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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경현 Aug 24. 2018

익숙해진다는 건 소중한 걸 잃는 거야

보이지 않는 영원


익숙해진다는 건 소중한 걸 잃는 거야 



‘스스로 팔베개’를 하지 않으면 잠이 오지 않는다. 적절한 무게감이 팔뚝에 실려야만 잠이 오는 이 버릇을 고쳐보려 노력해보았지만 쉽게 고칠 수 없었다. 언제부터 이 행위에 집착하게 되었는지 기억이 나지 않지만 내 품 안에서 잠이 들던 그가 떠나버리고 난 후 나는 그 빈자리를 스스로 채워갔다. 


익숙해진다는 건 소중한 걸 잃는 거라고 되뇌며 이별에 익숙해져버렸을 즈음 나는 불면증에 시달리고 있었다. 내게 소중했던 것은 달콤한 잠이었을까? 모두가 잠들고 하늘마저 짙어지면 나는 밤새 뒤척였다. 떠나버린 너처럼 잠은 오지 않았고 뒤척임에 지쳐 잠이 들었다. 


두꺼운 이불을 덮고 자는 것을 좋아했던 내가 이불을 둘둘 말아 마치 죽부인처럼 안고서 자게 된 것도 ‘스스로 팔베개’를 고안해내기 이전에 빈자리를 채워갔던 방법 중 하나였다. 이불에서는 좋은 방향제 냄새가 났지만 따뜻하지 않았고 폭신폭신하여 좋았지만 적절한 무게감이 실리지 않았다. 


적절한 무게감이라는 것이 단지 습관처럼 팔뚝에 실려 왔던 무게를 뜻하는 것만이 아니라는 결론을 스스로 내리기 전까지 나는 수많은 베게와 이불을 품어야했다. 하지만 그 어떤 것도 나에겐 끌리지 않았다. 모든 물체는 서로 끌어당기는 힘이 있다던데 나는 나의 마음을 끌어당기는 힘을 베게와 이불 따위에서 찾을 수 없었다. 


베게와 이불은 내 품안에서 웃지 않았고 눈동자가 빛나지 않았다. 빛나는 것이라고는 차가운 금속성의 지퍼뿐, 그렁그렁 눈물이 맺히지도 미소 짓지도 않았다. 특히, 그것들은 부드러운 입술을 지니지 못했다. 입술처럼 보이는 기다란 지퍼는 굳게 닫혀있었고 사사로움을 공유할 수 없었다. 


사사로움을 베게와 이불에게 느끼려 했던 것은 아니었다. 나는 나의 개인적 범위와 관계의 성질을 ‘사물기호증’에 국한시킬 만큼 사랑에 상처받지도 않았고 그런 트라우마 때문에 사랑을 주도적으로 이끌기 위한 상대를 찾는 것도 아니었다. 구차한 변명으로 들릴지 모르겠지만 단지 적절한 무게감, 나의 몸과 마음에 실리는 그 무게감의 빈자리를 이불 수납장으로 착각했던 것뿐이었다. 


그런 와중에 이 방법을 깨닫게 된 건 뜻밖의 수확이었다. 빈자리를 스스로 채워갈 수 있을 거라는 생각을 왜 하지 못했을까? 정말 오래간만에 곤히 잠에 들었다. 태아처럼 웅크리고 자는 것이 가장 편한 자세 라는 말을 어디선가 들었던 것 같다. 그와 비슷한 모습이기 때문일까? 의구심이 일었지만 확실한 결론을 내릴 수는 없었다. 


습관에 익숙해진 지금, 이 결론조차 단순한 자위에 지나지 않는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을 한다. 섹스보다 자위행위에서 더 큰 쾌락을 느끼는 사람들도 있다던데 지금 나의 상황에 가장 효율적인 행위가 ‘스스로 팔베개’일 가능성을 배제할 수는 없다. 


이런 행위의 발로가 어디에 기하는지 정의내릴 수는 없지만 이것만은 확실한 것 같다. 익숙해져버린 나는 또 다시 소중한 무엇인가를 잃었다. 나의 어딘가에 빈자리는 또 생겨났고, ‘스스로 팔베개’가 그의 빈자리를 완벽하게 채웠던 것은 아니었기에. 결국 나의 빈자리는 점점 더 커질 거라는 걸 예감한다. 


그래서일까 아직도 잠이 오지 않는다. 




채풀잎 에세이, <보이지 않는 영원> 94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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