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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임노엘 Nov 10. 2017

크리스마스 퍼레이드 3

 드디어 퍼레이드가 시작됐다! 현수막을 당당히 펼쳐 든 학생들의 걸음이 발랄하다. 무수히 연습했을 캐럴이 신나게 울려 퍼진다. 날은 조금씩 어두워지고 퍼레이드 차량을 꾸민 크리스마스 전구에도 불이 켜졌다. 퍼레이드에 참여한 사람들은 관객들에게 손을 흔들며 메리 크리스마스를 크게 외쳤다. 나도 괜히 흥분해서 메리 크리스마스라고 소리쳤다. 아무도 나를 알아보지 않는 외국에 나오니 나는 조금 뻔뻔해졌다. 



 


퍼레이드의 백미는 엉뚱하게도 관객들에게 나눠주는 사탕이었다. 길 옆에서 퍼레이드를 구경하던 꼬마들은 사실 사탕이 목적이었나 보다. 기대감에 잔뜩 부푼 아이들은 한 번이라도 사탕을 더 받으려고 열심이었다. 둘러보니 아이들은 모두 사탕을 담기 위한 가방을 준비해 왔다. 생각지도 못한 푸짐한 공짜 사탕. 나도 손을 벌려 사탕을 받았다. 사실, 조용히 사탕을 받은 건 아니고. 메리 크리스마스를 크게 외치며 사탕 봉지를 든 사람에게 강렬한 눈빛을 쐈다. 나 여기 있다고 크게 손도 흔들었다. 사탕은 잘 먹지도 않으면서. 예상치 않은 사탕 선물에 나는 꽤나 들떴다. 





작은 마을의 짧은 크리스마스 퍼레이드. 신나면서도 편안했다. 퍼레이드를 보기 위해서 굳이 버스나 지하철을 타고 한참 길을 나서지 않아도 됐다. 게다가 사탕을 주고받을 수 있을 만큼 가까운 거리. 서로 주고받았던 눈빛과 웃음. 내가 외친 메리 크리스마스가 달콤한 사탕으로 되돌아올 때의 짜릿함.


 별 것 아닌, 시시하고 작은 교감이었지만 나에게는 꼭 맞는 크기였다. 





사실, 나는 멀리 나다니는 것을 좋아하지 않는다. 내가 사는 동네나 멀지 않은 곳에서의 만남을 선호한다. 지하철을 한 시간이나 타고 이동할라치면, 약속 장소에 도착하자마자 피곤이 몰려온다. 그래서 내 행동반경은 늘, 거의 30분 이내다. 하와이에 오기 전 나는 서울 강북 지역에 살고 있었다. 처음 입사했던 회사는 서울역 근처였다. 입사 후 얼마 되지 않아 그 회사는 교대 역 근처로 이사를 했다. 몇 달 후 나는 회사를 그만두고 말았다. 그 후 새로운 회사에 입사 지원을 할 때 내가 가장 중요하게 생각했던 것은 사무실 위치였다. 아무리 좋은 회사라도 한강 아래쪽에 위치한 회사에는 이력서를 내지 않았다. 물론 그 회사들도 나를 뽑지 않았을 테지만. 





그래, 나는 이렇게 취업하기 어려운 시대에 고작 회사가 멀다는 이유로 사직서를 내는 정신 나간  사람이다. 출퇴근 시간의 2호선이 주는 잠시 잠깐의 불편함과 고단함을 끝끝내 못 참는 인내심 없는 사람이다. 먼 곳에 사는 친구들을 1년에 단 한 번도 만나러 가지 못해 결국은 소중한 친구들을 기어이 잃고 마는 한심한 사람이다. 평일에 약속을 잡으면 몸이 아파서, 다음날은 회사에 휴가를 내야 하는 약해 빠진 사람이다. 자꾸 평일에 만나자는 친구들의 전화를 차마 받을 수가 없어 답하지 않아, 오히려 더 크게 욕을 먹는 미련한 사람이다. 





내게 세상은 지나치게 크다. 만나야 할 사람들은 버거울 정도로 많다. 만날 수 있는 사람들은 손에 꼽힐 만큼 적다. 


불행히도, 미련은 누구보다도 많다. 


연락이 닿지 않는 사람들. 늘 궁금하다. 자주 보지 못함이, 만남이 지속되지 못하는 것이 자꾸만 아쉽다. 길에서 스치고 지나가도 내가 결코 알아채지 못할 그들의 표정, 걸음걸이, 뒷모습이 안타깝다. 친해질 만하면 이사니, 유학이니, 발령 등으로 갈 길이 달라진다. 이제야 너에 대해 조금 알겠다, 너도 나를 이해할 수 있겠구나 싶으면 결혼이나 이직이 우리 앞에 달려든다. 만나고 헤어지는 일은 이렇게 숨 쉬는 것처럼 자연스럽다. 그런데도 나는 혼자 청승이다. 누군가에게 마음을 여는데 유난히 시간이 많이 걸리는 나는 어렵게 정 붙인 사람들과 헤어지는 게 시리다. 한 동네에서 태어나 평생 그 동네에서만 살다가 죽었으면 좋겠다고 자주 생각한다. 막상 그렇게 산다면 답답하겠지만. 





이런 나에게 바로 집 앞에서, 길 옆에서, 사탕을 주고받을 수 있는 거리만큼 가까웠던 퍼레이드는 처음 만났지만 왠지 나와 잘 통할 것 같은 사람을 마주한 느낌이었다. 많지는 않지만 꽤 끈끈한 관계를 유지했던 사람들, 나에게 마음껏 따뜻한 온기를 주었던 사람들, 아니 내가 힘껏 사랑했던 사람들을 뒤로하고 훌쩍 비행기를 타는 일은 헛헛함과 허전함의 뒤범벅이었다. 그런데 하와이 작은 섬, 작은 섬의 작은 동네, 작은 동네의 조용한 퍼레이드를 보니 조금 용기가 났다. 아는 사람 하나 없고 한 번도 와 보지 않은 낯선 곳이지만 이 곳에서 잘 지낼 수 있을 것 같아. 




그런 안도감에 긴장이 풀려, 나도 모르게 사탕을 꽤 욕심내서 받았나 보다. 사탕을 좋아하진 않는데. 누구와 나눠 먹어야 하나. 


귀여운 티셔츠도 받았다. 가슴팍에 적힌 mele kalikimaka. 메리 크리스마스의 하와이 말이다. 아직은 어색한 하와이 말. 혼자 조용히 중얼거려 본다. 멜레 칼리키마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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