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신과치료 주변의 반응
5분 거리에 사는 시어머니께 아이들 좀 봐달라는 전화는 왜 그리 손이 안떨어지는지 모르겠다.
이러려고 이사온건데도 어떻게는 최대한으로 내 선에서 해내고 싶은 마음이다.
이렇게 한 번 통화버튼 누르기 힘든 나도 내 몸이 아프니까 주저없이 행동하게 되더라.
몇 년 전, 둘째도 없던 지금 생각해보면 거뜬했을 시절,
아이가 놀아달라며 나를 흔들어 깨웠지만 찌를듯한 몸살기로 일어날 수는 없고, 그것보다 하루종일 아이를 챙겨 먹일 자신이 없으니 나 살자고 119에 전화하듯 통화버튼이 그렇게 쉽게 눌렸다.
도움을 받는데 왜 마음이 불편할까.
10년 전 발목골절로 깁스를 하고 목발을 꽤 오래 짚고 다닌 적이 있다. 내 팔은 다친 다리를 대신하기 위해 목발에 묶여 있으니, 밖을 돌아다니다 보면 뭐 하나 도움을 안받을 수 없었다.
주변 사람들이 나를 챙겨주는데.. 챙김을 받는데 왜 마음이 불편했을까..?
내가 혼자 잘 하고 싶은 마음에서 였던 것 같다. 나의 부족함을 받아들이기 싫은 마음이었는지 나의 부족함을 채워주는 다른 사람들이 너무 감사했지만 한 편으론 나를 보는 내 마음이 불편했다.
그래도 아프면 주변에 알려야한다.
감출 수 없이 티 나는 증상은 자연스레 알려지지만 말하지 않으면 모르는 병들은 내가 직접 알리는 게 좋은 것 같다. 주변에 이야기를 해야 사람들이 알 수 있고 나의 아픔으로 인해 부족한 부분에 손을 내밀어 줄 수 있다.
그런데 이상하게 마음의 병은 시어머니께 통화버튼 누르기보다 더 많이 힘들었다.
우리나라 정신과 상담 방문율은 그나마 조금 나아진 것 같다. 그냥 조용히 다녀오면 되니까?
문제는 그 다음.
내 생각회로의 문제를 알아차렸고, 마음의 병을 인정하고 고치고 싶어 받아들인 행동. 항우울제 복용.
그런데 이 사실을 주변에 오픈하기가 쉽지 않다는 것이다. 그냥 감기약처럼, 두통약처럼, 아픈 곳을 고치고 바로 잡아 정상적인 상태로 되돌려 놓으려는 것인데.. 여기서조차 나는 무의식적으로 '정상적인' 이라는 표현을 사용했다. 그렇다면 항우울제를 복용하는 나는 비!정상적이라는 걸까?
너도 나도 그런 느낌이라 선뜻 가볍게 오픈, 말 그대로 열고 알리기가 쉽지 않고 편하게 이야기 하기가 꺼려진다는 것이다.
놀라지 않으니 별 게 아니었다.
시댁과 친정에 알리고 도움 받을 수 있는 일은 도움 받자는게 남편의 의견이었다. 아이를 임신했을 때 초기이니 좀 더 있다 말씀드리자 했을 때도, 가족이니 좋은 일 나쁜일 다 알고 함께 해야 한다는게 남편의 생각이었다. 그러나 이번엔 달랐다. 그냥 그렇게 좋은 결과, 나쁜 결과를 함께 나누는게 아니라 현재 진행 중인 나의 비,정상적인 상황을 알리는 것 같았다. 세상에 아들 둘 나만 키우는 거 아닌데 혼자 병들어 있는 기분이었다. 그런 약점을 들춰보이고 싶지 않았던 거겠지?
첫 상담을 받고 혼자만의 시간을 보내려 떠난 1박 2일, 야심차게 남편이 혼자 아이들을 보겠다고 했는데 하필 그 하루 중에 급한 일정이 잡혔다. 의도치않게 시댁에 도움을 받아야했고 나의 홀로여행이 공개되었다. 저녁에 잠깐만 봐달라고 말씀드렸는데 어머님은 혼자 아이들을 보는 아들이 안쓰러웠을까, 서툰 아빠랑 끼니 챙겨먹을 손주들이 마음에 걸리셨을까, 이틀 내내 오전부터 함께 시간을 보내셨다고 했다.
내가 혼자 내 시간을 보내는 1박2일 동안 어머님과 남편도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며 함께 시간을 보낸 것 같다. 그렇게.. 나의 이야기와 내 상태가 시어머니께 전해졌다.
약은 네 동생도 먹어.
세세한 대화 상황과 말하는 이의 감정, 억양 등을 일일이 풀어서 설명하지 못하는 남자들의 화법으로 인해 어떻게 말씀하신건지 정확히 알 순 없지만.. 그래서 대사만 들으면 '혼자 애 둘 키우니, 뭐 그렇게 예민해' 라고 상상할 뻔 했지만 남편은 표정이나 감정을 묘사하지는 못해도 내가 상상할만한 그런 상황은 아니었음을 설명해주었다. 그냥 네 동생도 요즘 스트레스 받는 일 많아 잠을 잘 못자서 수면제 처방을 받았다는 것이다.
정신과 약 먹는거 큰 일 아니다. 라고 말씀하시고 있는 것 같았다.
어떤 반응을 상상한걸까?
호들갑은 나의 내면에서 나 혼자 하고 있던 것 아닐까? 너무 놀라 '어떻하니 어떻하니' 하길 생각한걸까? 그렇게 관심받고 싶지는 않으면서도 무관심은 싫었던거 아닐까?
그래도 이렇게 놀라지 않은 반응을 보니 나 스스로도 유별난 사람이 된 것 같진않다.
내가..
이상하진 않은 것 같다.
어쩌면..
힘든 상황을 견뎌오다 지친 이 순간이 당연한걸지도 모르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