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이지 않는 영원
다른사정은없는것이차라리
친구와 대화를 하다가, 친구의 주변 사람들이 이별을 겪은 이후로 당장 그리운 것은 연애나 성적관계라기보다 ‘키스’라는 말을 했다는 소리를 들었다. 키스가 성적관계에서 벗어난 것인지 아닌 것인지 명확히 구분 지을 수는 없을 것이지만 그 심정이 이해가 가기도 한다. 하지만 다시 생각을 해보면 적어도 내 입장에서 이별 이후에 느껴지는 외로움의 궁극적인 원인 중 하나는 이런 새벽에 연락을 할 수 있는 사람들이 적다는 것, 그리고 연락을 할 수 있는 이들이 이성친구라고 해도 매번 연락하기에는 부담스럽다는 것일 것이다.
친구들과 언니들은 고맙게도 사람은 사람으로 잊는 거라며 사람을 소개시켜주겠다고 했지만 요즘은 그것이 자신이 없어서 두렵다기보다는 때가 아닌 것 같아서, 더 속을 터놓고 이야기하자면 단순한 관계보다는 복잡하게 얽히고설킨 관계. 이 사람과 평생을 살다 죽어도 되겠다는 심정의 관계를 맺기에는 준비도 기분도 나지 않는다는 것이 고독에 몸부림치더라도 당연시 여겨지는 한 부분이라고 생각이 든다.
이것을 공황상태라고 불러도 좋다. 허나 그것이 나를 대변할 수는 없는 노릇이다. 내 속의 아해를 1인으로 13인으로 규정할 수 없을 정도로 나는 순간마다 분열의 과정을 겪고 있고 사람들은 나를 분열주의자라 부르고 있다. 게다가 사람들이 분열주의자라고 부르는 이들의 분열을 지지한다. 마음이 동하지 않는 것에 마음을 쓴다는 것 자체가 소모적이기도 하거니와 발전적이라거나 진보적이라고 규정짓기에는 이미 균열의 양상이 심각하다. 인간의 삶은 언제나 그 스스로에게 심각할 따름이다.
토로할 곳은 없고 시간의 속도는 점점 빨라진다. 폭염 속의 선풍기는 구슬프게 돌아간다. 벌써 몇 시간째 돌아가기만 하는 기계의 소리에도 먹먹한 찰나들은 첩첩히 쌓인다. 인간관계에 관한 규정을 나는 칼을 댄 듯 자르고 싶지 않다. 허나 순간만큼은 때에 따라 달라져야만 하는 것이 인간의 고육지책이 아닌가 생각한다. 나의 변화에 변절이란 단어를 붙여도 좋다. 그러나 그들이 변하지 않고 지켜온 것들이 진정 그들이 이름붙인 변절보다 나은 것인가에 대한 나의 의문을 풀어주지는 못했다. 그들은 쉽게 입을 다물었다.
아물어야할 것은 인간의 뼛속까지 스며든 고독이 만들어낸 이 새벽의 균열. 그리고 그 균열로써 생겨난 틈이다. 틈을 메우지 못한다면 연애도 성적관계도 키스도 사람도 관계도 마음도 삶도 비루할 것이다. 비루하다. 사람들은 눈을 껌뻑이며 눈꺼풀 뒤에 숨은 이물질에 대한 혐오를 나타내고 있었다. 어떤 이는 눈을 부비었고 어떤 이는 후후 바람을 불었다. 낮의 바람은 폭력적 염증(炎蒸)과도 같았지만 밤의 바람은 어떤 이의 입바람처럼 시원하기만 했다.
채풀잎 에세이 <보이지 않는 영원> 12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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