Video Killed Radio Star
1981년 미국의 MTV가 개국하면서 처음으로 VJ(Video Jockey)라는 개념이 생겨났다. DJ(Disc Jockey)가 음반을 틀어주듯이 VJ는 뮤직비디오를 틀어주는 사람이라는 의미였다. 우리나라에서는 1987년 ‘쇼 비디오 자키’라는 KBS의 코미디 프로그램에서 처음으로 VJ 방식을 사용했다.
미국식 코미디 클럽을 표방했던 ‘쇼 비디오 자키’는 프로그램 마지막에 DJ 고 김광한 선생님이 외국 뮤직비디오를 한 편 틀어주었다. 비디오 자키라는 용어 자체가 생소했던 만큼 우리나라 청년들은 평소 경험하기 힘들었던 뮤직 비디오를 보기 위해 토요일 저녁에는 모두 집안에 모여앉아 목을 빼고 티브이를 시청했다.
MTV가 방송한 첫 번째 뮤직비디오는 버글스(Buggles)의 ‘Video Killed the Radio Star’였다. 마치 대중음악이 가야 할 미래의 운명을 예언이라도 한 것처럼, MTV는 음악을 듣는 시대에서 보는 시대로 바꿔놓았다.
하지만 초기 MTV는 흑인뮤지션의 뮤직비디오는 거의 방영하지 않았다. 미국인들은 음악을 듣는 방식을 혁신적으로 바꿔놓았지만 그 혁신 속에는 여전히 인종차별이 존재했다. 그 차별의 벽을 허문 것은 마이클 잭슨이었다.
마이클 잭슨은 MTV가 자신의 뮤직 비디오를 방영하게 만들기 위해 각고의 노력을 했고, 1983년 마침내 방송된 ‘Billie Jean’ 뮤직비디오는 엄청난 인기를 끌면서 MTV가 Pop과 흑인 R & B 음악에 관심을 돌리는 데 큰 도움이 되었다. 그리고 이러한 변화는 이후 프린스(Prince)와 휘트니 휴스턴(Whitney Houston), 자넷 잭슨(Janet Jackson)과 같은 흑인 아티스트들의 음악이 꾸준히 방송될 수 있는 힘이 되었다.
음악성과 함께 비주얼을 중시하는 뮤직비디오가 점차 음악계에 없어서는 안 될 중요한 자리를 차지하면서 MTV의 영향력도 그만큼 막강해져 그 해에 제작된 뮤직비디오만으로 시상식을 하는 ‘MTV 뮤직 어워즈’가 개최되었다. 1984년 뉴욕 라디오시티홀에서 처음 열린 ‘제 1회 MTV Video Music Awards’의 수상자는 ‘You Might Think’의 ‘카스(The Cars)였다.
이 날의 퍼포먼스 공연으로 마돈나(Madonna)가 가터벨트 차림의 짧은 웨딩드레스를 입고 무대 위를 굴러다니며(she rolled around on the floor) ‘Like A Virgin’을 불렀는데, 경쟁자였던 신디 로퍼(Cyndi Lauper)는 이 모습을 ‘엑소시스트를 보는 것처럼 역겨웠다.’라고 표현했다. 신디 로퍼는 ‘Girls Just Want to Have Fun’으로 ‘Best Female Video’상을 수상했다.
뉴 웨이브 가수들의 두 번째 미국 침공(Second British Invasion)
MTV의 성장을 지켜보던 미국의 거대 음반시장은 지금까지 고수하던 듣는 음악에만 치중하지 않고 시각적인 분야를 개척해야 한다는 것을 깨달았다. 미국에서 가장 권위 있는 음악 시상식 그래미 어워즈는 MTV의 ‘Video Music Awards’에 대한 대안으로 ‘Grammy Award for Best Video, Short Form’ 부문을 신설했다.
1984년 최초로 시상한 베스트 비디오상은 영국에서 온 다섯 명의 비주얼 천재 듀란 듀란(Duran Duran)의 ‘Girls On Film’과 ‘Hungry Like The Wolf’에게 돌아갔다. 듀란 듀란이 1982년 발표한 두 번째 앨범 [Rio]는 멤버들의 출중한 외모와 함께 감각적인 연출이 돋보이는 뮤직비디오의 폭발적인 인기에 힘입어 빌보드 차트 상위권에 진입했다. 듀란 듀란의 성공은 비틀즈(Beatles) 이후 영국 뮤지션들의 두 번째 미국 침공(Second British Invasion)으로 불리며 팝시장에 ‘뉴 웨이브(New Wave)’의 물결을 주도하기 시작했다.
대중들은 쉽고 생동감을 줄 수 있는 음악, 신나게 춤추고 시각적으로도 즐거움을 만끽할 수 있는 음악을 원했다. 뉴 웨이브는 멜로디 라인과 리듬 비트를 부각시켜 경쾌하면서도, 신디사이저를 이용한 윤곽이 뚜렷한 사운드와 글램록을 연상시키는 독특한 패션 스타일로 영국과 미국에 이어 전 세계적으로 일대 센세이션을 불러 일으켰다.
듀란 듀란과 같은 시기에 활동을 시작한 컬쳐 클럽(Culture Club)과 웸(Wham!), 유리드믹스(Eurythmics)의 대성공도 미국시장에 영국음악의 전성기를 확산 시키는 것에 기폭제가 되었다.
빌리 아이돌(Billy Idol)의 ‘White Wedding’, 존 웨이트(John Waite)의 ‘Missing You’, 로버트 팔머(Robert Palmer)의 ‘Addicted to Love’가 연이어 히트를 기록했고, 여성 파워 보컬의 대명사 보니 타일러(Bonnie Tyler)의 ‘Total Eclipse Of The Heart’와 걸 그룹 ‘바나나라마(Bananarama)의 ‘’Venus’ 역시 차트 탑에 오르며 걸 크러쉬를 보여주었다.
영국 뮤지션의 미국 빌보드차트 점령은 릭 애슬리(Rick Astley)의 ‘Never Gonna Give You Up’이 차트 1위를 차지한 1987년까지 계속되었다.
1987년 빌보드 차트는 황제들의 싸움이었다. 원조 꽃미남 오빠 본 조비(Bon Jovi)의 ‘Living On A Player’가 1위에 올랐고 뒤이어 아일랜드의 혁명을 노래하는 U2의 ‘With Or Without You’와 마돈나의 ‘Who's That Girl’, 휘트니 휴스턴의 ‘I Wanna Dance with Somebody (Who Loves Me)’가 번갈아 가며 1위 자리를 탈환했다.
마이클 잭슨의 [Bad] 앨범은 ‘I Just Can't Stop Loving You’, ‘Bad’, ‘The Way You Make Me Feel’, ‘Man in the Mirror’, ‘Dirty Diana’가 모두 빌보드 핫 100 싱글의 정상에 오른 기록을 세운 첫 음반이 되었다.
그렇게 뜨거운 각축전을 벌였던 87년의 빌보드 차트 대미는 4주 동안 1위에 오른 조지 마이클(George Michael)의 첫 솔로 데뷔곡 ‘Faith’가 장식하며 마이클 잭슨 ‘Bad’의 열풍을 잠재운 마지막 승자가 되었다.(3부에서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