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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민수샘의 장이불재 Jun 12. 2024

잃어버린 교사의 존재감을 찾습니다

  '존재감'의 사전적 정의를 찾아보았다. '사람, 사물, 느낌 따위가 실제로 있다고 생각하는 느낌'이란다. 작년에 교사 연구년을 하며 에너지가 풀충전되었는지, 올해 고3 수업을 시작하고 3월 말까지는 자신감이 넘쳤고 자존감도 흔들리지 않았다.  

  그런데 활동에 참여하는 숫자가 점점 줄어들고, 어떤 학급은 모둠으로 앉기가 힘들게 자리 배치를 해놓아서 점점 의욕이 떨어졌다. '여러 학급이 모여 있는 이동반이라서 그래,  예체능과 정시 준비를 하는 학생이 많아서 그래…' 하면서 5월이 되니까 온라인 강사와 비슷해져 버린 나를 발견했다.

  설명할 내용이 많은 비문학이지만, 모둠별 협력 학습과 토의로 훌륭한 독서 수업을 만들고 있는 국어샘들이 많다는 것을 알기 때문에 자존감이 내려갔고 자신감도 영향을 받아서인지 문제 풀이를 하다 말이 꼬이는 경우도 생겼다.


  다시 3월로 돌아가서 더 용기를 내면 좋으련만, 그럴 수 없기에  '존재감'부터 확인하기로 했다. 그 다음에 천천히 자신감과 자존감을 회복하면 되지 않을까? 다행히  6월이 되고 소설로 수업하기 때문에, 교실에서 만나는 아이들에게 '교사로서의 존재감'을 되찾을 방법을 고민했다.

  가장 좋은 방법은 '질문을 던지는 사람'이 되는 것이라고 생각했다. 교실 뒤쪽에 아 각자 다른 일을 열심히 하고 있는 아이들도, 가끔은 고개를 들고 귀를 열어 질문에 반응할 기회를 주는 것이다.


  첫 번째 작품이 염상섭의 <만세전>이라서, 주인공의 냉소적 태도를 배운 후에 '나에게 냉소적 태도가 있는가?'로  시작하는 질문을 수업 단톡방에 올렸다. 아이들이 올린 글 몇 가지를 공유해 본다.






  두 번째 작품인 채만식의 <명일>은 발단과 전개 부분만 수록되어 있어서, 작가의 주제 의식을 중심으로 뒷부분 이야기를 추리해 보는 활동을 했다. 처음 수업한 학급에서는 자유롭게 상상해서 단톡방에 올리라고 했는데, 아이들이 냉소적인 건 아닌데 먼저 올리기 부담스러운지 시간이 한참 걸렸다.

  그래서 다음 학급에서는 4가지 예문을 주고 선택하게 했는데, 주변 친구들과 의견을 주고받으며 가장 그럴듯한 결말을 추리해 보는 과정을 즐기는 모습이었다. 선택 활동은 멘티미터의 '100% Point' 타입 만들기를 활용해서 만든 후, 링크를 단톡방에 올렸다.





  아이들이 각자 100점 중에서 10점씩 나눠서, 진짜 결말일 것 같은 내용에 점수를 주는 방식으로 선택했다. 오랜만에 해보는 활동이라서 나도 재미있었고, "그냥 하나에 100점 다 올인!"을 외치는 학생도 있어서 함께 웃었다.






 1, 2학년 수업이었다면 모둠에서 먼저 서로의 냉소적인 모습에 관해 이야기를 나누고, '자신의 냉소적인 면'을 깊이 있게 성찰하는 글을 적어 발표하게 했을 것이다. 그리고 소설의 결말을 추리하는 활동도 모둠 내에서 의견을 모아 더 자세하게 뒷이야기를 적고, 그 이유도 발표했을 것이다.


  하지만 어쩌겠는가? 초중고 12년을 바쁘게 달려오느라 지친 아이들에게 실질적인 마지막 학기가 될 수 있는 고3 1학기에 '나의 생경한 생각'을 적어보게 하고, 당장 '시험에 나오지 않는 이야기'도 만들어보게 하는 것이 최선인 것 같다. '너희들 하나하나가 그렇듯 세상에서 오직 한 명뿐이 나라는 국어 선생님이 여기 서서 질문을 던지고 귀를 기울이고 있다'는 것을 보여주며, 늦가을 산에서 낙엽 뒤에 숨은 알밤을 줍듯 나의 작은 존재감을 조금씩 모으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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