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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임노엘 Nov 18. 2017

산타에게


 반팔 차림으로 아름다운 여인들과 신나게 훌라춤을 추는 산타, 바닷가에서 신나게 서핑을 하는 산타. 색다른 분위기의 크리스마스 카드다, 하와이에서만 볼 수 있는. 두꺼운 코트나 따뜻한 털모자, 하얀 눈이나 따뜻한 벽난로 같은 건 하나도 없는 크리스마스. 지금껏 내가 보냈던 크리스마스와는 완벽하게 다른 풍경이다. 크리스마스 카드에 이런 그림을 넣을 수도 있구나. 


스륵. 지금 막, 무언가가 조금 허물어졌다. 


내 머릿속에 있는 크리스마스가 세상 모든 사람들의 크리스마스는 아니었을 텐데. 많지 않은 경험, 좁은 시야, 그럼에도 불구하고 뻔뻔하게 강하기만 한 고집. 이런 것들로 구축된, 어리석은 나만의 기준들. 뜨거운 크리스마스를 바라보다 보니, 쓸데없이 단단하기만 해서 좀처럼 무너뜨리기 힘들었던 나 혼자만의 정답들이 아주 조금, 살짝 녹아내렸다. 




 

나만의 틀이 조금이나마 녹아내리니 밖이 보였다. 내가 알던 세계가 아닌 다른 공간, 다른 삶, 하와이 분위기. 그리고 나. 나는 다른 곳에서 왔으니 아직은 하와이가 조금 부자연스럽다. 아니, 이 곳에서는 나만 무언가 조금 다르다. 그게 어색했는데, 희미하게나마 이유를 알 것 같다. 하와이라는 제목의 그림에서 내 존재만 유독 불편하게 튀는 이유. 


누군가와 이야기를 하고 싶어 졌다. 속 이야기는 잘 하지 않는데. 누군가에게 내 이야기를 하고 싶어 졌다. 그러나 말할 상대는 없고. 편지를 써야겠다. 





산타에게. 


안녕, 산타. 당신에게 편지를 쓰는 건 처음이네요. 왜냐면, 나는 당신을 믿지 않으니까. 산타의 존재를 믿느냐, 안 믿느냐, 몇 살까지 믿었느냐는 한 사람의 인생에서 꽤나 중요한 문제인데, 나는 당신을 못 믿는 쪽이었어요. 일부러 그런 건 아니에요. 나도 억울하다고요. 내 기억 속 처음 산타는 5살인가, 6살 때 유치원에 나타났던 당신이었어요. 당신이 등장하자마자 내 꼬마 친구들은 이렇게 소리쳤어요. '저건 산타가 아니야. 정정희 집사님이야.'라고. 그래서 나는 산타가 있는지 없는지 고민할 새도 없이 다짜고짜 당신이 가짜임을 알게 돼 버렸어요. 산타를 굳게 믿고 몇 번의 크리스마스를 설레며 기다리고, 운 좋게 몇 번의 선물을 받고 좋아하다가, 그러다가 환상이 깨졌어도 좋았을 텐데. 나의 크리스마스는 어쩌다 보니 건조하다 못해, 버석거리며 부서진 채로 시작하고 말았네요. 





그런데 왜 당신에게 편지를 쓰냐고요. 갖고 싶은 게 있어서에요. 정말 꼭 갖고 싶은 것. 뭐가 갖고 싶냐면요. 


여유요. 


내 이야기를 조금 해 볼게요. 나는 학창 시절 전교 1등이었어요. 이런 이야기는 정말 가까운 사람 아니면 거의 안 해요. 아니, 가까운 사람이어도 굳이 꺼내지 않지요. 자랑하는 거냐, 그게 언제 적 이야기인데 아직도 거기서 못 벗어난 거냐, 그때가 그리운 거냐, 너 잘랐다, 그런데 지금은 왜 그러고 사냐, 거의 이런 반응들만 돌아오거든요. 그런데 난 정말 자랑을 하고픈게 아니에요. 자랑하려고 등수 이야기를 꺼낸 게 아니에요. 



나한테 전교 1등은 트라우마예요. 




