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흘째 새벽 4시쯤 눈이 떠진다. 핸드폰으로 켜고 심호흡한다. 누군가 피를 흘리지 않았기를, 어디서 총성이 울리지 않았기를 기도하고 속보를 확인한다. 정치 과몰입을 경계하려고 노력했는데, 계엄 과몰입은 피할 수 없다.
새벽의 정적처럼 무겁고, 멀리서 들리는 자동차 소리처럼 날카로운 마음을 달래준 것은 한강 작가였다. 6일 새벽에는 노벨 문학상 수상 기념 기자 회견을, 오늘은 기념 강연을 보고 들을 수 있어서 다행이었다.
시대의 어둠은 짙은 그림자를 드리우고, 그 그림자 속에서 촛불을 밝히는 문학이 탄생한다. 조국이 다시 비상계엄으로 신음하고 있을 때, 한강 작가가 권력의 폭력에 관해 이야기하는 모습을 볼 수 있다니. '이것은 한강의 운명이다. 한강의 입을 빌려 제주와 광주에서, 거리와 대학과 공장에서 독재의 총칼에 숨진 영혼이 말하고 있다'라는 생각이 들었다.
8살 한강은 스스로에게 묻고 답했다. '사랑이란 어디 있는가? 팔딱팔딱 뛰는 나의 가슴속에 있지. 사랑이란 무얼까? 우리의 가슴과 가슴 사이를 연결해 주는 금실이지.' 12살 한강 작가는 아버지 숨겨둔 5.18 사진첩을 보고 난 후 다시 질문했다. '인간은 인간에게 이런 행동은 하는가?' 계엄군의 총탄에 찢긴 시신과 헌혈을 하기 위해 길게 줄은 선 시민들의 사진을 보면 같은 질문을 던졌다.
20대에 소설가가 된 한강은 '우리는 얼마나 깊게 폭력을 거부할 수 있는가?, 우리는 살아남아야 하지 않는가? 생명으로 진실을 증거해야 하는 것 아닌가?'와 같은 질문을 계속 던졌다. 그리고 치열한 글쓰기로, 몇 년이 걸리는 장편 소설로 그 답을 찾아갔다. <채식주의자>, <바람이 분다 가라>와 같은 작품이 그렇게 탄생했다.
작가와 독자 모두 하나의 답을 찾으면 다시 새로운 질문을 던졌다. 한강은 소설 <희랍어시간>에서 희망을 말하고 싶었다. 인간의 외로움과 상처는 어떻게 치유되는지를 보여주고 싶었다. '인간의 가장 연한 부위를 들여다보는 것. 그 부인할 수 없는 온기를 어루만지는 것. 그것으로 우리는 마침내 살아갈 수 있는 것이 아닌가? 이 덧없고 폭력적인 세계의 가운데에서...' 한국어로, 하나밖에 없는 모국어로 한강의 목소리가 스웨덴 한림원에 잔잔히 퍼져나갈 때 눈물이 날 것 같았다.
40대가 된 한강은 <소년이 온다>를 썼고, 그 작품이 있었기에 노벨상을 받을 수 있었다. 꼬마 한강이 던졌던 사랑에 관한 질문, 젊은 한강이 던졌던 폭력과 생명에 관한 질문이 하나로 모였다. ' 우리는 인간을 사랑하고자 하기에, 그 사랑이 부서질 때 고통을 느끼는 것일까? 사랑에서 고통이 생겨나고, 어떤 고통은 사랑의 증거인 것일까?'
그것은 질문인 동시에 한강이 찾은 답이었다. 질문을 던지고, 질문을 바꾸고 다시 다른 질문을 상상하게 하는 것이 문학의 역할이자 힘이라는 것을 한강 작가의 노벨문학상 수상 기념 강연을 통해 확인했다. 강연이라기보다 낭독회 같은 자리에서 한강이 전하는 단어 하나하나를 음미하는 청중의 모습도 감동이었다.
우리는 지금 광장에서 세상을 향해 질문을 던진다. '권력자의 잔인함, 세계의 폭력성, 뻔뻔한 거짓말, 탐욕의 그림자는 우리보다 강한가? 왜 역사의 비극은 되풀이되는가?' 한강이 그랬듯이, 그 답은 이미 질문 속에 들어있다. 두 발로 서있는 광장에서, 그리고 서로의 진심이 오가는 온라인 광장에서 좌절하지 않고 계속 질문을 던지는 것이 중요하다. 질문 속에 답을 찾고, 그 답을 행동으로 옮기면서 새로운 질문을 던지고 다시 답을 찾는 것이다. 물론 이 과정은 고통스럽다.
그렇기 때문에 한강 작가의 말처럼, 질문하는 사람들이 서로의 가장 약한 부분을 보여주고 온기를 나누어야 한다. 서로가 서로의 희망의 증거가 되어야 한다. 한강 작가는 5.18 광주의 마지막 항쟁의 밤에 한 젊은 야학 교사가 쓴 일기를 소개했다. 일기를 쓰고 난 몇 시간 뒤, 그 역시 계엄군에 의해 살해되었다.
“하느님, 왜 저에게는 양심이 있어 이렇게 저를 찌르고 아프게 하는 것입니까? 저는 살고 싶습니다.”
나는 한강 작가의 장편소설을 읽고 나서 영혼의 힘을 믿게 되었다. '과거가 현재를 도울 수 있다. 죽은 자가 산 자를 구할 수 있다'라는 한강 작가의 말을 저 끝에 희망이 매달려 있는 금실처럼 붙잡고 싶다. 평일에는 맡은 일을 열심히 하고, 주말에는 광장으로 달려가고, 늦은 밤 돌아와서 우리의 일기장에 써 내려가자. '이 덧없고 폭력적인 세계에서 나의 양심은, 우리의 고통은 사랑의 증거인가요?'라고.
- 강연 전문은 아래 기사에서 읽을 수 있습니다. 늘 그렇듯이 끝까지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