교실로 들어가지 않고 집으로 다시 돌아왔다. 엄마가 밭을 매다가 점심을 준비하러 집에 오니 기남이 툇마루에 떡하니 앉아있었다. 깜짝 놀란 엄마가 자초지종을 물었다. 기남의 이야기를 들은 엄마는 화를 버럭 내며 기남의 머리를 쥐어박았다. 대체 뭐가 되려고 학교까지 가놓고 다시 돌아왔냐고 묻자 ‘언니들이 학교에 안 가면 나도 안 가야지’ 하는 기남의 혼잣말에 엄마는 빙그레 웃음이 났다.

 이런 줄은 새까맣게 모르고 신나게 친구들과 놀다 온 세 자매는 집에 오자마자 야단을 듣고 벌을 서야 했다. 이제 1학년인 동생에게 좋은 본 보인다며 아버지도 화를 냈다. 


 처음으로 1학년 학력고사를 치른 날 결석이 잦았던 기남이 전 과목 100점을 맞아오는 기염을 토하자 아버지와 엄마는 이게 웬일이냐며 기남에게 부푼 기대를 품었다. 초등학교 6년 동안 기남은 공부 참 잘하는 아이였다. 도시의 중학교에 입학하며 참고서 하나도 살 수 없고 학원은 언감생심 꿈도 못 꾸고 오로지 혼자 공부하던 기남은 중상 정도의 수준을 성실함 하나로 버텼다. 

     

 아버지가 갑자기 돌아가신 뒤 홀로 농사를 짓던 엄마가 농사를 접었다, 소도시 기사 식당을 다니는 엄마를 대신해 기남은 두 동생의 엄마 아닌 엄마 노릇을 해야 했다. 도시락부터 빨래까지 도맡아 해야 하는 기남은 가을걷이가 끝나기 무섭게 길어지는 밤을 싫어했다. 버스에서 내려 30분을 걸어 성그렛골이 보이는 언덕길에 도착하면 산자락 사이에 자리한 마을에서 유일하게 불이 꺼진 집. 아버지가 살아 있을 적엔  봄이면 아름드리 살구나무에 핀 꽃으로 온 마을을 밝히던 집이 빛을 잃었다. 


 언니들이 사는 대도시로 모두 이사를 떠나고 기남 혼자 남아 고등학교를 마저 마쳐야 했다. 엄마는 학교 옆에, 부엌도 없는 좁은 방 한 칸만 달랑 얻어 기남을 남겨두고 떠나며 눈시울을 붉혔다. 


 학력고사 치는 날 엄마는 식당을 하루 쉬고 새벽같이 기남에게 왔다. 주인집 주방을 빌려 소고깃국을 끓이고 가져온 반찬과 함께 보온 도시락에 담아 주었다. 동생들 공부를 시켜야 하는 엄마에게 기남의 대학 공부까지는 무리였다. 엄마는 장학생이 안되면 대학을 못 보낸다고 귀에 딱지가 앉을 만큼 이야기를 했지만 시험 당일 내내 마음이 저리다. 


 가고 싶은 대학 학과에 원서를 내고 합격했지만 장학생으로 선발되지 못한 기남은 대학생이 되고픈 마음을 접었다. 두문불출하던 기남은 반도체 회사에 같이 다니자는 친구의 전화를 받고 시험을 쳤다. 합격 통보를 받은 기남은 다시 다른 도시로 홀로 떠났다. 반도체 회사에서 랩 근무를 배정받은 기남은 열심히 근무했다. 그러나 이곳도 자기 자리가 아닌 곳으로  느껴졌다. 랩에는 엔지니어와 그들의 지시를 받아 반도체 공정을 시행하는 근무자들이 함께 있었다. 내로라하는 대학을 나온 엔지니어와 고등학교, 혹은 직업학교를 졸업한 직원들 간에 보이지 않지만 높은 장벽을 기남은 느낄 수 있었다. 입사한 후 처음으로 맞이한 5월에 임금 인상을 위한 파업과 시위 때는 울컥하는 마음에 매일 눈물 바람이었다. 3교대 근무도 버거웠다. 


 어느 날, 랩에 가스가 유출되었다는 사이렌이 울렸다. 근무 중인 직원들이 모두 랩 밖으로 정신없이 뛰어 나갔다. 제일 안쪽 랩에 있던 기남도 죽을힘을 다해 뛰었다. 사이렌이 잘못 울린 것으로 밝혀졌지만 기남은 죽을 수도 있겠다는 느낌을 지울 수가 없었다. 기남은 독서실에서 3개월 학력고사 준비를 했다. 대학 합격 후 기남은 반도체 회사를 2년 만에 퇴직했다. 


 대학 4년 8학기 전부를 전액 장학생으로 졸업한 기남은 졸업과 동시에 섬에 있는 고등학교 선생님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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