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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필이면 섹스

1부



글을 시작하면서


언제인가 개인적으로 알고 있는 한 선생님에게서 선택에 대한 말씀을 들은 적이 있다.


“이 세상은 사람이 살고 싶은 대로만 살 수 있는 곳이 결코 아니야.


그렇다보니 때로 사람은 결코 살고 싶지 않았던 대로 살게 될 수도 있고, 전혀 바라지 않았건만, 크게 다치거나 아예 죽을 수도 있지.


하지만 그렇다고 해도, 사람은 기본적으로 자신이 선택한 대로 살게 돼.


그러니 늘 더 나은 삶을 살기 위한 선택을 해야 하는데, 그러려면 혼자 덩그러니 고립되는 등의 ‘망하는 방향’이 아닌, ‘흥하는 방향’으로의 선택을 하려고 언제나 노력해야하지.


그러나 막상 사람들은 ‘지금은 어쩔 수 없다’ 등의 온갖 핑계를 말하면서 ‘망하는 방향’으로의 선택을 주로 해.


혹은, 당장의 이익에 눈이 어두워서 ‘망하는 방향’으로의 선택을 하거나.


그러다가 죽는 등, 더 이상 스스로 선택할 수 없는 지경에 이르러서야 흔히 잔뜩 남이나 자신을 원망하지.

너희는 저들처럼 어리석게 ‘망하는 방향’으로의 선택이 아닌, ‘흥하는 방향’으로의 선택을 계속해서 하기 바란다.


물론, 현실적으로는 많은 어려움이 있겠지만.”


그런데 언제인가부터 내가 그 선생님의 말씀대로, 미처 생각하지도 못했던 삶을 살고 있고, 그러면서 계속해서 수많은 선택을 하고 있다.


뜻하지 않게 대학원을 가고, 그에 따라 거주지를 옮기고, 회사를 만들고 등등.


심지어 때로는 하루에도 셀 수 없을 만큼 자주.


그리고 선택에 따라서 또 생각하지도 못했던 새로운 삶을 연속해서 살고 있는데, 가끔은 내 선택에 불쑥 두려움을 느낀다.


분명히 ‘흥하는 방향으로의 선택이다’ 생각하면서 결정했지만, 적지 않게 의심이 마구 될 때도 있기에.


‘진짜 내가 정확한 선택을 했을까?’


그래서 가끔은 아무 것도 안 한 채, 몇 시간씩, 혹은, 며칠씩 내 선택이 올바르게 이루어졌는지 차근차근 뒤돌아본다.


최소한 더 나쁜 선택을 하지 않기 위하여.







이유는 모르겠지만, 나는 꽤 오랫동안 막연히 사람들의 성적인 고민과 심리학은 아무런 연관이 없다고 생각했었다.








하필이면 성(性)


그저 나에 대하여, 사람에 대하여 알고 싶은 까닭이었을 뿐, 나는 임상심리사 등 상담사가 되겠다고 심리학을 선택한 것은 아니었으며, 성에 대한 상담을 하려고 심리학을 공부한 것은 더더욱 아니었다.


더구나 강의실에서는 성에 대하여 거의 배우지도 않다보니.


그래도 심리학을 공부하는 데에 혹시라도 도움이 될까 싶어 가끔씩 주변에 있는 사람들을 상담했는데, 그럴 때면 끄트머리에 꼭 성적인 하소연을 잔뜩 늘어놓는 여자들이 있었다.


내키지 않는데도 남자친구가 자꾸 조르다보니 어쩔 수 없이 모텔에 가게 된다는 둥, 좋은지도 모른 채 자꾸만 조르는 남자친구의 요구대로 따라한다는 둥.


그렇다보니 오히려 섹스에 대한 거부감만 갖게 됐다는 둥.


심지어 내가 심리학을 공부한다는 말만 듣고도 그동안 가슴속에 꽁꽁 숨겨왔던 성적인 고민을 모두 털어놓는 여자들도 있었는데, 그런 느닷없는 하소연을 처음 들었을 때는 몹시 당황스러웠다.


