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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임노엘 Sep 30. 2019

무무 데이!

금요일이다! 불타는 금요일! 긴 머리 풀어헤치고 시끄러운 음악에 맞춰 어두운 밤을 하얗게 불살라야 마땅한, 불!금! 


하와이에서는 금요일을 '무무 데이'라고 부른다. 일주일 동안 쌓였던 긴장을 풀고 느긋한 마음으로 주말을 기대하는 날. 그런 의미로 하와이 사람들은 이 날, 간편하고 캐주얼한 알로하셔츠를 입고 출근을 한다. 



아이러니하게도 편안한 복장인 알로하셔츠는 동시에 정장 역할을 한다. 무언가를 기념하는 날, 상대방에 대한 예의를 표할 때 하와이안들은 알로하셔츠를 입는다. 지인 중 한 사람은 장학금을 받게 돼 이를 기념하기 위한 파티에 초대를 받았는데 파티의 드레스 코드가 알로하셔츠였다고 한다. 



하와이안들이 사랑하고 흔하게 자주 입는 알로하셔츠. 나도 하나 구입해 봤다. 특이한 점은 프린트 앞면이 바깥으로 나오는 게 아니라 프린트 뒷면이 바깥쪽이다. 패턴이 프린트된 옷을 뒤집어 입은 것 같은 느낌이다. 왜 그렇게 하는지 이유는 잘 모르겠지만, 그 덕분인지, 오래오래 입고 세탁을 많이 해도 옷에 새겨있는 패턴 색깔이 닳거나 해지지 않는다. 나시 티에 비해서는 조금 비싼 금액이지만 한 벌 사두면 두고두고 오래오래 입을 수 있을 것 같다. 



알로하셔츠의 가장 큰 장점은 뭐니 뭐니 해도 빨리 마른다는 거다. 탈탈 털어 옷걸이에 걸어 널기만 하면 구김도 가지 않는다. 알로하셔츠는 원래 다려 입지 않는 옷이란다. 다리지 않아도 주름 없이 깨끗하게 잘 마르기 때문일까? 이유가 뭐든, 다림질 없이 늘 새 옷처럼 깔끔하게 입을 수 옷이라니! 게으른 나는 알로하셔츠를 사랑할 수밖에 없다. 



내 마음도
알로하셔츠면
좋겠다. 

걱정, 고민, 상처, 후회, 미련, 무엇이든, 탈탈 털어 넣으면 금세 아무 일 없던 것처럼 깨끗해졌으면 좋겠다. 지금 막 새로 산 옷처럼 구김도 없고 얼룩도 없이 멀쩡해졌으면 좋겠다. 입고 입고 많이 입어서 너무 많이 세탁기에 돌려도 닳지 않는 알로하셔츠처럼 내 마음도 너덜너덜 해지지 않았으면 좋겠다. 



나는 늘 구질구질하고 되씹고 되뇌고 되돌려 생각하고 또 떠올린다. 가정하고 고민하고 혼자 울며 끙끙댄다. 이제는 연락도 안 되는 어릴 적 친구 경진이랑 연신이처럼 흘러간 이름들이 아직도 굳이 보고 싶다. 용서도 쉽지가 않다. 네가 나한테 그랬었지, 울컥울컥 옛날 일들이 자꾸만 떠오른다. 당시 억울했던 억하심정이 잊을 만하면 다시 생각나고 또 생각난다. 



인기도 많고 특별하고 흔하지 않으면서도 어느 자리에나 잘 어울리는. 실용적이면서도 격식 있고, 편하면서도 예의를 갖출 수 있는. 관리도 쉽고, 억지로 다림질해서 꾹꾹 눌러 펴지 않아도 되는, 알로하셔츠가 부럽다. 훌훌 털어버리면 짠, 하고 원상 복귀되는 알로하셔츠는 한없이 홀가분해 보인다. 나도 그렇게, 산뜻했으면 좋겠다. 


못났다. 이젠 별 게 다 부럽다. 


오늘은 무무 데이! 

무거운 생각은 알로하셔츠와 어울리지 않으니!

나도 주말을 준비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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