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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경현 Aug 25. 2018

긴 하루에

보이지 않는 영원



긴 하루에 



커피향도 나지 않는다. 나는 고개를 돌린 채 이야기를 듣고만 있다. 그를 마주보는 것이 괴로워진 것은 이번이 처음이지만 애써 무심한척 태연한척 해본다. 식은땀이 흐르고 힘이 풀려버린 다리가 저려오기 시작한다. 너무 오랜 시간 꼬고 앉아 있었나... 애써 딴 생각을 해본다. 


아까 그를 만나러 달려오던 때에도 이렇게까지 땀이 흐르지는 않았던 것 같다. 바람이 불었던 탓인가. 여기가 너무 더운 건가. 청각을 마비시키기 위한 고민들을 해보지만 답은 나오지 않는다. 그저 지옥 같은 이 순간을 벗어나고 싶을 뿐이다. 나는 핸드폰을 만지작거리다 주머니에 넣어버린다. 자칫 미끄러져 버릴 것 같다. 나의 몸도 마음도 그런 식으로 미끄러져 테이블 밑으로 숨어버리고만 싶다. 테이블 밑으로 그의 신발이 보인다. 


그가 날 떠나는 것에 대한 불만은 없다. 저 신발을 신고 나를 떠나는 것에 대한 불안감만이 존재한다. 저 작은 신발이 너무 불안해서 보내고 싶지 않은데 나는 꿀 먹은 벙어리가 되었다. 짧은 대답과 무심한 말들로 나의 불안감을 공격한다. 주위를 무안하게 만드는 나의 태도가 문제였을까. 아무것도 기억나지 않는 듯이 그대로 미쳐버렸으면 싶은데 숨만 막힌다. 숨 막히는 내 시선은 커피숍 밖에서 사랑을 속삭이는 연인들을 향한다. 


만남과 이별이 공존하는 이 지옥에서 나는 그의 마음이 나를 떠나기 전의 모습들을 그린다. 그대로 그렇게 망부석이 되어서 잠들어 버렸으면 싶다. 그게 아니라면 기지개를 펴면서 이상한 꿈을 꾸었다고 중얼거리는 평범한 아침이거나. 건물 안인데도 해가 저물어가는 것이 느껴질 정도로 테이블 밑은 어둡다. 그 어둠 위로 그의 목소리가 울린다. 이런 예의 있는 이별을 도리어 고맙게 느끼는 내가 너무 바보 같아서 나는 애꿎은 영수증만 찢어댔다. 


막차 시간은 다가오는데 그는 점점 더 멀어진다. 붙잡고 싶은 마음은 굴뚝같은데 연기는 나지 않고 눈물이 날 것 같아 접어버린다. 쿵. 마음을 닫는다. 아무렇지 않은 듯. 조용하게. 종이학이 하늘을 난다. 별들이 보인다. 다시 커피향이 나기 시작했다. 저리던 다리도 피가 돌기 시작했다. “몇 시지? 막차 시간 늦겠다.” 말을 뱉어버린다. 정신을 가다듬고 직원에게 안녕히 계시라는 말까지 친절하게 덧붙이며 나왔다. 


어색한 시간이 흐른다. 그는 나에게 마지막으로 손을 잡아달라며 내민다. 저 손을 잡으면 울음이 터져버릴 것이다. “싫어.” 무뚝뚝하게 버스가 오는 방향만 바라본다. 뒤통수가 따갑다. 아직도 그는 손을 들고 있다. 그 모습을 보면 왈칵 쏟아질 것만 같아서 나는 뒤를 돌아보지 않았다. 옆에 있던 아저씨가 담배를 태운다. 연기가 밀려온다. 그 익숙한 것들마저 어색해졌다. 


버스가 도착했다. 조심해서 가. 정나미 떨어질 마지막 인사를 하고 버스가 출발함과 동시에 등을 돌려 걸었다. 긴 한숨을 쉬는데 기억들이 밀려왔다. 소나기처럼 쏟아져 내리는 기억들에 젖는 순간에 발걸음은 무거워졌다. 핸드폰을 들어 친구에게 전화를 걸었다. 뚜뚜뚜뚜... 친구의 목소리가 들리자마자 눈물이 펑펑 쏟아졌다. 친구 앞에서 그렇게 울어본 것은 처음이었던 것 같다. 그날은 하루가 너무 길었고 비가 너무 많이 내렸다. 




채풀잎 에세이, <보이지 않는 영원> 100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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