왜냐하면, 비록 같은 여자라고 해도, 남과 성적인 이야기를 나눈다는 것이 몹시 어색한데다가, 성에 대해서는 워낙 아는 것이 없다보니 어떻게 대꾸해야할지도 몰랐기에.


‘갑자기 왜 이런 이야기를 하지? 그리고 어떻게 이렇게 성에 관한 이야기를 쉽게 꺼내놓지?’


그런 내 속을 아는지 모르는지 사뭇 진지한 표정으로 계속해서 성적인 하소연을 늘어놓던 그녀들.


마치, 심리학을 공부하니 이런 고민도 당연히 상담해야한다는 듯 그녀들은 속을 털어놓았는데, 적지 않게 자신의 성문제를 속 시원하게 해결할 수 있는 방법까지 묻는 여자들도 있었다.


‘내가 그런 걸 어떻게 알아?’


그럴 때면 속은 까맣게 타들어갔지만, 그런 것도 모르면서 무슨 상담을 하느냐는 비난을 들을까봐 섣불리 내색할 수도 없었다.


‘어서 빨리 이 몹시 당황스러운 시간이 지나갔으면’


그래서 그때마다 나는 그동안 이곳저곳에서 주워들었던 어설픈 지식과 상상력을 동원하여 적당히 넘어갔다.   






민망한 이야기


‘코가 큰 남자는 거기가 크다더라.’ 등등.


물론, 나도 성에 대한 어느 정도의 호기심과 관심은 갖고 있었으며, 그래서 때로 깔깔 웃으면서 친한 몇몇 친구들과 성에 대한 가벼운 수다를 떨기는 했다.


그래도 누구인가와 성에 대한 진지한 이야기를 나누는 것은 몹시 망설여졌는데, 특히 처음 만난 사람과는 더욱 그랬다.


‘민망하게 어떻게 그런 이야기를?’


그런 나에게 심지어 처음 만난 적지 않은 여자들까지 상담을 빌미로 여직 듣도 보도 못한 몹시 낯선 이야기까지 마구 풀어놨으니.


“이상하게 술에만 취하면 남자를 마다하지 못하겠어요.”


더구나 가끔은 내가 상상도 못할 만큼의 몹시 노골적인 이야기를 아주 덤덤하게 꺼내놓는 여자들도 있었다.


“남자친구가 자꾸만 애널섹스를 하자는데, 해도 괜찮을까요?”


그럴 때면 더욱 많이 당황했는데, 그래도 상담자로서 최대한 티는 내지 않으려고 노력했었다.


속으로는 ‘저 여자는 저런 이야기를 하는 게 창피하지도 않나?’ 생각하면서도.


그런데 알고 보니 그 정도는 노골적인 이야기도 아니었다.


세미나 등 학교 밖에서 만난 몇몇 현직 상담사들은 더욱 깜짝 놀랄 이야기들을 들려줬으니.


“남자 중고생들은 더 말할 것도 없고, 여자 중고생들까지 상담 중에 ‘자×’, ‘보×’ 하면서 이야기하는데, 당황해서 말이 안 나오더라고”


그때의 충격이란.


‘아직 어린 학생들이 어떻게 나도 못하는 말들을 할 수 있지?’


그때, 자신의 경험담을 역시 아무렇지 않다는 듯 덤덤하게 털어놓는 상담사들을 보면서 또 더더욱 놀랐는데, 특히 남자 상담사들은 도무지 더 이상 들을 수 없을 만큼의 몹시 민망한 이야기도 농담까지 섞으면서 덤덤하게 이야기했다.


마치, 야한 우스갯소리를 하듯이.


‘저 남자들은 민망하지도 않나? 저런 이야기를 어떻게 저렇게 아무렇지 않다는 듯 말할 수 있지? 또, 듣는 남자들도 어떻게 저렇게 마음 편히 웃으면서 들을 수 있지?’






무지렁이의 상담


약간의 호기심과 관심만 있을 뿐, 성에 대해서는 나도 무지렁이였건만, 그렇다는 사실도 모른 채, 몹시 당황스러울 만큼의 노골적인 표현으로 마구 성적인 고민을 늘어놓던 여러 여자들.


