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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임노엘 Apr 28. 2018

크리스마스 전구에 불이 켜지면


 크리스마스를 사랑한다. 


한겨울, 코 끝을 무자비하게 얼려버리는 차가운 공기. 그 얼얼함 가운데, 몽실몽실 피어오르는 따뜻한 크리스마스의 따뜻한 분위기. 



크리스마스의 차가운 공기를 마시면 심장이 이상하게 두근거린다. 롤러코스터를 타기 전에 느껴지는 흥분과 비슷한 것 같기도 하지만 한편으로는 화장실에 가고 싶은 초조함 같기도 한, 정체모를 두근거림. 큰 맘먹고 떠나는 여행을 앞둔 들뜸인 것 같다가도 이내, 합격 여부를 알리는 이메일을 막 열어볼 때의 두려움인 것 같아버리는 묘한 긴장. 정의할 수 없는 감정들 때문에 약간은 예민해져 버릴 찰나, 복잡한 기분을 말끔히 날려버리는 크리스마스의 겨울바람과 캐럴이 등장한다. 


크리스마스의 이런 뒤범벅을 사랑한다. 



반짝이는 크리스마스 장식을 올려다보고 있으면 무엇이든 다 이룰 수 있을 것 같은 자신감이 솟아오른다. 화려한 불빛처럼 내 미래도 근사하게 빛날 것 같다. 기쁘고 행복한 상상이 퐁퐁 피어오른다. 설레서 마음이 벅차다. 그런데 갑자기, 올해가 이제 다 지나가는구나, 하는 탄식이 불현듯 밀려온다. 올 한 해 나는 뭘 했지. 종종거리며 무언가를 바쁘게 하긴 했는데. 올해도 그저 그런 한 해였구나. 이렇게 나이만 먹는구나. 작년과 다름없던 올해. 올해와 크게 다르지 않을 것 같은 내년. 기운이 쭉 빠진다. 근거 없는 기대감으로 한껏 올라갔던 내 어깨는 순식간에 밑으로 축 쳐진다. 벅찼다가, 실망했다가, 뿌듯했다가 금세 시무룩해진다. 그저 크리스마스 장식을 바라봤을 뿐인데 이 짧은 순간, 환희와 좌절이 동시에 나를 덮친다. 



바로 이때! 한 단어로는 정의할 수 없는, 굉장히 낯선 떨림이 느껴진다. 상반된 감정을 동시에 받아들여야 해서 무언가가 저 밑바닥에서부터 벅차오르는 건지, 이런 경험이 흔치 않으니 생소하고 신기한 건지, 아니면 까만 밤에 예쁜 불빛을 보니 그저 신나는 건지, 간단히 한마디로 설명할 수 없는 , 이름 모를 흥분이다. 이제 막 키스를 하기 직전인 것처럼 심장이 큰 소리로 쿵쾅거린다. 숨이 멎을 것처럼 가슴이 답답해 크게 숨을 내쉰다. 이럴 때면 모든 것이 새로워진다. 낯선 내 감정도 새롭고, 낮과는 다른 저 건물도 새롭고, 매일 걷던 이 길도 새롭고, 함께 크리스마스 장식을 보고 있는 내 옆 사람도 새롭다. 평범하고 지겨운 것들이 새롭게 보이니 호기심이 발동하고 호기심이 발동하니 내 눈이 반짝거린다. 마치 때 묻지 않은 어린아이의 눈망울처럼. 이 순간을 사랑한다. 이 순간의 빛나는 내 표정을 보고 싶어, 나는 1년 내내 크리스마스를 기다린다. 



1년 내내 크리스마스 장식을 볼 수 있다면 좋을 텐데. 아쉽지만 크리스마스 장식은 12월에만. 나 혼자 집에 크리스마스 트리를 1년 내내 장식해 놓는다 해도 크리스마스 시즌의 짜릿함을 느낄 수는 없을 것이다. 사람들의 상기된 표정, 시끌벅적한 길거리, 환상적인 캐럴, 한 해 묵은 체증을 날려주는 차가운 겨울바람. 이런 것들이 없으니 말이다. 대신 1년 내내 크리스마스 캐럴을 듣는다. 크리스마스가 주는 떨림을 조금이라도 더 간직하고 싶어서. 주변 사람들은 이제 캐럴은 지겹다고 불평을 한다. 그러면 나는 큰 소리로 이렇게 외친다. 


여름에는 캐럴이지! 


다시, 겨울이 오면 

겨울에는 캐럴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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