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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지중해 홀릭 Feb 21. 2021

혼밥, 혼술은
언제부터 일반화됐나?

어떤 사람들이 혼밥, 혼술을 잘 할까?


일본 만화가 다니구치 지로(谷口 ジロー · 1947-2017)가 세상을 떠난 것은 2017년 2월 11일이다. 향년 69세. 다니구치 지로는 우리에게 만화 혹은 TV 드라마    「고독한 미식가(孤独のグルメ)」 로 이름이 알려졌다.  
돗토리(鳥取)현 출신인 그는 1971년  「목쉰 방」으로 정식 데뷔한 이후, 일본 근대문학 거장 나쓰메 소세키(夏目漱石·일본 천엔 짜리 지폐에 있는 인물이다)와 그 지인들의 생활상을 그린 「도련님의 시대」로 일본 3대 만화상 중 하나인 데즈카 오사무 문화상 대상을 받으며 유명해졌다.


단행본으로 나온「고독한 미식가(孤独のグルメ)」만화 표지


각설하고, 「고독한 미식가」는 수입잡화상인 중년 남성 이노가시라 고로(井之頭五郞)가 혼자 먹는 식사가 주제다. 그는 늘상 거리를 걸으며 오늘 점심에는 무엇을 먹을까에 집중한다. 오직 먹는 것만이 그의 관심사의 전부다. 


고고하고 자유로운 삶이 그의 모토여서 식사 약속이나 결혼 등 "삶이 무거워지는 것"에 대해서는 몹시 꺼린다. 심지어 특정 연인도 없다. 따라서 주인공을 둘러싼 여타 에피소드는 거의 등장하지 않는다. 그야말로 '홀로 먹방' 그 자체다. 


만화와 드라마는 거리의 식당이나 간판을 보면서 점심 메뉴를 대충 정리하는 그의 심리, 식당에 들어서서 메뉴를 선택할 때 그의 시각의 갈등과 짜릿함, 그리고 맛있는 식사에 온전히 집중한다. 술도 마시지 않고 음료는 음식 본연의 맛에 아무런 영향도 미치지 않는 우롱차(烏龍茶)만 마신다. 



누구의 방해도 받지 않고 온전히 혼자 음식을 먹는 일에만 집중하는 이노가시라의 모습은 삶에 지친 일본인들 사이에서 '혼밥' 열풍을 불러일으켰다.


원래 이 만화는 후쇼사(扶桑社)*에서 간행하는 '월간 PANDA'에 1994년부터 1996년까지 연재되었다. 그러니 지금부터 30여 년 전의 일본 도쿄가 주무대(만화에 등장하는 곳은 몇 번의 출장을 제외하고는 거의 도쿄 인근을 벗어나지 않는다)라고 할 수 있다.

* 후쇼사 : 역사 왜곡 교과서로 유명한 바로 그 후쇼사다. 후쇼사는 아베 전 총리 등 일본 극우세력의 지원을 받고 있다.



TV 드라마 시리즈로 만들어진 「고독한 미식가(孤独のグルメ)」


이 당시만 해도 일본에서도 홀로 식사를 한다는 것은 그렇게 광범위한 현상은 아니었던 듯 싶다. 소위 '잃어버린 30년'이라 불리는 일본 장기불황이 시작된 것이 1991년이지만, 1990년대 중반만 해도 그 심각성이 사회 전체로 번지지는 않았던 듯하다. 이러한 점을 반영이라도 하듯 이 만화는 그동안의 연재본(1 화 - 18 화)을 모아 연재 종료시점인 1996년에 단행본으로 나왔는데, 3쇄를 내고 절판한 것으로 보아 결코 히트작이라고는 할 수 없었다. 


그런데 2000년에 문고판이 출판되고 나서 연2회, 중쇄가 이루어지는 등 판매가 늘어나기 시작했다. 2008년에는 개정판도 발매되었고, 문고판은 2013 년 2 월 현재 47 쇄를 찍었고, 그 때까지 누계 35 만부를 돌파했다. 흥미로운 점은 여성 독자가 40%를 차지했다는 사실이다.


이와 함께 눈여겨보아야 할 사항은 라멘 가게에 독서실과 같은  '칸막이(仕切り, 시키리)'가 등장한 것이 1993년 무렵이라는 사실이다. 이런 칸막이는 1993년 9월 후쿠오카(福岡)에서 출발한 유명 라멘 체인점 「이치란(一蘭)」에서 도입했다. 그런데 이 때 '이치란'에서 이런 칸막이를 도입한 것은 여성 고객들의 요구 때문이었다. 