또, 생각하기조차 몹시 민망한 말들을 우스갯소리마냥 낄낄 웃으면서 재미있다는 듯 떠들던 몇몇 남자 상담사들.


분명히 대단하지는 않았음에도 불구하고, 이들에게 받은 충격은 꽤 여러 날 동안 계속됐는데, 언제인가부터는 그렇지 않아도 이런저런 일로 복잡하던 내 머릿속을 더욱 뒤죽박죽으로 만들어놓았다.


‘괜히 상담을 한다고 설쳐가지고’


그렇다보니 나는 점점 상담에 흥미를 잃기 시작했다.


아니, 정확하게는 누구인가로부터 또 성적인 하소연을 들을 수도 있다는 생각이 자꾸 들다보니 상담에 점점 두려움을 느끼기 시작했다.


그러다가 다시 언제인가부터는 누구인가로부터 또 상담요청을 받을지 모른다는 옅은 두려움도 느끼기 시작했는데, 그러면서 나의 미래 중 하나를 지워버렸다.


‘나는 상담사가 되면 안 되겠구나.’


그리고는 점점 사람들을 멀리하기 시작했다.


혼자 방안에서 뒹굴거나, 혼자 도서관에 가거나, 또, 혼자 카페에 가는 등으로.


그때, 어찌나 홀가분하던지.


하지만 며칠이나 지났을까?


문득, 사람들로부터 스스로 소외되던 내 자신이 몹시 한심스럽게 생각되었다.


‘누구인가의 말대로, 사람들의 성적인 하소연도 내가 이 세상을 살아가기 위하여 이겨내야 할 장애물 중 하나일 수 있건만, 부딪쳐보지도 않은 채 겁만 잔뜩 먹고 주저앉다니’


순간, 계속해서 이러다가는 이 세상의 모든 사람들로부터 영원히 스스로 소외될 수 있다는 생각이 불쑥 들면서 함께 두려움이 몰려왔고, 그래서 개인적으로 알고 있던 선생님들 중 한 분을 찾아가 마구 하소연을 늘어놓았다.


“익숙하지 않은 것과, 더구나 마음의 준비도 없이 맞닥뜨리면 누구나 당황하지”


내 하소연에 그 선생님은 너무나 쉽게 대꾸하셨는데, 그 말씀을 들으니 막연하게 생각하면서 상담을 하겠답시고 덤볐던 내가 너무 부끄러웠다.






남자와 여자의 차이


"신체 구조적으로 남자의 성기는 살펴보기 아주 쉬워.

고개를 조금만 움직여도 쉽게 볼 수 있거든.

그렇다보니 어릴 때부터 남자들은 자신의 성기뿐 아니라, 화장실이나 목욕탕 등 다양한 장소에서 계속해서 또래의 아이들을 비롯한 매우 여러 유형의 남자들의 성기를 살펴보게 되지.

전혀 보고 싶지 않은데도 어쩔 수 없이 보게 될 때도 많이 있을 만큼.

그러면서 때로 누구의 성기는 어떻게 생겼다는 둥, 누구의 성기가 더 크다는 둥, 서로 비교 평가하는데, 이렇게 하면서 남자들은 자신과 같은 성적인 특징을 가진 사람들, 즉, 동성의 성에 점점 익숙해져.

그리고 이 과정에서 친구들과 성적인 농담을 주고받는 등, 이성인 여자를 비롯한 성에 대한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기도 하지.

현실성이 있는 이야기이든지, 터무니없는 이야기이든지 상관없이 마구잡이로.

그런데 이런 과정을 거치면서 남자들은 성적인 정보를 계속해서 공유하게 돼.

즉, 성적인 교류에 점점 익숙하게 되는 것이지.

그래서 친구 등의 아는 남자들과는 물론, 심지어 처음 본 남자와도 서슴지 않고 성적인 농담이나 정보를 주고받을 수 있게 되는데, 대부분의 남자들이 아주 흔히 야한 이야기로 수다를 떠는 가장 기본적인 이유가 바로 이 때문이야.

