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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임노엘 Nov 02. 2017

크리스마스 퍼레이드 2

 행복한 가족들이 있다. 이들을 보고 있으니 나도 가족들 얼굴이 떠오른다. 그중에서도 오늘은 특히 막내 동생. 동생이 외국에서 유학 중이라 그런가. 해외여행이라곤 한 번 가 본 적도 없던 내가 말도 잘 안 통하고 낯설기만 한 외국에 와 보니 막내 동생도 아는 사람 하나 없고 물 설은 곳에서 혼자 낑낑대고 있을 것 같아 자꾸만 마음이 쓰인다. 



K에게


안녕, 내 동생. 잘 지내고 있어? 


여기는 크리스마스 축제가 한창이야. 떠들썩해. 반팔 크리스마스 본 적 있나? 거기는 춥겠다. 옷은 잘 챙겨 입고 다녀? 덜덜덜 떨고 다니지 말고 따뜻하게 입고 다녀. 뼈에 바람 든다. 혼자 있는데 감기까지 걸리면 너무 서럽잖아. 밥은 잘 먹고 다녀? 귀찮다고 대충 때우지 말고 따뜻하게 밥도 짓고 뜨끈하게 국도 끓여서 든든하게 먹고 다녀. 외국에 나와 보니 먹을 게 마땅치가 않아 조금 힘드네. 햄버거, 피자도 하루 이틀이지. 음식은 너무 짜. 여기가 덥고 섬이라 그런가? 식당에서 사 먹는 음식들이 하나같이 짜네. 과자도 너무 짜고 케이크는 지나치게 달고. 비싸기만 하고 입에 맞지가 않아. 거긴 어떤가 모르겠다. 



네가 유학을 가니까 밥은 잘 먹고 다니는지 신경이 많이 쓰이네. 


어렸을 때, 내가 중학생이고 네가 초등학생일 때. 아빠 일 돕는다고 엄마가 아빠랑 같이 출근했었잖아. 4시인가 5시인가 내가 학교에서 돌아올 때쯤이면 엄마가 매일 집에 전화를 걸었었어. 몰랐지? 그래서 나한테 너 밥 먹었냐고 항상 물어봤었어. 정말 매일매일, 하루도 빼먹지 않고. 엄마는 한 번도 나한테 너는 밥 먹었냐고 물어보지 않았어. 항상 K 밥 먹었냐고, K는 지금 어디 있냐고 물었어. 나는 짜증이 많이 났어. 저녁을 뭘 먹어야 되나, 나는 매일 고민이었거든. 반찬도 없고 엄마도 없어서 나는 거의 라면을 끓여 먹었던 것 같아. 그런데도 엄마는 언제나 네 밥만 궁금했었나 봐. 


지금 생각해 보면 너는 초등학생이어서 학교에서 일찍 오니까 점심을 너 혼자 챙겨 먹었어야 했었는데. 나는 그런 네 사정에 대해서는 전혀 생각을 못했었어, 그때는. 엄마는 미리 식탁에 네 점심상을 차려 놓고 출근을 했는데 너는 잘 먹지 않았나 봐. 어린 나이에 학교에서 돌아오면 집에 엄마도 없고 혼자 밥 먹기가 싫었겠지. 그래서 너는 점심도 안 먹고 친구 집이며 동네를 쏘다니고 했다네. 그래서 엄마는 항상 너 밥 먹었나 그게 걱정이 됐나 봐. 나는 그때 점심 도시락을 싸 가지고 다녔으니 당연히 점심은 학교에서 먹었었고. 그래서 엄마가 너 밥 먹었냐고 매일 물었던 건데, 내 딴에는 나 밥 먹는 건 신경도 안 쓰고 너만 챙기는구나, 신경질이 났었어. 그래서 엄마한테 매번 모른다고 틱틱거렸지.  

 



참 철없고 이기적인 시절이었다. 전혀 큰누나 답지도 않고. 왜 헤아리지 못했을까. 점심도 못 챙겨 먹은 어린 네 마음을. 아직도 어리게만 보이는 조카들보다 더 어렸던 네가 오도카니 집에 혼자 앉아 있는 줄 알았다면 내가 집에 일찍 왔을 텐데. 그때 난 학교 수업 따위는 하나도 안 중요했거든. 일찍 집에 와서 너랑 놀라고 하면 어쩌면 더 좋아하지 않았을까? 방정식을 풀고 배구장 가로, 세로가 몇 센티미터인지 외우는 게 난 너무 답답했거든. 허겁지겁 학교에 가고 하루 종일 책상에 앉아 있는 게 숨 막혀서 졸업하면 절대 회사에는 취직하지 말아야지, 그때 결심했거든 나는.