주변을 신경쓰지 않고 먹을 수 있는 라멘 집의 칸막이는 이제 대중화되었다.
'이치란'에서 처음 도입한 칸막이식 카운터


당시 '이치란'에서는 개점을 앞두고 고객들의 요구사항을 듣기 위해 직접 길거리 앙케이트를 실시했다.이때 여성 쪽에서 "혼자 라멘집에 들어가기 어렵다" "면 추가(替玉, 가에다마)'를 주문하는 장면을 보게 하고 싶지 않다"는 등의 목소리가 높았다.그래서 주변의 시선을 신경 쓰지 않고 맛에 집중할 수 있도록, '맛 집중 카운터(味集中カウンター)'란 이름의 칸막이 벽을 설치했다. 그러니 일본에서 혼밥이 아닌 '혼라멘'의 일반화가 시작된 것은 1993년 무렵이고, 이 형태가 점점 혼자 식사를 하는 세태를 반영하면서 2000년대가 되면 일본 전역으로 퍼졌다고 할 수 있다.


'이치란'의 이런 전략은 대 성공을 거둬서 오픈 당시에는 이 새로운 시스템의 소문을 듣고, 먼 곳에서 택시로 찾아오는 사람들도 있었다. 또한 일반적인 라면 가게라면 여성 손님이 15% 정도라고 알려져 있지만, 이치란에서는 40% 이상을 차지한다. 주위의 눈이 신경 쓰이지 않기 때문에 유명 인사들도 많이 내점한다고 한다.

'이치란' 라멘 집은 줄 서서 기다리는 것이 정상일 정도로 인기를 끌었다. 

그런데 재미 있는 사실은 '이치란' 라멘의 칸막이가 코로나 팬데믹 시대에 매우 선제적인 예방책이었다는 점이다. 최근 일본에서는 코로나로 인해 라멘 가게 역시 폐업을 하는 집이 속출하고, 매출 또한 현저히 줄어들었는데 손님들의 접촉을 줄이기 위해 '이치란 스타일'로 칸막이를 하는 집이 늘어났다고 한다. 아울러 '이치란'에서는 초창기부터 주문을 말로 하지 않고, 주문서에 라면의 종류나 추가할 사항, 면의 양과 익히기 정도를 적어서 내는 방식을 도입했는데, 이 역시 코로나 비대면 시대에 아주 잘 어울리는 영업 방식이 되었다.


「고독한 미식가」 만화의 판매량이 왜 2000년도 초기부터 늘어나기 시작했을까.  이 만화 판매량의 증가 시점은 일본에서 혼밥 문화의 일반화 시점과 거의 비슷하다고 보인다. 혼밥 문화가 널리 퍼지면서 이를 다룬 주제의 만화가 관심을 받게 되었고, 급기야는 2012 년 1 분기부터 TV도쿄에서 텔레비전 드라마 시리즈로 제작하는 것이다. 이 드라마는 6년째 장기 방영되었을 정도로 인기가 높다.


「고독한 미식가(孤独のグルメ)」시즌 7

"누구에게도 방해받지 않고 혼자 음식을 먹는 고독한 행위는 현대인에게 평등하게 주어진 최고의 치유"라며 주변의 시선은 아랑곳하지 않고 ‘혼밥’을 즐기는 주인공 이노가시라의 모습은 현재 일본에서 전혀 이상한 모습이 아니다. 한국도 점차 '혼밥, 혼술족'이 늘어나는 추세다. 20년 전의 일본이 그랬던 것처럼 지금 24시간 편의점에서 가장 많이 팔리는 것은 '혼밥족'을 위한 삼각김밥과 도시락 등 각종 식료품들이다.


우리는 어쩌다 '외톨이' 문화가 우리 삶을 지배하는 키워드가 되었을까? 그것도, 일본 것을 그대로 들여오게 되었을까? 2012년 크게 히트한 걸그룹 시스타의 노래 ‘나 혼자’는 "나 혼자 밥을 먹고/ 나 혼자 영화를 보고/ 나 혼자 노래하고"라고 읊조렸다. 그러나 그 때는 혼밥이 사회적으로 주목받는 독특한 문화 현상이 아니었다. 당시 그 노래의 초점은 이별의 아픔이었다. 


