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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민수샘의 장이불재 May 02. 2024

정여울의 <공부할 권리>, 학교 시험이 허망한 이들에게

  2024년 1차 지필 고사가 끝난 다음 날, 정여울 님의 <공부할 권리>를 읽기 시작했다. 학교 도서관에서 독서 동아리 아이들이 저마다 자유시간을 즐기는 것을 구경하다가 우연히 집어 든 책이다. 오전에는 교실에서 시험 문제에 대한 아이들의 질문을 받점수를 확인했는데, 그런 과정이 주는 스트레스 때문에 뭔가 다른 을 하고 싶었나 보다. 아래는 출판사의 책 소개 문구이다.


 『공부할 권리』는 마르크스에서 지그문트 바우만까지, 『리어 왕』에서 『이방인』까지 저자가 종횡무진 횡단했던 책 읽기를 삶의 지도에 그려 넣고 있다. 이 책은 인생의 갈림길마다 때로는 처절하게 인생의 의미를 찾고, 때로는 아프게 삶의 가치를 고민하면서 그 해답을 책에서 찾아온 작가의 혜안을 집약한 걸작이다.



  시험 기간이 끝나자마자 기껏 택한 것이 다시 공부에 관한 책이라니… '이래서 학교 선생으로 살고 있구나' 하는 탄식이 들면서도, <공부할 권리>가 술술 읽히니 머릿속에 바람이 통하는 것 같고, 피부에 닿은 공기도 상쾌해졌다. 도서관의 서늘한 기운, 책 냄새, 적당한 소음도 한몫한 것 같다.


  고3 수업을 하며 수능 공부를 시켜야 하는 의무감에 내가 먼저 지쳐갈 때쯤, 이것이 정답이라고 단언하는 문제를 출제하고 시험이 끝나고 나서야,  <공부할 권리>를 서가에서 뽑아낸 내 손이 왠지 가냘파 보였다. '품위 있는 삶을 위한 인문학 선언'이라는 이 책의 부제를 붙들고, 이 봄날을 즐기지 못하고 나는 그렇게 소쩍새처럼 울고 싶었나 보다.


  시험 문제 출제의 부담감이 점점 심해지는 상황이라, '스트레스와 트라우마'와 관련된 내용이 먼저 와닿았다. 작가가 <천사들은 우리 옆집에 산다>(정혜신, 진은영)를 읽고 적은 부분을 조금 인용해 본다.


  흔히 아픈 만큼 성숙해진다고 할 때 그 아픔이 스트레스라고, 하지만 트라우마는 아픈 만큼 성숙해지는 것이 아니라 아픈 만큼 파괴되는 것이라고. 스트레스가 고부간의 갈등이나 시험 직전의 긴장감처럼 삶의 부분적인 문제라면, 트라우마는 다시는 그 이전의 삶으로 돌아갈 수 없는 총체적인 재앙이지요.



 1등급이 반드시 나와야 하는 구조의 늪에 빠진 인문계 고등학교의 모든 교사와 학생은 지필고사 때문에 크고 작은 스트레스에 시달린다. 출제 과정에서 큰 오류를 범한 교사나 시험을 보며 큰 실수를 한 학생은 '그 시험 전으로 다시는 돌아갈 수 없는' 트라우마를 겪는다. 교사와 학생·학부모 간의 갈등으로 마음에 큰 상처가 생기기도 한다.


  정여울 작가는 세월호 사건을 둘러싼 갈등에 대해 언급하면서 '사건에 직접적으로 책임이 있는 사람들은 눈도 꿈쩍 안 하는데, 사건 때문에 직간접적으로 커다란 상처를 입은 사람들이 서로에게 상처를 준다면 이 싸움은 돌이킬 수 없는 파국을 초래하게 될 것'이라고 경고했다.


 적당한 스트레스는 개인과 사회의 발전을 위해 필요하지만, 지필고사 때문에 트라우마를 겪는 이들이 늘어나고 있는 현재의 평가 시스템에 대해서 근본적인 질문이 요구되는 때이다. 우리가 학교 안에서 내신 등급과 생기부 기록을 테이블에 올려놓고 치열하게 다투고 있을 때, 누군가는 잘 보이지 않는 곳에서 유유자적하게 지내면서 '공부 스트레스? 그게 뭐니?' 하며 더 높은 곳으로 올라가고 있다는 생각도 든다.


  내가 <공부할 권리>의 차례에서 '4부 마음의 확장 - 치유의 공동체'에 가장 먼저 끌렸듯이, 다른 분들도 이 책을 열고 '인생의 품격, 가치의 창조'와 같은 제목 아래의 글을 읽고, 주변 동료나 학생들과 대화를 나누면서 학교 시험이 주는 트라우마를 없앨 수 있는 '인문학적 길'을 함께 상상해 보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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