왜 난 단 한 번도 네가 점심도 못 먹었다는 점을 알아채지 못했을까. 왜 한 번도 너의 하루에 대해서 상상해 보지 않았을까. 너무 소중한 내 동생인데. 너무 어렸던 걸까. 그것도 변명이 안 되지. 중학생이면 충분히 어린 동생을 보살필 수 있는 나이인데. 난 그 때 끔찍한 괴물이었나봐. 시험 성적과 등수만 강조하는 비인간적인 우리나라 교육 시스템에 완벽하게 적응한, 그래서 엄마 아빠의 고민은 뭔지, 내 동생은 뭐가 힘든지, 조금도 생각하지 못하는 이기주의자. 어쩌면 그렇게까지 무심했을까, 나는. 교육 시스템 탓이 아니지. 그냥 내가 참 나쁜 놈이었어. 



내내 너에게 미안하다. 내가 학교에서 답답하다, 학교에 오기 싫다, 빨리 집에 가고 싶다는 생각으로 꽉 찬 시간들을 보내고 있을 때 너는 혼자 집에서 뭘 했을지. 그 시간들을 생각하면 아직도 울컥해. 너무 모자란 누나라서. 누구는 자기 큰누나는 자기가 알고 있는 세상 모든 사람들 중 자기에게 가장 친절하고 가장 따뜻한 사람이라는데. 나는 네가 알고 있는 사람들 중 가장 차갑고 가장 신경질적이고 가장 예민한 사람이겠지. 부끄럽네. 이제는 점심도 못 먹고 온 동네를 쏘다니던 꼬마인 너의 힘겨움과 아빠와 같이 출근을 해 놓고도 어린 네가 걱정돼 하루도 빼놓지 않고 나에게 전화했던 엄마의 마음이 모두 뼈저리게 이해가 돼. 그나마 다행이지. 지금이나마 나 아닌 다른 사람들의 심정을 헤아리고 살필 수 있게 돼서. 좀 더 일찍 알았으면 좋았을 텐데. 우리는 분명 한 공간에 있었는데. 아쉽고, 아쉽다. 



이번에 한국에 들어가서 네가 외롭다고 내뱉었다는 말, 전해 들었어. 어린 시절 내내 외로웠을 네가 아직도 외로워하고 있어서, 마음이 쓰리다. 외롭겠지. 서럽고. 어디 하나 손 뻗을 데도 없고 하루하루 막막하고. 네 심정, 여기서도 충분히 느껴진다. 나도 그랬으니까. 그리고, 아직 나도 여전히 외로우니까.


그런데, 혼자 섬처럼 있지 마. 나는 너보다 단지 몇 년 더 산 것뿐이지만, 억지로 스스로를 외롭게 만들 필요는 없는 것 같다. 네가 모르는 내 얘기를 해볼까. 나는 우리 집 첫째라 모든 게 힘들고 두려웠어. 나 혼자 내 앞의 모든 일들을 헤쳐나가야 한다고 생각했거든. 기댈 곳이 없다고 생각했어. 힘든 내색을 해서도 안 된다고 생각했었어. 그래서 나는 매일매일이 버겁고 힘에 겨웠어. 참 어리석었지, 지금 생각해 보면. 그럴 필요 없었는데. 엄마도 있고, 아빠도 있고, 동생들도 있었는데. 특히 동생들한테는 내 힘든 사정, 고민들을 얘기할 수 없다고 생각했었어, 언제나. 뭐 얼마나 어른스럽게 잘 해야 한다고. 그냥 그 나이에 맞게 징징거리고 투정도 부리고 아프다고 말해도 됐었는데. 나 혼자 고생이었지. 괜히 내가 나를 고립시켜서 한 생고생. 이런 고생은 내 속만 시커멓게 썩지 인생에 전혀 도움이 안 되더라. 그건 철이 드는 것도 아니더라. 단지 다른 사람과 소통할 줄 모르는, 손 내미는 법도, 다른 사람 손을 잡아줄 줄 모르는 바보일 뿐이더라고. 



그래서 이제는 안 그러려고. 이렇게 말하면서도 나는 오늘도 여전히 말 못 한 고민들로 혼자 낑낑대고 있지만. 그러나 알아. 언제든 내가 손 내밀면 너는 내 손 따뜻하게 잡아 줄 거라는 걸. 부족하고 못난 누나지만 언제든 너는 나를 감싸줄 거라는 걸. 모두가 날 욕하더라도 너는, 충분히 나를 이해해 주고 안아줄 거라는 걸, 나는 이제야 안다. 너도 알았으면 좋겠어. 네 뒤에는 언제나 우리가 든든히 서 있다는 걸. 우리는 언제나 네 편이라는 걸. 항상 응원하고 있어. 너를 위해 매일 간절히 기도하고 있고. 


하와이 오면 따뜻한 밥 해 줄게. 요리에는 별로 소질 없는 누나지만, 네가 한 밥보다는 낫지 않겠냐. 하하하. 잘 지내고. 사랑해, 내 동생. 네가 내 동생이어서 감사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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