우리나라 언론 기사에서 '혼밥' '혼밥족'이라는 단어가 처음으로 등장하는 것은 2015년이다. 정확하게 2015년 4월이다. 그런데 처음에는 이 단어도 몇 달 동안 주목받지 못하다가, 9월 이후부터 온갖 지면에 등장하고 대중적인 단어로 자리를 매김한다. 따라서 우리나라에서 혼밥의 대중화는 2015년을 전후로 한 세태라 할 수 있다.


혼밥은 크게 세 가지 유형이 있다. 하나는 원룸 등에서의 독신 생활이 많아지면서 어쩔 수 없이 혼자 밥을 먹는 경우다. 우리나라 1인 가구수는 무려 520만 가구, 전체의 가구수의 27.2%를 차지한다. 그러니 '1코노믹스'라는 단어도 이제는 아주 상식적인 단어가 됐다. 

MBC의 예능프로그램  '나 혼자 산다'가 처음 등장한 것은 2013년 3월이다. 이는 지금까지도 계속 방영되는 인기 프로그램이 됐다. 이 방송을 보노라면 출연자들은 거의 어김없이 밥을 식탁이 아니라, 바닥에 철퍼덕 앉아 거실 탁자에서 먹는다. TV가  혼자 먹는 게 아니라는 거짓된 느낌을 불어넣어 주기 때문이다. 방송 출연자들은 혼자 먹는 우리에게 말을 걸어준다. 그러니 우리는 혼밥을 하면서도 혼자 먹지 않고, 마치 친한 누군가와 밥울 먹으며 대화한다고 착각한다. TV야말로 혼밥의 결정적인 매개다.


다른 하나는 신자유주의 경쟁 시스템이 강요한 것이다. 대학생 및 취업준비생들은 학점을 따고, 스펙을 쌓고, 시험 준비를 하고, 또 그러면서 알바를 하기 위해 혼자 바삐 움직여야 한다. 신자유주의 경쟁 시스템 안에서 쫓기듯이 움직여야 하는 회사원이나 사업자들도 어쩔 수 없이 혼밥을 한다. 

TV에서 프랑스 음식에 관한 한 다큐 프로그램을 보노라니, 음식여행을 다니는 한 쉐프가 지방의 한 레스토랑 주인에게 "프랑스 음식이 예전과 달라졌다는 말을 많이 듣는다"라고 말한다. 그러자 그 주인이 "모두들 바쁘죠"라고 응답한다. 그렇다. 그 한 마디가 모든 걸 말해준다. 현대인은 예전 사람들처럼 느긋하게 몇 시간씩 밥을 먹을 수 없다. 음식을 느긋하게 기다리지도 못한다. 그러니 음식도 빨리 만들어야 하고, 먹는 사람도 빨리 먹어야 한다. 음식을 제대로, 정성껏 만들지도 못하고, 식사를 천천히 음미할 시간도 없다. 그저 살기 위해, 쫓기듯 밥을 먹는다.


혼밥족의 증가, 이의 일반화는 일본의  '잃어버린 30년'과 결코 무관한 현상이 아니다. 일본이 30년 전부터 겪었던 일을, 이제 우리도 시작하고 있다. 곰곰히 들여다보라. 한국의 사회상은 20년 전 일본을 거의 답습해왔다. 


마지막 유형은 자기가 속한 집단에서 친구가 없기 때문에 혼밥을 하는 경우다. 일본의 경우, 점심 먹을 친구가 없는 사람들이 처한 상황적 곤경과 심리적 고립감을 가리키는 말로 ‘런치 메이드 신드롬’이라는 게 만들어져 있을 정도다. 이 유형의 사람은 혼밥 모습을 다른 사람들이 보는 게 두려워 화장실에서 김밥이나 빵을 먹기도 하는데, 이미 일본에서는 오래 전부터 ‘변소밥(便所飯)’이 사회 문제가 되었다.


우리나라의 경우, 중년 남성들은 대개 '변소밥'의 경험이 있다. 어디서 이런 행위를 했을까. 바로 군대다. 지금의 자유롭고 풍요로운 군대와 달리 옛날 군대의 장병들은 늘 허기에 시달렸다. 그래서 매점에서 가까스로 구한 빵이나 과자를 들고 남에게 뺏길새라 화장실로 직행, 그곳에서 빵을 허겁지겁 먹곤 했다. 그러나 이는 군대에서만의 매우 예외적인 경우일뿐, 보편적 현상은 아니었다. 그런데 오늘날 모든 물자가 넘쳐나는 너무나도 풍족한 한국 사회에서 '변소밥'이라니! 참, 슬픈 사회 현상의 역설이다.