3Some이나 스와핑 등의 공유하는 섹스에 관심을 갖고 있는 남자가 많이 있는 가장 기본적인 이유도 마찬가지이고.

하지만 여자는 신체 구조적으로 자신의 성기를 살펴보기 쉽지 않아.

또, 다른 여자의 성기를 낱낱이 살펴볼 수 있는 기회도 남자보다 훨씬 적지.

이 때문에, 결국 성적인 정보를 공유하는 등 성적인 교류에도 남자만큼 익숙하기 결코 쉽지 않은데, 미혼여성들 중에는 물론, 기혼여성들 중에도 섹스 등 성적인 교류에 쉽게 적응하지 못하는 여성이 적지 않은 가장 기본적인 이유가 바로 이 때문이야.

자네가 상담 중 남들의 성적인 고민에 적응을 못하는 가장 기본적인 이유 역시 바로 이 때문 같군.

쉽게 말해서, 자네가 성적인 교류에 익숙하지 않은 여자이다 보니 남들의 성적인 하소연에 쉽게 적응하지 못하는 듯싶다고."

 - 그날 들었던 말씀 중에서






남자들의 수다


‘저 여자는 엉덩이가 아주 죽인다.’, ‘쟤, 참 맛있게 생겼다’ 등등.


비단 남자 상담사들뿐 아니라, 진짜 남자들은 자기네들끼리 때와 장소를 가리지 않고 여자를 소재로 야한 뜻이 잔뜩 담긴 말을 아주 흔하게 주고받았다.


TV나 휴대폰을 통하여 여자 연예인을 볼 때는 물론, 길거리 등에서 마음에 드는 여자를 봤을 때도 그랬고, 심지어 강의실에서 수업 중에도 누구인가를 가리키며 천박하다고 생각될 만큼 아주 노골적인 말로 수군댔으니.


때로는 낄낄 웃으면서, 때로는 사뭇 진지하게.


이제까지 나 역시 주변에서 들려오는 남자들의 성적인 수다를 셀 수 없을 만큼 많이 들었을 것이다.


그런데도 이제까지 남자들이 저렇다는 사실을 몰랐다니.


“우와, 저 빨통 봐라!”


또, 남자들은 때로 자기네보다 나이가 한참 많은 아주머니를 향하여 무차별 야한 말을 내뱉었고, 때로는 자기네보다 나이가 한참 어린 여학생들을 향하여 또 마구 야한 말을 내뱉었다.


등 뒤에서, 혹은, 가까운 앞쪽 어디에서인가.


‘정말 가리지 않는구나. 저 남자들에게는 엄마나 어린 여동생도 없나?’


뿐만 아니라, 자신의 성경험을 친구들에게 자랑삼아 떠드는 남자도 많이 있었다.


“어제, 채팅으로 꼬신 여자를 만나서 모텔에 갔는데,”


혹은, 이제까지 몇 명이 여자와 섹스를 했다는 둥.


이런 남자는 특히 인터넷에서 더욱 흔하게 볼 수 있었는데, 그런 성적인 수다를 들을 때면 남자들의 성적인 교류에 대한 의심만 잔뜩 들었다.


‘저렇게 노골적인 음담패설을 주고받는 것이 성적인 교류인가?’


그러면서도 도무지 들을 수 없을 만큼의 몹시 민망한 이야기도 농담까지 섞으며 대수롭지 않다는 듯 이야기하던 남자 상담사들이 조금씩 이해되기 시작했다.


‘어릴 때부터 툭하면 서로서로 노골적인 음담패설을 주고받았으니 그런 이야기도 아무렇지 않다는 듯 듣고 말할 수 있겠지’


그런데 알고 보니, 마냥 어리게만 보이던 내 남동생 역시 친구들과 툭하면 온갖 음담패설을 천박하게만 들리는 말투로 주고받았고, 그 친구들도 마찬가지였다.


‘그렇다면 혹시 아빠도?’