아직도 힘든 일이 있거나 스트레스를 받는 일이 생기면 꿈을 꿔요. 시험 보는 꿈을요. 내일이 시험인데 시험 범위까지 다 못 보고 잠들었다 깼다거나, 수학 시험지를 받았는데 정말 기본적인 공식이 생각나지 않아 기막히게 당황하는 꿈같은 거요. 시험 범위까지 문제집을 채 한 번도 풀지 않아 깨끗한 문제집을 바라보면서 난감해하는 꿈이요. 장소도 다르고 내용도 다르지만 결국엔 한 가지인 꿈. 시험을 망치겠구나, 내가 왜 준비를 완벽하게 안 했지, 발을 동동 구르는 꿈이요. 잠에서 깨고 나면 상세한 꿈 내용은 잘 기억이 안 날 때도 있지만 선명하게 느껴져요. 시험 때마다 느꼈던 숨 막히는 급박함과 극도의 긴장감이요. 너무도 생생해요. 그런 꿈을 꾸고 일어나면 기운이 쭉 빠져서 깨자마자 지쳐버려요. 꿈이어서 다행이다, 가슴이 철렁 내려앉아요, 아직도. 꿈에서 느낀 스트레스 때문에 자다가 나는 종종, 크게 소리를 지르기도 해요. 





웃긴 게 뭔지 알아요? 한 번도 전교 1등을 해야지, 욕심낸 적이 없다는 거예요. 부모님도 나한테 공부하라고 강요한 적이 없고요. 그냥, 학생은 공부를 해야 된다니까 공부를 했던 거였어요. 그래서 밤을 하얗게 새워서 공부를 했어요. 거기까지만 했어도 그나마 나았을 텐데, 나는 지나치게 소심했어요. 그래서 공부를 안 하고 쉬는 건, 학생의 본분을 다하지 않는, 큰 죄인 것 같았어요. 시험 범위를 다 못 봤는데 잠을 자버린다거나, 문제집을 다 못 풀었는데 TV를 본다거나, 학교 수업이 끝나면 독서실에 가서 더 공부를 하고 와야 되는데 그냥 집에 온다거나 하는 건 일 년에 한 번 있을까 말까 한 일이었어요. 그래서 끝끝내 밤을 새워서 시험 범위를 다 보고 자고, 문제집도 처음부터 끝까지 다 풀고, 매일매일 독서실에 가서 공부를 했더니 어느샌가 내가 전교 1등을 하고 있더라고요. 


그런데, 그게 나한테는 많이 힘들었나 봐요. 그래서 학창 시절 시험이 아직까지도 내 속에 트라우마로 남아 있나 봐요. 문제는 그때 내가 그렇게 힘들었다는 걸 스스로는 전혀 못 느꼈다는 거예요. 아니, 힘들긴 엄청 힘들었어요. 언젠가 한 번은 친구한테 '나 오늘 기절했으면 좋겠어. 그러면 며칠 동안 병원에서 쉴 수 있을 거 아니야.' 이렇게 말한 게 기억나거든요. 꾸역꾸역 독서실로 향하는 계단을 올라가면서 친구한테 그렇게 이야기했어요. 생각해 보면, 그렇게까지 힘들었으면 독서실이 아니라 집으로 가는 계단을 오르고 있었어야 했는데, 나는 그걸 못하는 미련퉁이였어요. 바보고 멍청이고. 공부를 왜 해야 되는지 묻지도 않았고, 내가 뭘 좋아하는지, 뭘 싫어하는지도 몰랐어요. 그리고 내가 지금 얼마나 힘든지, 이렇게까지 힘들면 뭘 해야 하는지도 전혀 몰랐어요. 



만약 지금 내 주위에서 누군가가 전교 1등을 하고 있다면
나는 그 친구가 공부하는 걸 말릴 거예요. 


그 친구는 아무것도 몰라서 그렇게 죽자고 공부만 하는 걸 수도 있어요. 문제집을 다 안 풀어도 괜찮다는 걸, 졸리면 자야 된다는 걸, 숙제 같은 건 몇 번쯤 안 해도 된다는 걸 정말 몰라서 그러는 걸 수도 있어요. 자기가 힘든지 안 힘든지 조차도 못 느끼는 딱딱한 사람이면 어째요. 사람들이 모두 이렇게 해야 된다고 말하면 자기 줏대나 고집은 하나도 없이 그대로 하는 한심한 바보면 어쩌냐고요. 나처럼, 뭐든지 지나치게 해버려야 직성이 풀리는 과한 사람일 수도 있어요. 본인은 아마 자기한테 이런 심각한 문제가 있다는 걸 짐작도 못할 거예요. 이런 멍청함과 무감각, 소심함과 과잉 행동들이 뒤범벅돼 자기 마음에 무시무시한 독기가 자라고 있다는 것도 전혀 깨닫고 있지 못할 거예요. 본인은 그 독기를, 아마 성실이라고 착각하고 있겠지요. 주변 사람들도 모두 마찬가지고요. 그건 성실이 아니에요. 강박이에요. 그러니 누군가가 주위에서 전교 1등을 하고 있다면 한 번 찬찬히 살펴봐 줘요. 그 친구의 마음이 진짜 원하는 게 공부인지, 그 친구가 혹시 지나칠 정도로 가혹하게 자신을 몰아가고 있는 건 아닌지, 당장 그 자리에 고꾸라질 만큼 지쳐 있지는 않은지, 그런데도 스스로는 자신의 페달을 멈출 수 없어 곪아가고 있는지, 한 번 살펴봐 줘요. 만일 그렇다면 제발, 잠이나 자라고 억지로 책상에서 끌어내 줘요. 