그러면 어떤 유형의 사람들이 보다 혼밥에 떳떳한가. 

혼밥이 괜찮은 사람은 어린 시절에 큰 애정을 받고 자란 사람이라고 생각된다. 그들이 혼자서도 요리를 주문할 수 있는 것은, 자신이 누군가로부터 항상 사랑받고 있고, 이 세계에 존재할 권리를 가지고 있다고 진심으로 생각하기 때문이다. 그러한 안정감이 있으면, 사람은 다른 사람이 자신에 대해 무엇을 생각하고 있는지 신경 쓰지 않게 된다.


그러나 모든 사람이 그런 안정감을 얻을 수 있는 것은 아니다. '마음의 담요'가 없는 사람들에게는 다른 사람들의 웃음소리가 당신을 비웃는 소리로 들린다. 그런 사람의 경우  '나 자신'이 자기의 존재를 긍정해 주어야 한다. 다른 테이블에서는 그들끼리 농담이나 일에 관한 이야기가 난무하고 있어, 아무도 당신의 일에 신경쓰지 않는다. 당신을 비웃는 소리는 다른 사람이 아니라 '당신 자신'에 의해 자신의 머릿속에서 울리고 있을 뿐이다.


이 글의 표지로 삼은 그림은 20세기 미국 화가 에드워드 호퍼(Edward Hopper, 1882-1967)의 대표작 중 하나인 「자동판매기(Automat)」다. 호퍼는 자신의 작품 속에서 '고독'을 깊이 표현한 인물이다. 이 그림에도 깊게 자신과 마주 대하는 고독한 여성이 그려져 있다. 현대인은 누구나 여인과 같다. 언젠가는 사람이 아닌 기계가 모든 서비스를 담당할 것이다. 그래서 음식이나 상품의 주문같은, 매우 짧은 대화마저도 사라질 것이다.


호퍼의 다른 대표작인 밤 새운 사람들 (Nighthawks)」은 1942년 작이다. 여기서도 대도시에서 살기 위해 야근을 했을 법한 사람들이 잠시 길 거리 카페에서 혼밥을 하거나 혼술을 하는 모습이 잘 나타나 있다. 그러니 미국에서는 이미 1940년대에 혼밥과 혼술이 일반화됐다고 볼 수 있다. 


에드워드 호퍼, '밤 새운 사람들'


우리나라에서 포장마차 술집이 등장했던 게 언제였던가. 아마도 70년대 후반 무렵일 거다. 모든 게 바쁘게 돌아가는 산업화가 시작됐던 때다.  근로자와 노동자들은 노동의 고단함을 포장마차에서 소주를 물컵에 가득붓는 잔술로 달랬다. 젊었을 때는 이런 행위가 잘 이해되지 않았으나, 이제는 내가 가끔 그렇게 한다. 혼술은 그 역사가 오래돼서 굳이 대중화 시점을 논하기 어렵다. 이제 사람들은 혼밥의 고독을 혼술로 물리치려 한다.


일본 TV 드라마 '심야식당'의 한 장면

혼밥을 일본에서는 ‘봇치메시(ぼっち飯, 외톨밥)’라고 한다. 우리의 혼밥은 문법으로만 따지자면 혼밥이 아니라 '혼잣밥' 혹은 '홀로밥'이 맞을 것이다. 그러나 홀밥이 혼밥보다 훨씬 더 처량하다. 그러니 혼밥이라는 말로 굳어진 게 다행이다.


코로나 팬데믹을 맞아 이제 혼밥과 혼술은 대세가 되었다. 인류의 식문화는 대 전환기에 들어섰다. 나 역시 혼밥과 혼술에 익숙하지만, 위로가 되지는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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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다니구치는 만화를 그리는 과정을 자주 등반에 비유했다. "실패해도 목숨을 잃을 걱정은 없지만 한 걸음 한 걸음 정상을 향해 오르는 고독한 작업"이라고 했다나 역시 그처럼 뚜벅뚜벅 한 걸음씩 걸어갈 따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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