흔한 성적인 교류


생각해보니, 남자들이 친구들과 흔히 야한 수다를 떤다는 것은 나도 어릴 때부터 대략 알고 있었다.


더구나 때로는 나를 비롯한 여자들에게 야한 농담 등의 야한 말을 불쑥 던지는 남자들도 있었기에.


그런데 그런 것도 성적인 정보의 공유 중 일부요, 성적인 교류 중 일부라니?


친구들과 야한 수다를 떠는 것이 정보나 공유, 또, 교류라는 심오한 말과는 결코 어울리지 않는 듯싶어 도무지 인정하기 싫었는데, 하지만 그날부터 여러 날 동안 이어진 그 선생님의 보완설명에 점점 인정하기 시작했다.


“여자들도 흔히, 다양한 소재의 수다를 통해서 서로 다양한 정보를 공유하고, 또, 서로 교류하잖아. 그러면서 서로 유대감을 갖고. 소재만 다를 뿐, 남자들의 수다 역시 마찬가지야”


그렇다고 해도 하필이면 성을, 여자를 소재로 수다를 떨다니.


‘그렇게도 할 이야기가 없나?’


야한 수다를 떠는 것마저 성적인 공유요, 성적인 교류라는 설명이 한낱 남자들의 변명으로만 여겨졌는데, 그 때문에 또 선생님께 칭얼댔다.


“사실, 남자들의 성적인 수다에 익숙하지 않은 여자는 거의 없어. 왜냐하면, 거의 모든 여자들은 어릴 때부터 남자들의 그런 수다를 곁에서 흔하게 듣거든. 그러나 성 자체에 익숙하지 않다보니 남자들의 수다에 무조건 거부감을 갖는 여자들이 있는데, 자네도 그중 한 명인 듯싶군.”


내가 성에 익숙하지 않다보니 남자들의 성적인 수다에 거부감을 갖는다?


물론, 나 스스로도 인정할 만큼 내 머릿속에 들어있는 성에 대한 지식이 그때는 더욱 적었다.


그래도 그런 이유로 내가 남자들의 성적인 수다에 거부감을 갖는다는 선생님의 말씀에는 좀처럼 동의할 수 없었는데, 그래서 며칠을 더 투정을 부리는 등 떼를 썼고, 그러다가 결국 야단만 맞고 말았다.


“그런 하찮은 말들을 통해서도 사람들의 마음을 읽으려고 노력해야지, 심리학을 공부하는 사람이 왜 그래? 그 모양이니 같은 여자들의 성적인 하소연도 감당을 못하잖아!”


어린 시절, 엄마에게 마구 투정을 부리면서 떼를 쓰다가 잔뜩 혼이 났을 때처럼.






똥물


"내가 한동안 수 십 명쯤 되는 대학생들에게 ‘만약, 나중에 네 자식이 개고기를 먹는다면 어떻게 할래?’ 물었거든.

그랬더니 딱 한 명의 여대생만 빼고는, 더 이상은 개고기를 먹지 않도록 자식을 단단히 혼내겠다는 둥, 호적에서 파버리겠다는 둥, 다들 난리를 치더라.

심지어 그런 자식은 아예 죽여 버리겠다는 대학생들도 있었지.

그런 대답들을 들으니 어찌나 기가 막히던지.

개고기를 먹는다는 단편적인 이유로 자식을 죽이거나 구박한다는 게 말이 되는 듯싶니?

사람들은 흔히, 청정수처럼 아주 작은 흠도 없는 사람을 바라지만, 막상 어른이 되려면 먼저 이런 사람, 저런 사람 모두 담을 수 있는 똥물이 되어야해.

특히, 부모가 되려면 더욱 그렇지.

왜냐하면, 자식 중에는 이런 자식도 있고, 저런 자식도 있게 마련이거든.

그런데도 똥물 같은 부모가 되지 않으면 그저 아들만 편애하거나 공부를 잘하는 자식만 편애하는 등의 편협한 부모가 되지.

즉, 비록 똑같은 자식이라고 해도, 자신이 담을 수 있는 자식만 담게 될 뿐, 담을 수 없는 자식은 결코 담지 못하게 된다고.