지금은 다행히 전교 1등의 구렁텅이에서 벗어났어요. 하지만 전교 1등의 습관이 내 속에 아직 남아 있어요. 벼락치기로 빠른 성과를 내던 조급함, 뛰어난 결과물을 손에 쥐고 싶어 했던 성과주의, 아프지도 않은데 자버리면 느껴지던 죄책감 같은 것들이요. 그런 것들이 지금도 나도 모르게 불쑥 튀어나와요. 자세히 말해보라고요? 하와이에 온 후, 글을 써보고 싶다고 생각했어요. 글은 예전부터 써보고 싶었어요. 조금 끄적이기도 했고요. 하와이에 오니 직장도 없고 시간은 많고, 내가 해보고 싶었던 글쓰기를 마음껏 해보자 생각했어요. 아직 자신은 없지만 꾸준히 글을 써서 책을 내보고 싶기도 하고요. 그래서 일주일에 한 편 정도씩 쓰기 시작했어요. 책을 내려면 적어도 30편 이상의 글은 있어야겠지요? 일주일에 한 편이면 8X4=32, 8개월! 그럼 출판사를 찾고 회의하고 편집하고, 이러면 1년이 훌쩍 넘겠네! 내가 책을 내려면 1년도 더 걸리겠네! 속도를 내야겠어! 잠을 좀 줄여볼까? 잠을 줄여서 밤에 글을 더 써볼까? 더 빨리 책을 내고 싶어! 나도 모르게 나는 또 8X4=32!, 8X4=32! 이러고 있다고요!


성과에 집중하는 것에 나는 아주 익숙해요. 살면서 쓸데없는 일을 한 적은 한 번도 없거든요. 그래서 한가하게 아무 계획도, 목표도, 확신도 없이 일기 쓰듯이 글을 쓰는 게 나는 사실 조금 불안해요. 그리고 어떤 직장이나 명함, 간판 하나 없이 홀로 덩그마니 세상에 던져진 나 자신은 훨씬 더 불안하고요. 튼튼한 갑옷이나 투구는 다 벗어던지고 전장에 나간 사람처럼 자꾸만 약해져요. 


그런데 사람들에게 위로를 주는 글, 여유를 선물하는 글을 쓴다면서 내가 이리 조바심을 내도 되는 걸까요. 독하게, 급하게, 쥐어짜며 쓴 글을 읽으면서 과연 사람들이 긴장을 풀 수 있을까요. 차 한 잔 마시면서 소파에 비스듬히 누워 느긋하게 읽어보려다가 체하겠네요. 서두르는 나의 마음이 고스란히 전해질 테니까요. 


게으른 글을 쓰고 싶어요. 아무것도 이룰 수 없는 글을 쓰고 싶어요.

내 글이 책으로 나와도 좋고, 그러지 못해도 괜찮아요. 재미있어요. 대단한 사진작가인 양 무거운 카메라를 어깨에 메고 있는 것도 폼나서 으쓱하고요, 사진을 고르는 것도 설레요. 이렇게 따뜻한 조명을 켜고 침대에 앉아 나 혼자 중얼거리듯 글을 쓰는 시간이, 편안하고 꽤 멋져요. 난생처음 쓸데없는 일을 하고 있어요. 완벽하게 내가 좋아서 하는 일. 글을 쓰면서 나도 한 걸을 느려지고 내 글을 읽는 사람도 천천히 발걸음을 멈추었으면 좋겠어요. 그러니, 이번엔 꼭 크리스마스 선물을 보내줘요. 나, 한 번도 당신에게 선물을 받아본 적이 없잖아요. 못 받은 선물까지 다 합쳐서 지나치게 큰 선물 상자에 넘치도록 많은 여유를 보내줘요. 써도 써도 바닥나지 않을 만큼. 





하와이는 12월에도 따뜻하네요. 여기 오려면 하와이 크리스마스 카드처럼 당신도 알로하셔츠와 서핑 보드가 필요하겠어요. 잘 준비해서 와요. 기다릴게요. 멜레 칼리키마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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