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인들중에 웬만한 신경증 한 가지 앓지 않는 사람은 아마 없을 거예요. 불면증, 우울증, 조울증, 결벽증, 편집증, 대인기피증, 공황장애, 쇼핑중독, 게임중독, 스마트폰중독까지.
사실 병이라고 이름 붙이자면 한도 끝도 없는 것이 정신질환입니다. 초기증상은 가벼운 노이로제에서 시작하지만, 견뎌내지 못한 신경이 히스테리를 일으키고 이 히스테리가 극에 달하면 결국 정신이 조각조각 분열되는 상태가 되는 것이지요. 무섭네요. 육신이 갈라져도 다시 기워 맞추기 힘들거늘, 정신이 조각이 나면 어떻게 제자리로 맞춰놓을 수 있을까요?
아이를 낳기 전에도 뉴스에 보도되는 영아살해, 친부모가 아이를 폭행, 이런 뉴스를 보면 정말 끔찍해서 몸서리가 쳐졌지요. 당연히 광화문 사거리에서 공개사형감이라고 생각했어요. 그런데 저도 결혼을 하고 엄마가 되었습니다. 엄마라는 인종은 엄마들끼리만 소통을 해요. 애 없는 사람은 말이 안통해서, 라고 하지만 사실은 사회생활하고 멋내고 맛있는거 먹으러 다니는 친구들은 애엄마를 안 끼워줘요. 왜냐하면 ‘애’가 있잖아요!
일반인들한테 애엄마는 ‘애’가 딸린 거추장스러운 기피대상이기 때문에, 결혼식이나 부모님 환갑처럼 뭐 받을 때 말고는 좀처럼 연락을 하지 않아요. 그래서 애엄마들은 자신들만의 세상으로 모이게 된답니다.
제가 그 엄마들의 세상에서 제일 먼저 알게 된 것이 호환 마마보다 더 무서운 ‘육아우울증’이었어요. ‘육아우울증’이 무서운 가장 큰 이유는 그 원인을 제공하는 대상이 24시간 내 옆에 있다는 것입니다. 내 아이가, 내 생명과도 바꿀 수 있는 이 작은 아이가 날 미치게 만들어서 지금 당장이라도 뛰쳐나가고 싶은 그 기분. 혼자 있고 싶다, 혼자 있고 싶다를 되뇌다가 아파트 베란다로 투신하는 엄마도 있지요. 아이를 때리다니, 세상에 버리다니, 저렇게 작디작은 아가를. 그것이 얼마나 끔찍한 죄라는 것을 잘 알면서 마음 한편 얼핏 이해가 간다고 하면, 아직 부모가 아닌 분들은 믿으실까요?
사람들은 자신이 직접 처해보지 않은 상황에 대해서 감정적으로 매우 인색합니다. 논리적으로 맞아떨어지지 않는 것은 비약이고, 그 대상에게 큰 문제가 있다고 단호하게 결론을 내려주지요. 그냥 들어주기만 하면 될 텐데, 네가 문제야. 너만 그래. 넌 왜 남들처럼 대처하지 못해! 내가 아는 누구는 말이야..라고 비교까지 해 가면서 자신이 겪어보지 못한 일은 세상에 없는 과장된 이야기라고 말합니다.
정신 차려라, 너만 힘드냐? 너만 애 키우냐? 너만 아프냐? 너만 엄마 없냐? 너만 못생겼냐?
이런 말은 절대로 해서는 안 됩니다. 모르는 사람한테도 하면 안 될 말을 친한 사람이라면 더더욱 해서는 안 됩니다. 암도 병이고 감기도 병인 것처럼 우울증이나 심한 신경증도 병입니다. 아프면 죽을 끓여주고 다독여야지, 고춧가루 탄 소주를 코에 들이 붓는다던가 안 그래도 열이 펄펄 끓는 사람에게 이불을 수십 채 갖다 덮어서 깔려죽게 해서는 안 되는 것 처럼요.
우리 어릴적에는 그래도 집집마다 형제도 많고 동네 친구들과 어울려 노느라 혼자 외톨이로 지내는 일은 잘 없었습니다. 하지만 이제는 무엇이든 혼자 하는 나홀로가 편한 시대가 되어버렸습니다. 외동으로 태어나서 평생 혼자에 익숙해진 아이들은 물론이고, 어른들도 무수한 스마트기기들 속에 혼자 틀어박히는 일이 많아졌지요. 혼자 밥 먹고 혼자 버스타고 혼자 영화를 보고 혼자 잠이 드는 사람들은 모두 외로움을 하나 가득 안고 있습니다. 내 품 하나로 버거운 그 외로움들은 때때로 환상으로 보이기도하고 소리처럼 들리기도 하고 내게 말을 걸기도 합니다.
내가 미친거야? 아니오, 당신은 미친것이 아니라 너무 외로운 것이랍니다.
의지하고 싶은 사람에게 말을 거세요. 마주치는 사람에게 웃으며 인사를 하세요. 가난한 아이들에게 책을 몽땅 가져다주세요. 어차피 읽지도 안잖아요?
학교에서는 항상 높은 곳을 보라고 가르치지만 세상으로 나와서는 낮은 곳을 봐주세요. 힘든 사람들, 도움이 필요한 사람들이 세상에는 너무도 많답니다. 아기를 낳은 친구에게는 자주 가서 대신 아기도 봐주고, 아픈 친구는 정성스레 간호를 해주세요. 엄마가 안 계신 친구는 우리집에서 주말에 저녁을 먹자고 초대하세요. 못생긴 친구는 성형외과를 데려가세요. 희망도 웃음처럼 전염이 된답니다. 마음이 아픈 사람은 마음이 텅 빈 사람이에요. 내 마음을 조금 덜어서 주는 것은, 돈을 덜어주는 것보다 덜 힘들거에요.
우리들 어머니는 끝없는 희생이 아니라 매시간, 매 분, 매 초, 자신과의 싸움에서 이기신 분입니다. 여러분도 이기세요. 최고는 아니더라도 최선을 다 하세요. 당신은 불행한 것이 아니라 ‘엄마’라는 특별한 인생을 살고 있는 거예요. 그리고 잊지 마세요. 당신이 아기를 지켜주는 동안 아기 역시 엄마를 지켜주고 있다는 것을요. 인생은 아름답습니다. 당신은 행복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