마찬가지로, 교사처럼 남을 가르치거나 상담을 하려면 먼저 어떤 사람이나 담을 수 있는 똥물이 되어야해.

그렇게 하지 않는다면 역시, 결코 편협함에서 벗어날 수 없거든.

그래서 역시 그저 담을 수 있는 사람들만 계속해서 담을 뿐, 그 밖의 사람들은 결코 담을 수 없게 된다.

그러니 먼저 어떤 직업을 가질까 생각하기에 앞서 똥물 같은 어른이 되어라.

그렇다고 이 세상의 모든 사람들을 모두 다 담을 수 있는 똥물이 되어야한다는 말은 결코 아니야.

곧 환갑인 나도 그렇게 하지 못하는데, 어떻게 남에게는 모든 사람들을 담을 수 있는 똥물이 되라고 말하겠니?

더구나 담으면 안 되는 사람들도 있어.

그래도 똥물이 되어야 조금이라도 더 많은 사람을 담을 수 있는 것은 분명하니 할 수 있는 만큼 똥물이 되려고 노력해라."


 - 떼를 쓰다가 들었던 말씀 중에서






얼치기 상담사


대학교 4학년 될 무렵까지 한참 생각을 정리한 뒤에야 다시, 이번에는 명확하게 알게 된 사실인데, 매우 오랫동안 나는 스스로도 도무지 이해할 수 없던 몇 가지 내 자신 때문에 머릿속이 몹시 복잡했었다.


‘나는 도대체 왜 이러냐?’


즉, 그때의 나는 상담에 충분히 집중할 수 없는 상태였던 것이다.


그런 상태에서, 더구나 남들의 성적인 농담조차 거의 감당할 수 있을 만큼 성에 익숙하지도 못한 채 얕은 욕심에 무턱대고 상담사를 흉내 냈으니.


‘이 모양이니 남자들의 성적인 수다는 물론, 여자들의 성적인 하소연도 감당하지 못하지’


뿐만 아니라, 언제부터인가는 ‘결코 편협하면 안 된다’, ‘똥물이 되어야한다’ 등의 생각에 사로잡혀서 때로는 억지로.


그렇다보니 여러 여자들에게서 성적인 하소연을 들으면서도 미처 그녀들의 몹시 골치 아픈 고민 중 하나를 듣는 것이라고는 생각하지 못했다.


‘그녀들은 답답한 속을 털어놓는데도 나는 민망함만 느꼈구나.’


또, 복잡한 머릿속을 정리하다보니 성문제도 사람들이 골머리를 앓는 숱한 고민 중 하나임을 겨우 알 수 있었는데, 이어 그녀들이 심지어 처음 만난 나에게 대뜸 성적인 하소연을 늘어놓던 이유를 어렴풋이 알 수 있었다.


‘상담을 하려면 정신문제뿐 아니라, 때로는 성에 대한 상담도 해야 하는구나.’


그런데 그때부터 오히려 가슴은 더 답답해졌다.


머릿속에 있는 성적인 지식이라고는 중고생 때 성교육 시간에 동영상으로 잠깐 봤던, 상담에는 전혀 도움이 되지 않던 임신과 낙태에 대한 몇 가지의 몹시 단편적인 지식뿐이었으니.


‘이런 내가 어떻게 상담을 할 수 있겠어?’


대학원을 준비한다거나 상담사를 준비한다거나, 혹은, 취직시험을 준비한다거나.


이런 까닭에, 친구들은 어느덧 코앞으로 다가온 졸업 뒤를 준비하던 4학년이 된 뒤에도 한동안 좌절감에 여전히 나는 진로를 정하지 못하고 있었다.


‘아빠의 말씀대로 공무원 준비나 할까?’


하지만 막상 4년이라는 긴 시간동안 많은 시간과 돈, 또, 정성을 투자해서 몹시 힘들게 배운 심리학을 그냥 내버리기는 몹시 싫었다.


2편에서 이어집니다.




대한민국 최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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