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도 한다고 한다고 했는데 이것밖에 안 되네. 엄마, 아빠는 어떻게 참고 버텼나 싶어."
'더운데 어째 사냐'는 물음에 뚱딴지같은 대답을 했다. 술을 두어 병 마시고 취기가 올라있던 탓이기도 하지만 답답한데 기댈 곳이 없어서 늦은 밤을 붙잡고 있던 차에 도착한 문자는 그 시절 기댈 곳 없이 버텼던 내 부모를 존경스럽게 했다. 아마도 내 기억에 나의 부모는 내 나이쯤 집을 사고 아등바등 버티고 있었다. 내일을 기대하기 어렵고 오늘을 버텨내기 어려운 탓이었는지 일찍 잠들고 일찍 일어났다.
잠이 오지 않는다. 늦게 잠들고 일찍 일어난다. 읽다만 책들이 머리맡에 쌓이고 SNS를 열어 사람들을 보면, 사람들은 여전히 돈 이야기가 한창이다. 함께 일하기로 한 친구가 "그래도 저는 이런 일은 꼭 하고 싶어요."라고 이야기해주어서 고마웠다. 사업비가 깎여서 나왔지만 만들어내고픈 결과는 높은 탓에 계속 아쉬운 소리를 하고 다니게 된다. 다 내가 모자란 탓이라고 생각하면 남 탓을 안 하게 되어 마음이 편하다.
생각대로라면 내년쯤 무리해서라도 집을 사려했다. 매번 이사하는 것도 지겹고 여기저기 흩어진 짐들 때문에 얇은 스트레스가 겹겹이 쌓이기도 해서. 차라리 원금, 이자를 갚으면서 내 집에 사는 게 마음이 편하지 않을까 해서. 그렇게 정신없이 살다 보면 뭐라도 되지 않을까 싶어서. 하지만 정신을 못 차리고 술을 마시고 있는 내가 한심스러워서 뺨을 몇 번 내리쳤다. 입안이 비릿해지는 사이 문자가 도착했다.
힘들지?
더운데 고생많다
밥은 먹고다니는거야?
위를 쳐다보지말고 내가 있는 자리에서 만족하며 살자
지금 이시간은 다시 돌릴수없으니
힘들때 서로 의지할수 있는 사람이 옆에 있으면 그 힘으로 견뎌지는 건데…..
맘에 있는 사람 있으면 용기를 내봐 도와줄수 있는만큼 힘이 돼줄께
답장을 하지 않은 채 잠에 들었다. 폭염이 찾아왔고 방역 단계가 올라가면서 매장에 오는 사람들의 출입이 뜸해졌다. 아침부터 저녁까지 하기로 했던 행사를 온라인으로 전환하자거나, 일정을 미루자거나, 취소하는 것이 어떠냐는 연락이 쏟아졌다. 열심히 준비했던 일들이 미뤄졌지만 평범한 하루를 보낸다. 어제처럼 일을 하면서, 아무 일 없는 듯이. 아침이면 빨래를 하고 청소를 하면서 하루를 시작한다.
사람에게 기댈 수 있는 일이 감사한 일이라는 걸 알지만 때로는 참으로 쓸쓸한 일이라는 걸 안다. 스스로 아무것도 할 수 없으면서, 아무것도 해내지 못하면서 사람을 단지 자신이 기대기 좋은 도구로 사용하는 사람들도 더러 보았다. 선거철이 되면, 이렇게 돈이 사람을 옥죄는 시기가 오면 사람은 얼마나 절망스러운 존재가 되는지. 그래도 그게 다가 아니라는 걸 아니까. 그만큼의 기대로 오늘을 난다.
그저 나는 요즘 내가 마음에 들지 않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