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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경현 Jul 10. 2021

오랜만에 일기나 써볼까

가능합니다

일기를 쓰려면 하루를 보람차게 살아야할텐데, 우리가 사는 세상은 활동적인 하루를 허락하지 않는다. 돈을 벌기도 쓰기도 쉽지 않는 날들. 누구라도 만나고 싶은데 아무도 만나지 못하는 날이 있다. 이런 날에는 삶을 기만하던 그 사람들이 떠들어대는 말을 지켜보면서 쓴웃음을 짓는다. 하루가 우습게 간다.

어제는 친구들에게 기대어 술을 마셨다. 막걸리 예닐곱 병을 비우고 새벽이 되어서야 헤어졌다. 고3 시절 방영되었던 드라마 이야기부터 가고 싶은 여행 이야기까지. 할 일을 조금 미루어두고 아무말이나 했다. 웃고 떠들다보니 '다 마실 수 있을까?'라던 술병도 모두 빈병이 되었다. 설거지가 차곡차곡 쌓였다.


책을 읽을 시간이 없어서 괴롭다. 일은 쌓이고 가만히 있어도 없던 일이 생긴다. 올해 가장 어이없는 일은 '예술인 고용보험'. 고용보험료를 잘 내고 싶어도 도대체 뭘 어쩌라는 건지 잘 모르겠어서 답답하다. 서류들이 날라오고 내게 전화를 했던 직원은 짧게 통보만 하고 끊으려 들어서 21세기가 맞는 건가 싶다. 


모두 각자의 사정이 있겠지. 그러나 매몰차지 못하면 남의 사정이나 들어주다가 하루가 가버린다. 예전에 "세상이 어떻게 바뀌었으면 좋겠나요?"라던 질문에 어줍짢은 대답을 했던 것 같은데, 지금 다시 대답한다면 "사람 인생이 짧다면 짧은데 뭘 하든 시간이 아깝지 않았으면 좋겠어요."라고 말하고 싶다.

숫자 여섯 개만 누르면 송금도 되고 신용조회도 되는 세상인데 아직도 공인인증서, 공동인증서, 그 외 수많은 이름들의 인증서들 덕분에 시간이 잘 간다. '일은 언제하지?' 내 인생에서 언제쯤 시답잖은 일들이 사라질 수 있을까. 아무리 노력해도 시스템이 바뀌지 않는데 변화를 기대하는 것은 바보 같은 일이 아닐까?

친구들 몇이 세상을 떠났다. 그 이유가 무엇 때문인지 단정짓기는 어렵다. 하지만 적어도 그들과 나의 삶에 저 망할 인증서 같은 것들만 없었어도 스트레스는 조금 덜 받지 않았을까. 그래서 요즘은 '해야 한다.', '하고 싶다.' 보다는 '할 수 있게 한다.'에 더 긍정적이다. 가능한 '가능합니다.'라는 말을 자주 써야지.

그래도 하기 싫은 걸 하는 건 불가능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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