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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경현 Sep 07. 2018

비오는 날

보이지 않는 영원


비오는 날 



비에 흠뻑 젖은 탓인지 발걸음은 축축 쳐지기 시작하고 사람들은 외롭다. 각자 나름의 방법으로 삶의 고단함을 풀어낸다. 그 살풀이가 가끔은 차가운 비처럼 사람의 마음을 적시기도 하는 것이어서 나는 비오는 날이 썩 좋지 않다. 요즘처럼 시간이 어물쩍 지나갈 때면 더욱이 마음이 지쳐버린다. 금세 꺼져버릴 것만 같아서 잠도 쉽게 들지 못한다. 괜한 생각이려니 책을 펼쳐 놓았다가 잡념에 사로잡힌다. 


나는 얼마나 많은 추를 가슴속에 올려놓고 살아가는가. 말로 다 표현하지 못할 미안함이 나의 하루를 갉아먹는다. 빗소리가 사각사각 들린다. 저 소리를 따라가며 묵직한 것들을 내려놓아야한다. 가야하는 길에 자꾸 뒤가 밟힌다. 하루에도 수십 번씩 저승 문을 열고 닫는 고독 속의 안주함이란 꼴사납게도 타인에겐 민폐일 뿐인 것이다. 그래도 그것이 두렵다. 토악질을 하며 보통의 시간을 벗어난 몸의 떨림을 기억해본다. 아직, 아직은 아닌가. 


육신은 차가워지고 살점마저 날카로움에 뜯기어 간다. 비라는 것이 빗소리라는 것이 나에게 가끔은 지옥불의 절규처럼 들리는 건 아마도 아직도 사람들에 게는 못 미더운 녀석이기 때문일지도 모른다. 그렇다고 남들이 모르고 지나치는 나의 배려를 팔아 믿음을 사 모으고 싶진 않다. 더위는 한풀 꺾였고 나는 고개가 꺾였다. 하늘은 나에게서 멀어질 것이고 구름은 가까워질 것이다. 


그는 빗소리가 좋다고 말했었다. 창문 너머로 들리는 잔잔한 그 소리가 너무 달콤하다며 비오는 날에는 항상 들떠있었다. 하지만 나는 그 이후로 항상 빗소리가 서걱서걱 들리곤 한다. 피가 마르고 눈물이 찬다. 나를 알아주는 이는 저 하늘뿐이라 그저 비를 맞을 수밖에 없는 것이다. 그래도 오늘은 좀 아프다. 아픔을 견딜 수가 없어서 차라리 녹아버렸으면 싶다. 아침이 밝아오면 해가 뜨고 녹아버린 나를 어디론가 증발시켜버릴 또 다른 따가움이 기다리고 있을 것이지만. 


가시 돋친 바람이 분다. 좀 더 깊숙한 곳에 가시를 찔러 넣는다. 사람들이 갖는 나에 대한 미움들을 주워 담는다. 좀 더 심장이 팽팽해지면 죽어버릴 것이다. 나의 라임 오렌지 나무에서 제제는 아빠를 죽였다지만 나는 나를 죽여 갈 것이다. 빗방울 하나에 이 시간과 생명을 던져가며. 다 타버리면 멈추어 버릴 뜨거운 심장에게도 새벽의 찬사를. 나에게는 끝임 없는 저주를. 뼛가루조차도 검은 독에 녹이 쓸어가기를. 혓바닥도 손톱도 생기를 잃어 죽음 같은 꿈에 들기를. 오늘 하루도 조금 더 가까워졌음에 감사하며. 




채풀잎 에세이 <보이지 않는 영원> 140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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