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년손님을 둔 게 죄라면 죄겠지.
명절이 또 한 번 지나갔다. 당연한 듯 시댁으로 먼저 향하는 길에 엄마와 통화를 했다. 엄마는 내가 시집간 뒤로 명절이 더 바빠진 듯했다.
"응~ 엄마는 얼른 시골 갔다가 상 차리고 밥 먹고 성묘 갔다 온 다음에 얼른 올라와야지. 사위 온다는데 그래도 집에 먹을게 좀 있어야지 않겠어?"
"아냐. 엄마 그냥 아무것도 하지 마~"
"에이.. 어떻게 그래~"
사위 사랑 장모라는 거 익히 들어와서 충분히 알고 있다고 생각했는데, 엄마는 내가 생각하는 것 이상으로 꽤 열심히 노력하며 사위를 챙기는 것 같았다.
시댁에서 명절 예배와 성묘를 모두 마치고 (차도 막히는데 얼른 가서 엄마 일 못하게 해야 하니까) 서둘러 친정으로 떠나려는데, 시어머니는 아쉬운 눈치였다.
"가. 얼른. 여서 밥 먹고 더 있다가 갈 거 아니면은 그냥 가. 얼른."
눈도 안 마주치고 툭툭 가라고 외치시는 어머님. 아들 얼굴 잠시밖에 못 보고 보내려니 아쉬우신 마음은 이해하지만, 나도 그렇게 보고 싶어 하는 엄마가 있기에 얼른 돌아서 나왔다.
극심한 교통 체증을 뚫고 도착한 친정집. 도착하자마자 내가 하는 말은 항상 똑같다.
"아, 엄마~ 하지 말라니까는~"
집안은 전 부친 냄새로 가득하고 식탁엔 각종 반찬들이 준비되어있고 주방엔 엄마 혼자 덩그러니. 하지 말라고 말렸을 딸들이 시댁에 가 있는 사이, 엄마는 혼자서 명절 음식들을 준비하고 있었다. 친정 엄마는 무슨 죄가 있어서 딸 시집보내고 난 뒤에 일이 더 많아지는 걸까. 아들이 아직 장가갈 나이가 아니라서 며느리가 없는 게 죄인 걸까. 아니. 명절에 찾아오시는 백년손님 사위를 둔 게 죄라면 죄겠지.
"어머님~ 제가 도와드릴게요~"
"아냐, 괜찮아. 앉아있어 앉아있어~"
사위가 뭐 도와주려고 하면 하지 말라고 말리는 엄마. 사위 온다고 하면 좋아한다는 맥주 잔뜩 사다 놓는 엄마. 음식 잔뜩 해놓는 엄마.. 엄마 딸은 시댁에서 그런 대접받지 않아요. 엄마도 잘 알고 있을 텐데, 이 광경을 보면 나만 억울한가?
명절에 한 번은 친정 집에 먼저 와서 엄마랑 같이 음식 준비하면 얼마나 좋아. 한 번은 며느리가 가서 일하는 명절, 한 번은 사위가 가서 일하는 명절로. 친정집 먼저 가는 게 무슨 밉보이는 거라도 되는 마냥.. 명절에 친정집 먼저 간다고 하면 친정 엄마 아빠의 반응은 이렇다.
눈빛은 초롱초롱 울 딸내미 이쁘다며 바라보면서 그 와중에 동공은 지진 일으키며 오만가지 생각이 왔다 갔다 하고, 울 딸내미랑 다시 한번 명절 당일을 같이 보낼 수 있을까 잠시 기대했다가, 결론은 울 이쁜 딸내미 시댁에서 미움 받을까봐 "시댁 먼저 가야지~"라고 대답하는 친정 부모님.
역시 걱정은 자식 보낸 사람들만의 몫이다.
*사진출처 : unsplash